최우식, 알렉산더맥퀸

셔츠와 베스트 모두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영화 <기생충>에 쏟아지는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뒤로하고 최우식과 여름의 도시 방콕으로 떠났다. 막 장마에 접어든 한국을 떠나 도착한 방콕도 우기가 시작된 참이었지만 여름의 열기는 가시지 않았고 습도도 한껏 높아져 있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느껴지는 후끈한 기온에 ‘더위사냥’을 먹어야겠다는 그의 실없는 농담으로 방콕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번 촬영은 과정이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의 가벼운 농담은 더위에 지치지 않고 모두가 즐거운 현장을 위한 바람이 담긴, 알고 보면 신중하게 던진 농담이었다. 그리고 거기엔 어떤 배우로 살아가야겠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좋은 배우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했어요. 그런데 타인이 평가하는 좋은 배우를 생각하다 보면 저 자신이 사라질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어떤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하기보다 즐거운 현장을 만들어가며 연기하고 싶어요. 연기를 시작한 이유도 연기하는 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니까요.”

얼마 전까지도 영화 <기생충> 홍보 활동으로 바쁘게 지냈다. 요즘은 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나? 영화 홍보 일정을 마치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얼마 전에 <기생충> 포스터를 받았다. 칸 국제영화제 수상작을 의미하는 앰블럼이 담긴 포스터인데 배우들이 사인도 남겼다. 여기저기 대보며 집 어디에 걸어둘지 고민 중이다. 얼마 전에 이사해서 집을 꾸미는 참이거든.
잠시 숨을 고르던 차에 방콕에 왔다. 이 도시에 대해 먼저 말해볼까? 아주 오래전에 한 번 왔었다. 그때와 많은 것이 변한 것 같다. 어제는 툭툭을 타고 근처에 다녀왔다. 한국에는 없는 교통수단이라 재미있더라. 툭툭은 편함을 더는 대신 재미를 더하는 느낌이다. 툭툭 기사가 방콕이란 도시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는 것도 흥미롭고, 더운 나라 특유의 느낌도 좋고.
SNS에 올라오는 많은 사진이 여행지에서 찍은 거더라. 여행만큼 잘 쉴 수 있는 행위도 없는 것 같다. 작품 할 때는 작품에 온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기고 집에 있어도 완전히 쉬는 것 같지 않은데, 여행을 오면 새로운
풍경과 광경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채우게 된다.
여행 갈 때 꼭 챙기는 것이 있다면? 스피커. 노래 듣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요즘의 플레이리스트는 R&B 음악들.
여행 가서 꼭 사진으로 남기는 순간은 언제인가? 친구들과 찍는 기념사진. 어머니도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늘 말씀하신다.(웃음) 그리고 아침 사진. 여행을 가면 빛이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실내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아침에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최우식, 디올, 소바쥬오드뚜왈렛, 디올향수

화이트 셔츠 아미(Ami), 팬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최우식이 들고 있는 디올(Dior)의 소바쥬 오 드 뚜왈렛은 파워풀하면서도 프레시한 향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대변해준다. 시원한 바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레조 베르가모트를 시작으로 쓰촨 페퍼와 핑크 페퍼가 스파이시한 향을, 제라늄이 상쾌한 그린 향을 풍기고 여기에 베티버가 강렬한 기운을 더한다.

최우식, 클럽모나코, 반스

데님 셔츠와 데님 팬츠 모두 클럽모나코(Club Monaco), 슬립온 반스(Vans).

4, 5년 전쯤 영화 <거인>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뒤로 꽤 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배우로서 선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 있을 것 같다. <거인>이 그렇다. <거인>의 ‘영재’를 연기한 후 작품을 선택할 기회가 생겼다. 배우로서 연기하고 싶은 작품의 기준도 좀 더 분명해지고. 김태용 감독님과 영화를 찍으며 <거인>이 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쯤엔 배우의 길을 계속 걸을지 확신이 없었고, 주변에 이 정도 해봤으면 됐으니 이제 딴 길을 생각해보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거인>으로 상을 몇 개 받고 나서 지금 내가 맞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을 받아서 좋은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길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거인>을 하고 나서 많은 작품을 만났다. 봉준호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감독님이 <거인>을 통해 최우식이라는 배우를 알게 되었다. 작은 영화로 큰 주목을 받았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거인>이 배우라는 길에 대한 확신을 준 작품이라면, <마녀>는 도전할 용기를 준 작품이다. 지나온 모든 작품이 매번 내게 많은 것을 주지만 과거의 나였다면 <마녀>를 선뜻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녀> 이후 나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더 다양한 결의 캐릭터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거인>으로 최우식을 발견했다면, <마녀>는 최우식에게서 기대하지 못한 또 다른 최우식을 발견하게 한 것 같다. 언젠가는 대사가 없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 언어는 연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말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다른 장치, 표정을 비롯한 다른 표현 방식으로 연기하는 거다. 그리고 듬직한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 <마녀>의 ‘귀공자’와 또 다른 느낌으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인물에 욕심이 난다. 내가 체격이 큰 편은 아니지만 그런 체격적
인 조건을 넘어서 듬직한 인물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생충>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일 것이다. 영화를 통해 성장하는 시간도 있었을 테고. 봉준호 감독님과 함께한 점도 그렇고, 송강호 선배와 부자지간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 점도 그렇고, 많은 선배 배우들과 함께한 점도 그렇고, 많은 것을 공부한 현장이었다. 모든 현장은 매번 다른 깨달음을 주는 것 같다. <기생충>은 재미있는 현장인 동시에 부담감이 큰 작품이기도 했다. 내가 화자로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 데다 송강호 선배가 아버지로 나오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지. 나는 현장이 편안해야 잘하는 성격이어서 현장을 두려워하기보다 편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기생충> 이후 새로운 작품의 캐스팅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더라. 지금의 속도가 부담스럽지는 않나?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속도 같다. 곧 영화 <멍뭉이> 촬영에 들어가는데, <청년경찰>을 연출한 김주환 감독의 작품이다. 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라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울 것 같아 선택했다. 촬영 기간이 한 달 좀 넘을 것 같은데, 아마도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현장이 될 것 같다. 봉준호 감독님은 디렉션이 굉장히 디테일해서 현장에서 나는 연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이번 현장은 감독님과 특정 장면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도 하며 영화를 만들어가게 될 것 같다. <기생충> 이후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고 개봉 후 좋은 반응이 이어지니 자연스레 고민된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뭔가 새로운 전환이 되어줄 만한 작품을 하고 싶었다. <멍뭉이>는 김주환 감독님과 뒹굴면서 찍게 될 것 같다.

