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듀오가 저녁 9시를 쇼타임으로
정한 이유는 분명했지만, 문제는 시작
시간이 지연됐다는 점이다. 유명 소설가
트루먼 카포트가 1966년에 주최한
‘블랙 앤 화이트 볼’ 파티에서 출발한
이번 컬렉션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브닝 룩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드레스들로 채워졌다. 시작은
웨어러블한 데이웨어로, 과감한
컬러 매치가 시선을 강탈한 실용적인
코트와 팬츠가 줄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디자이너들은 쇼 중반부터
본색을 드러냈다. 풍성한 실루엣으로
부풀리거나 대담한 플로럴 패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드레스와 은은하고
섬세하게 시퀸을 수놓은 드레스까지
쇼에 앞서 펼쳐진 오스카 시상식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입은 것과 꼭 닮은
가느다란 프린지로 구조적인 실루엣을
완성한 드레스들을 변주해 공개하며 그
순간을 상기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에도 거장의 그림자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기에는 어쩐지 역부족으로
보였다. 젊은 디자이너 듀오만의 확실한
패를 꺼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