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기 – 하운드투스 체크 재킷, 윙 칼라 화이트 셔츠, 블랙 팬츠, 블랙 부츠 모두 생 로랑 파리(Saint Laurent Paris). 박성웅 – 와인색 수트 휴고 보스(Hugo Boss), 턱시도 셔츠 권오수 클래식(KWONOHSOO Classic),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슬리브리스 톱, 프린트 셔츠 모두 생 로랑 파리(Saint Laurent Paris), 팬츠 버버리 런던(Burberry London).

박성웅 – 블루 패턴 차이니스칼라 셔츠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이민기 – 블루 셔츠 버버리 런던(Burberry London).

블랙 재킷 옴므 플러스 바이 꼼데가르송(Homme Plus by Comme des Garcons), 팬츠 버버리 런던(Burberry London), 화이트 부츠 생 로랑 파리(Saint Laurent Paris), 화이트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게 편하고 좋아 보인다. 어려운 선배일 수도 있었을 텐데. 형님 포스나 목소리가 워낙 누아르니까(웃음), 나도 처음에는 무서울 줄 알았다. 형도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의 구분이 확실하고. 하지만 술 몇 번 마시며 진심 터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나에 대해 빨리 알렸고, 형은 그런 나를 빨리 알아봐주시고 동생으로 안아주셔서 친해졌다. 지금은 정을 많이 주신다.

주위에 남자들이 많은가? 남자들이랑 있는 게 편하다. 남자들의 관계에서는 눈치가 빠른 편인데, 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자가 어떤 말을 했을 때, 뒤늦게야 “아, 그게 그런 뜻이었어?” 한다. <연애의 온도>를 찍을 때도 느꼈지만 여자의 언어는 어렵다. 하지만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지 사람의 감정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요즘 이 말을 많이 들을 것 같다. 이민기가 달라졌다고. 음, 그런가?

<몬스터>에 이어 <황제를 위하여>에서도 익숙한 이민기의 모습은 아니다. 어떤 역할을 시작할 때, 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내가 어떻게 할지, 잘할 수 있을지. 이환은 열정이 넘쳐서 욕망이 되는 인물이다. 나도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욕망이라는 걸 알게 됐다. 20대 초·중반에는 그냥 연기하고, 내 삶에 주어진 걸 받아들이고, 갈 길을 가면 인생은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길을 내가 개척하고 싶고, 주어진 걸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한번 치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좋게 표현하면 열정이고, 이런 게 넘치면 욕망이 될 수도 있는 거겠지. 그걸 내가 한번 느껴보지 않았나. 열정을 가져봤기 때문에 욕망에 대해서도 조금 알 것 같다.

이민기, 달라진 게 맞는 것 같다. <오이시맨>을 찍기 전에 본 당신은 마냥 뛰어놀고 있었다. 밴드를 하고 있었고, 친구들 일곱 명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연기할 때도 노는 것 같았다. 그 일곱 명의 친구 중 한 명이 여기 있는 매니저다.(웃음) 그때는 나도, 친구들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쉴 때도 그냥 쉰 적이 없었다. 친구들과 술 먹고, 음악 하고, 밖에서 노숙을 하건 뭘 하건 어쨌든 뭔가를 하면서 지냈다. 그러나 스무 살 때만 할 수 있는 연애가 있는 것처럼, 지금은 친구들도 그렇게만 살 수는 없다. 그러다 보면 혼자 있게 되지만 내 시간에는 밀도가 생긴 것 같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집에서 영화 보고 책을 보며 보내는 시간은 몰입도가 높고 의미도 있다. 물론 일상에서는 가끔 무료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친구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성숙해가는 것 같다. 나는 보낸 시간이 자신을 만든다는 말에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어디까지가 순수한 열망이고, 어디부터 욕망을 보여야 하는지 판단하는 게 어려웠다. 어쨌든 그 안에 순수함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악도 사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인간미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좀 전에 박성웅 배우는 성선설을 믿는다고 하더라. 이민기는 어떤가? 조금 더 살아보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악한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물론 모든 것이 입장 차이일 수도 있지만,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선악을 가른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차가 밀려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못 가고 있는데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욕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지금 저 사람이 딸이 아픈가?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그럴 수 없으니까,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나도 가끔 남들에게 미친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으니까. 그런데 도저히 어떤 상황을 상상해봐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더 찌르고 문대는 사람들. 살면서 그런 사람을 세 명 정도 본 것 같다.

이민기는 어떤 기질을 가진 사람인가? 어찌 됐든 자신은 결국엔 잘될 거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촌놈 기질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도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의 어리둥절한 기분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눈앞에 펼쳐진 것들이 재밌고 신기하고 놀랍지만 나 자신의 앞날은 막연하게 느껴지고,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 누군가는 이민기, 이제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 진행 중인 것 같다. 배우로서의 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싶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내 일이 되었다.

최후의 승자는 결국 어떤 사람이 되는 것 같은가?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는 사람. 자기가 행복한 사람. 나는? 잘 모르겠다. 일이 있어 행복하지만, 일 말고 다른 것이 있으면 더 행복할까?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는데 가정이 있으면 행복할까? 세월이 지나고 나서 일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이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달리는 사람이고 싶다. 여행을 가는데 친구가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줬다. 그거 보면서 그랬다. 스님, 아직은 아니에요. 꼭 깨달아야 돼요? 이런 말 하면 스님이 섭섭해하시려나?(웃음) 멈추면 인생이 어떤 건지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가 아직은 아닌 거다. 멈추고 싶지 않은 마음인 거다. 계속 정신없이 치고 나가고 싶고, 샛길로 새더라도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좀 더 오랫동안 ‘달리는 사람’으로 살게 해주는 것 같다.