 

최우식, 드리스반노튼, 솔리드옴므, 소다

니트 스웨터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팬츠 솔리드 옴므(Solid Homme), 실버 컬러의 투톤 호일 소재가 유니크한 스니커즈 소다(SODA).

최우식, 클럽모나코, 까르띠에

오버사이즈 스트라이프 셔츠 클럽모나코(Club Monaco), 시계 까르띠에(Cartier).

BEAUTY NOTE
디올(Dior)의 청량감을 주는 소바쥬 애프터쉐이브 로션과 프레시한 텍스처가 면도 후 피부에 빠르게 스며드는 소바쥬 애프터쉐이브 밤은 평상시뿐 아니라 휴가지에서도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최우식, 클럽모나코

트렌치코트와 치노 쇼츠, 베스트가 레이어드된 셔츠 모두 클럽모나코(Club Monaco).

다음을 준비하며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 어떻게 하면 촬영을 더 즐길 수 있을지, 사람들과 더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을지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요즘은 전보다 걱정과 고민이 많이 줄었다. <기생충>이라는 작품이 이 일을 하는 데 감사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줬고, 영화 잘 봤다는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연기를 시작한 후 좋은 배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나? 좋은 배우가 되는 건 정말 어렵다. 얼마 전부터 든 생각인데, 1년에 영화를 많이 찍으면 보통 서너 작품을 한다. 다작이 목표는 아니었는데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잘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라면 겁내지 않고 선택했다. 좋은배우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관객 입장에서만 그 기준을 생각하면 그냥 내 것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연기가 좋아서 배우를 시작했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도 신경 써야 하고.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연기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과정을 즐기는 배우가 되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거운 배우. 오늘 같은 화보 촬영도 즐겁게, 연기도 즐겁게, 촬영 현장도 즐겁게. 어떤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재미있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의 변화는 최근에 생긴 건가? 그렇다. 드라마 현장은 숨 가쁘게 지나가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런데 영화를 찍고 나면 그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1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무척 힘들다. 영화가 잘돼야 할 텐데, 관객의 반응이 좋아야 할 텐데.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어느 순간 그런 시간이 힘들기도 하고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촬영 과정이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배우 최우식에게는 지나온 시간보다 나아가야 할 시간이 많다. 그 길에서 지키고 싶은 가치관이 있나? 일하며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찾는 것 같다. 한때 슬럼프가 심했었는데 고민도 많고 밤에 잠을 잘 못 잘 때도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 기대와 희망을 갖기보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렇게 걱정과 고민이 많은 내 성격이 연기할 때는 장점이 된다. 고민해서 나오는 연기와 그렇지 않은 연기는 다르다. 나의 겁쟁이 마인드가 연기할 때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일이 나와 잘 맞고. 난 결코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데 카메라 앞에서는 나서고 싶다. 그러는 나 자신이 스스로 재미있고. 그게 내가 일하는 이유다.
연기하는 최우식과 그렇지 않은 최우식은 좀 다른 사람 같긴 하다. <기생충> 언론시사회에 갔었는데,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굉장히 어색해 보였다.(웃음)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다.(웃음) 부끄러운 건 아닌데 어렵다. 언론시사회, 무대인사 같은 일은 여전히 힘들다. 많은 사람이 애써서 영화 한 편을 힘들게 완성했는데 그렇게 잘 찍은 영화에 내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이런 생각이 든다.
배우뿐만 아니라 누구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에 수반되는 많은 것을 모두 즐길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과정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전에는 제작발표회를 할 때 전혀 떨지 않았다.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작은 실수가 얼마나 크게 돌아올 수 있는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하면 안 되는 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가 오해할 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인생에 때가 낀 것 같다.(웃음) 그래서 더 이런저런 예상을 하기 보다 지금의 현장을 즐기고 싶다.
앞으로 최우식에게 채우고 싶은 것과 덜어내고 싶은 건 뭔가? 걱정과 고민을 덜어내고 싶다. 그리고 이대로 지내고 싶다. 연기를 하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씩 꺼내 써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을 살아가야 한다. 30대 중·후반, 40대, 50대를 연기하려면 그 시간을 살아봐야 한다. 친구랑 많이 놀아도 보고 가족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연애도 하며 내 삶을 채워가야지. 덜어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건 지금의 최우식은 비우기보다 채워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최우식, 메종마르지엘라, 구찌,

재킷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팬츠 구찌(Gucci), 미니멀한 디자인에 사이드와 아웃솔 힐, 뒷축 부분에 로즈 골드 컬러로 포인트를 준 디자인의 스니커즈 소다(SODA),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