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십개월의 감독 남궁선

 

저는 <십개월>을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보곤 오랜만에 다시 봤어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가장 강렬한 생각은 그간 임신 기간인 10개월을 온전히 담아본 작품이 왜 없었을까? 이전에는 왜 그런 영화를 누구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고, 우리도 그런 영화를 바라지 않았을까? 라는 궁금증이었어요. 아마 이 영화의 시작점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네.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어쨌든 이건 많은 여성들이 겪는 일이자, 굉장히 흔한 경험이잖아요. 그 흔함에 비해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험만을 가지고 만들어낸 영화가 적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게 마음에 걸려서 시작하게 된 영화입니다.

 

보통 계획에 없는 임신을 하는 경우에는 그게 사건의 시작인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주변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는 가에 대해 집중하는 작품들이 많아요. 반대로 임신의 주체자가 가지는 감정들, 그가 어떤 변화에 직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보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십개월>을 통해서 임신이 여성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를 볼 수 있죠.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을 아주 세세하고 현실적이고 바라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 욕망이 있었고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생각했던 갈등, 그리고 감정을 영화 안에 담고자 했지만 어떻게 보면 임신은 그보다도 더 다양한 디테일들이 포진되어 있는 경험이긴 했거든요. 몸도 변하고, 또 사회에서 전까지는 노출되지 않았던 편견이나 상황에 갑자기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미혼이거나 임신을 하기 전까지는 와 닿지 않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걸 극화해서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를 통해 10개월이라는 시간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실 정말 짧잖아요. 한 생명을 출산하고 엄마가 되야 하는 기간치고는 턱없이 짧은 시간인 거죠.

너무 짧아요. 특히 미래는 10개월이라는 정해진 타임라인 안에서 배가 불러오는 와중에 그걸 다 소화하지 못했고요. 그렇게 미래라는 인물을 설정해서 이게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지 표현하고 싶었어요. 대중문화에서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임산부나 어머니들은 이미 성숙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거든요. 모든 것이 준비된 사람이고, 자기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현실적인 감각을 이미 가진 상태로 영화에 등장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임신을 많이 하는 30대 전후를 생각해보면 성숙하면 얼마나 성숙해요. 그런 나이 대에 많이 경험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전개해보고 싶었어요.

 

영화의 외피를 보면 팝적인 요소들이 많죠. 음악의 활용도 그렇고, 자막도 굉장히 과감하게 활용하면서 관객에게 일종의 챕터를 하나씩 넘기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다음에 펼칠 것인지 아주 분명하게 상징하기도 하고요.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졌을 때는 영화가 굉장히 독특한 방식의 결을 우리한테 보여준다는, 총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데 한 몫을 하는 게 자막과 음악이에요. 외적인 구성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주제 자체가 사실은 경험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답이 없고 되게 우울할 정도로 무력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돼요.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 때 저라도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그래서 톤앤매너를 즐겁고 가볍게 가져가서 은근슬쩍 주제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해야겠다는 결정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음악이나 자막을 주인공의 당황과 우울에 이입이 될 때마다 깨지는 용도로 사용을 한 것 같아요. 의식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톡톡 튀고 팝적인 분위기에 대사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초반부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발랄한 대사들이 많거든요. 특히 산부인과 의사랑 처음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요.

그 인물을 진지하게 보고 시작했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는 말들이긴 해요. 말하자면 ‘이 영화가 이런 영화다’라는 거죠. 그 대사들을 통해 현실적으로 보였던 미래라는 애가 아주 현실적이지 못한 캐릭터가 되는 거잖아요. 약간 또라이가 되는 거죠. 그런데 미래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말들이거든요. ‘뱃속의 아이가 외계인이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라는 말이 우리한테는 어이없게 들리지만 실제로 그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어떻게 하시겠냐는 질문을 하는 거니까요. 그런 대사들은 일부러 미래라는 캐릭터의 또라이성을 생각하면서 썼고요. 또 그 안에는 모두가 하고 싶지만 사실은 못하는 말들도 끼어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영화에 관해 세심한 대화를 주고 받는 영화 저널리스트 이은선과 남궁선 감독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작업들이 있는데요. 그 중에 관객이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 중에 하나가 주인공의 직업이 될 때도 있어요. 미래를 보면 IT 업계 종사자이고, 회사는 스타트업으로 보이죠. 이 캐릭터의 직업적인 특성이 스토리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을까요?

이 영화를 시작한 때가 2018년이었는데 조직이라는 게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기 시작한 때잖아요. 미래 아버지는 큰 조직에 있어야 네가 지켜질 것이다라고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고요. 미래가 생각하는 지금은 스타트업의 시대이고 확고한 기술을 가지고 내가 그것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면, 그게 자수성가를 하는 방식이라는 거죠.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는 저 회사가 망하면 지켜지지 못하는 건 너일 텐데 싶은 거고요. 그런 부모의 통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아이를 가졌을 때인 것 같아요. 그제서야 갑자기 ‘왜 공무원 하라는지 알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모든 게 위태로워지기 때문이죠. 그렇게 미래를 융통성 없을 정도로 논리에 집착하는 성격의 IT업계 종사자로 만들어놓으면 이제 다 꼬이게 되잖아요. 버그가 나는 것을 그리기 위해 그런 직업과 성격으로 설정을 했습니다.