패턴 셔츠 크사쿠스 바이 존 화이트(Xacus by John White), 블랙 팬츠 존 리치몬드 바이 존 화이트(John Richmond by John White), 블랙 스니커즈 세라(Saera).

트렌치코트 보기 밀라노(Boggi Milano), 화이트 셔츠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 블랙 팬츠 존화이트(John White).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아주 많다. 실감하겠지? 인기라는 게 있다가도 또 없는 거니까.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지내면 되는 것 같다.

센 역할을 주로 해왔지만 사실 선한 얼굴이다. 눈꼬리도 처져 있고. 별로 안 처졌다. 왜 자꾸 처졌다고 그러나.(웃음) 세상에 악한 얼굴은 없다고 생각한다. 악한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거지. 나는 성선설을 믿는다. 가끔 아들 녀석 보면서 성악설이 옳은 건가 싶기도 하지만.(웃음) 사람들이 악역이라고 말하는 역할도 사실 나는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연기했다. 캐릭터를 파악할 때 저 사람은 악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시작한다. <신세계>의 이중구를 연기할 때도 그랬고,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황제를 위하여>를 준비하면서는 살을 찌우거나 뺄 필요는 없었나? 등판이 노출되는 신이 하나 있다. 다섯 명이 고스톱을 칠 수 있을 만한 등판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운동을 했다. 원래는 네 명 정도 칠 수 있는 등판이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라더니, 이제 알겠다. 심각하고 무거운 신을 찍을수록 현장 분위기는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만들려고 한다. 내가 현장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것이 허락되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고. 18년 가까이 연기해왔지만, 근 10년간은 분위기를 띄우긴커녕 말 한마디 못하고 연기만 하다 돌아오곤 했으니까. 이제는 내가 입을 다 물면 분위기가 침체되니까, 힘들 때도 억지로라도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아주 큰 변화다. 그 밖에 또 달라진 게 있는가? 한 가지 꼭 집어서 말하긴 어렵다. 모든 것이 변했으니까. 일단 카메라 앵글의 사이드에서 가운데로 들어온 거니까. 근데 사이드에 있을 때도 연기를 열심히 했었고 지금도 열심히 한다. 사이드에 있을 때는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작품이 잘돼야 하니까 고민도 많이 하고, 배우나 감독과 대화도 많이 한다. 하나의 머리 하나보다는 머리 두세 개가 낫다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절충되어 나오는 멋진 장면들이 있다. 그런 게 되게 재미있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했나? 내가 선배이긴 해도 민기는 하나의 독립된 배우다. 민기도 이번 작품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니 얼마나 연구를 많이 했겠나. 촬영 전에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는 있어도 일단 촬영 들어가면 터치할 수는 없는 각자의 영역이 있다.

<황제를 위하여>의 ‘상하’라는 인물은 어떻게 이해했나? ‘이번에도 악역’이라는 기사가 자꾸 뜨던데, 사실 인간미가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신세계>의 이중구와 마찬가지로 상하 역시 옆에서 건들지 않았다면 그렇게 표독스러워지지 않았을 거다.

현실의 삶에서 누군가가 ‘건드리면’, 남자 박성웅은 어떤 선택을 하려나? 이제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든 다음 날 아침 기사에는 ‘배우 박 모 씨 술 먹고 싸움질’이라고 나갈 뿐이다. 우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누가 와서 욕을 해도 죄송하다고 말하고 빠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 나의 가족을 건드린다면 결코 참지 않을 것이다.

<SNL 코리아>에 출연해서 ‘내가 아내에게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할 때 덩달아 짠했다. 가족은 박성웅에게 어떤 의미인가? 뭘 또 물어보나. 그때 말한 그대로다. 자꾸 말하면 팔불출 소리 듣는다. 얼마 전에 가족과 충주에 다녀왔다. 4월 9일이 충주에서 아내에게 백 허그하며 프러포즈한 날이다. 이제는 아내 말고 식구가 한 놈 더 생겼다. 그래서 이번엔 둘을 한꺼번에 뒤에서 껴안고 프러포즈할 때 했던 말을 다시 했다. 아내가 “생각 좀 해보고”라고 답하더라.(웃음)

지금은 웃으며 말해도 배우를 시작하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힘들었을 텐데, 무엇으로 버텼나? 그냥 평생 직업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참 힘들 때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됐을 때가 최고라는 글귀를 읽었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잘해보자 싶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하고 있다. 아직까지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잘 못하니까. 배우가 스스로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끝나는 거다. 심지어 정민이 형도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물론,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배우도 있긴 있다. 누군지는 말 못한다.(웃음) 사실 누가 더 잘하면 얼마나 잘하고, 못하면 얼마나 못하겠나. 다만 자신감이랑 자만심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에게는 감독이 OK 해도 한 번만 더 가고 싶은 욕심이 있어야 한다.

그 세계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구인 것 같은가? 자기가 행복하게 연기하는 사람이 승자인 것 같다. 인기가 많아도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인기가 없어도 연기하면서 본인이 행복한 사람이 있다. 본인이 행복한 사람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다. 라이벌이 있어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 라이벌로는 이정재나 정우성 같은 사람들이 있지만.(웃음) 농담이다. 배우로서는 50대에 멋진 배우로 남는 게 목표다. 한 8년 남았는데, 그동안 관리를 잘해야겠지. 항상 문제는 술이다. 유기농 술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끝나고 민기랑 한잔 하러 가려고 한다. 우리가 만났는데 술을 안 마신다는 건 말이 안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