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브라질 작가다. 국내에 번역되어 현재 구입할 수 있는 책은 <달걀과 닭>(봄날의 책)과 <G.H에 따른 수난>(봄날의 책)이고, 여기서 이야기할 책은 단편소설집 <달걀과 닭>이다.

책의 제목이자 여는 소설인 ‘달걀과 닭’은 달걀을 보는 화자의 시선에서 시작해 걷잡을 수 없는 생각의 회로에 독자를 싣고 질주한다. 생각들은 달걀과 아주 가까운 동시에 멀다. 이를 테면 인간이 달걀을 보는 즉시 달걀은 눈앞의 달걀이 아닌 오래 전부터 대상화 되어온 달걀이라는 문장. 껑충껑충 비약하는 사유들은 여성성, 그와 직결되는 무력함을 향한다. 달걀은 여성이고 세계다. 작가는 배경 묘사나 화자에 대한 설명 없이 생각과 욕망으로 화자의 자리를 뚜렷하게 만든다. 벼른 화살촉처럼 날카로운 문장들이 같은 힘을 유지하며 결말까지 돌파해간다. 이 낯설고 강렬한 에너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대상화되고 소외되는 여성뿐만 아니라,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복잡하고 예민하고 변덕스러우나 그 모든 것에 이유가 있는 다양한 층위의 마음을 독창적인 언어로 묘사한다. 모든 미묘한 뉘앙스를 해체하고 그 안에 자리한 진실을 발견한다.

‘생일 축하해요 어머니’는 노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자식들과 며느리들은 각자의 서열을 의식한 가족 내 정치에 여념 없고 노인은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그 모든 겉치례를 둘러본다. 모두가 노인을 위해 지나치게 좋은 기분을 과시하려 노력할 때 읽을 수 없는 표정의 노인은 그들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축 늘어진 팔뚝과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우중충한 무리를 낳았단 말인가!’ 노인은 바닥에 침을 뱉는다.

<저녁식사>는 한 남자가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그리는 짧은 소설이다. 혼자 식사중인 남자를 관찰하는 화자는 여자다. 요리가 나올 때마다 남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묘사하면서 여자는 점점 식욕이 떨어진다. 앉은 자세, 웨이터를 대하는 태도, 고기를 뒤집어 보고 와인을 맛보는 모든 행위에 묻어 나오는 권력. 폭력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고 완벽하게 폭력적인 장면을 작가는 연출한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1944년부터 집필활동을 시작했고 생활고와 화상 후유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1954년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번역가이자 소설가 배수아가 쓴 ‘옮긴이의 말’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이력과 카리스마적 성정이 드러나는 짧은 일화들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