 

남자친구 윤호 캐릭터도 재미있어요. 황당하긴 하지만 임신 소식을 듣자 마자 ‘결혼해야겠다’, ‘우리가 가족이 되는 거다’라고 확고하게 얘기를 하잖아요. 잠수타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남자친구인데 보다 보면 그것도 아니죠. 그러면서 결과적으로는 가장 최악의 모습으로 퇴장해버려요. 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윤호라는 캐릭터에 대해 사람들이 나쁜 애라고 얘기를 하는데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쓴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 나름으로는 최선의 책임을 끝까지 지려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윤호라는 인물을 들여다보면, 일단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요. 그리고 미래와 가정을 꾸리는 것이 그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이가 생김으로써 나의 가정을 꾸리고, 그러면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도 마침내 마음을 풀고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윤호가 원래 초고에서는 좀 더 진취적인 모습도 있었어요. 채식주의자로써 LED로 야채를 키우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거든요. 어쨌든 윤호의 생각으로는 자기가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문제를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아버지와의 문제를 풀어야 했기에 안 좋은 선택을 막 하는 거죠. 상황은 점점 꼬이는데 미래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었다라는 말을 들으니 충격이었던 거고요. 나는 내 책임을 다 하고 있는데 네가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 맛이 가는 거죠. 윤호의 퇴장은 미래의 타임라인에서는 어쩔 수 없는 퇴장이었지만, 아마 윤호는 그때부터 제대로 자기의 성찰이 시작될 것 같아요. 아마 이후에 변화를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때 즈음에 나타나는 미래의 변화도 재미있어요. 임신 20주가 넘어간 이후부터 미래가 카오스(태명)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잖아요. 이건 어떤 변화냐면, 카오스를 한 팀으로 인식하고 같이 가야 할 파트너로 인식했다는 장치로 보여요.

독백이자 카오스에게 거는 말은 사실 원했던 것보단 적게 나온 편이에요. 임신을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말을 걸게 되거든요.(웃음) 24주가 지났을 때부턴 돌이킬 수 없는 영역으로 간 것과 같아요.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거죠. 그 전까진 불법으로라도 중절을 하는 선택이 살아 있었다면, 24주 이후에는 그게 사라진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미래는 이미 와있는 존재를 인정하고 어쨌든 너는 내 인생에 들어와있는 거니까 라는 그런 의미에서의 카오스와 파트너십이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과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기 때문에 유일하게 말을 걸게 되는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된 것이기도 하고요.

 

십개월에 관한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남궁선 감독

 

저는 영화를 보면서 임신한 여성에 대해 생각보다 아주 다양한 혐오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회사의 상사는 왜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드냐는, 정말 적반하장 식의 대사를 하면서 퇴사를 종용하잖아요. 그런데 더 황당했던 건 길에서 만난 중학생의 반응이었어요. 임신을 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어떠한 존중 혹은 그 나이 대에 가질 법한 생명에 대한 신비는 하나도 없고 그냥 ‘돼지’라는 혐오의 말을 하잖아요. 그렇게 미래가 마주하는 상황을 보면서 혐오의 시선을 생각하게 됐어요.

중학생 에피소드 경우에는 실제로 그런 일이 적지 않아요. 저도 들어본 적 있는 말이고요. 마치 이 영화에 그런 것만 담겨있는 것 같아서 불공평하다고 얘기하는 모 관객도 있었는데, 그런데 그 경험이 강화된 게 아니라 오히려 축소된 정도 수준으로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 신의 배치 자체는 전에 미래가 겪어보지 못했던 대우를 처음으로 받는 거기 때문에, 가뜩이나 기분이 상한 상황에서 중학생까지 시비를 거니까 너 내가 누군지도 모르냐며 나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며 막 욕을 하는데 결국 지는 걸로 상상을 했거든요. 결국은 중학생이랑 싸우는 수준 떨어지는 웃긴 느낌으로 배치를 하긴 했어요. 그 중학생이 뱉은 말은 사실 아무 생각이 없는 걸 거예요. 그런데 비현실적인 얘기는 아닌 거고요.

 

영화 안에서는 구체적이진 않지만 할아버지의 죽음이 그려지기도 해요. 영화를 큰 시선으로 바라보면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카오스의 탄생으로 연결되는 영화이기도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만 해도 이전까진 죽는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임신을 하면서 삶의 유한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그래서 미래에게도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고, 그런 의미로 배치해놓은 것이긴 해요. 거기에서 어떤 삶의 사이클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린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십개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이렇게 비오는 날 여러분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반갑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매 순간이 너무 행복한 것 같아요. 재미있게 보셨기를 기원하고, 앞으로도 <십개월> 많이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 대화를 통해서 영화에 관해 오해를 했거나 몰랐던 부분에 대해 풀린 게 있길 바라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