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대문과 넓은 전실을 지나 들어선 거실. 깔끔한 대리석 바닥과 웨인스코팅으로 장식한 벽면, 그리고 햇살을 적당히 차단하고 끌어들이는 화이트 루버 셔터를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동남아시아의 어느 품격 있는 리조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명이 달린 실링팬, 타닥타닥 소리를 내고 하얀 연기를 내뿜는 벽난로까지 보면 그 누가 이곳을 김포의 아파트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i.s.y.casa
한일규, 장소미

남편 한일규는 영상 관련 업종에 종사하며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내 장소미는
항공사에서 22년째 근무 중이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함께 아름다운 프렌치 모던
하우스에서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집을 리모델링할 때 가장 먼저 계획하고 계약한 것이 루버 셔터예요. 해외 인테리어를 보면 창이 참 예쁘잖아요. 그런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이미지를 저장해뒀다가 남편에게 보여줬죠. 남편도 좋아하더라고요. 루버 셔터를 우선으로 하고 나머지 디자인을 거기에 맞췄어요. 실링팬이나 벽난로는 물론이고, 서재로 통하는 문을 격자로 디자인한 것도 그 일환이에요. 루버 셔터에 맞춰 집을 디자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장소미
베란다 쪽 벽면을 가득 채운 화이트 루버 셔터와 장소미가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조명 부착형 실링팬, 그리고 한일규가 자르고 붙인 웨인스코팅 벽은 훌륭한 조화를 이루며 이국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실제 불빛이 타오르는 듯한 벽난로도 이 집을 특별하게 만드는 특징적 요소다. 최근 벽난로 콘솔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실제 소리와 연기가 나는 벽난로를 두는 집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벽난로도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별장에서 여름에는 장작을 패고, 겨울에는 그 장작으로 벽난로를 땐 추억이 있거든요. 처가와 본가에도 벽난로가 있어서 우리 집에도 꼭 두고 싶었어요. 제가 벽난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소미는 콘솔을 놓는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실제로 작동하는 벽난로를 만들겠다고 했더니 많이 놀라서 만류하더라고요. 그래서 좌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한일규

 

불꽃과 연기, 그리고 소리가 살아 움직이는 벽난로를 만들기 위해 한일규는 전 세계의 실내 벽난로에 관한 논문을 죄 뒤질 정도로 열정을 보였고, 결국 불빛이 타오르는 듯한 벽난로를 완성했다. 사과 궤짝 같은 허접한 벽난로 박스를 깎고 다듬었고, 인조 대리석으로 화덕을 만들었으며 수증기를 이용해 불꽃과 연기가 나오는 듯한 벽난로를 완성했다.
사실 그가 진심을 보인 것은 벽난로만이 아니다. 이 집의 모든 것은 그의 손에 탄생한 것.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셀프 인테리어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다. 구조가 마음에 들어 이 집을 계약하긴 했지만 가구를 덜어내고 바닥을 뜯으니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전문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견적을 내보았으나 선뜻 나서지 않았고, 간혹 나서는 사람도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하기 어려우니 변경해보자는 식으로 설득하는 바람에 직접 인테리어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사실 관리 사무소에서 받은 도면으로 직접 인테리어 예상도를 3D로 그려 보여준 그는 여간 깐깐한 클라이언트가 아니었을 터. 결국 그는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예상 공사 기간은 한 달이었지만 긴 장마와 섹션별 전문가들의 실수 등이 겹쳐 세 가족은 겨우 방 두 개만 완성된 이 집으로 이사를 와야 했다. 그렇게 곁방살이하듯 생활한 지 11개월. 공사가 시작된 후 1년이 지나 인테리어가 드디어 완성됐다. 그사이 수많은 일과 변수가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테리어를 끝마칠 수 있었다. 비단 보기에 예쁜 것이 다가 아니다.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모든 조명과 벽난로를 휴대폰으로 컨트롤할 수 있게 하는 ‘기술’도 적용했다. 이만하면 그는 이제 전문가 중에 전문가인 셈이다.

 

“조명에 특히 신경 썼어요. 소미가 원하는 조명을 찾아내면 제가 설치했죠. 거실에 달린 조명 실링팬은 최근 유행하는 심플한 디자인이 아니어서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소미가 고생했어요. 아일랜드 주방에 달린 조명을 달 때에는 감전돼 쓰러지기도 했죠.” –한일규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집을 채운 것은 아내 장소미가 오랫동안 수집한 프렌치 가구와 소품이다. 식당의 선반은 그녀가 결혼 전 해외에서 산 것으로, 오랫동안 그녀의 방에 걸려 있었다. 침실에 놓인 콘솔 역시 결혼 전부터 쓰던 것을 가져와 새로 칠을 했다. 거실과 서재에 놓인 가죽 소파는 30년 넘게 그녀의 집에 있던 가구였다. 바래고 찢어져 버려야 할 소파를 두 사람이 리폼한 뒤 이곳으로 가져왔고, 새 생명을 얻어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직접 만든 세계지도 위 자석들은 두 사람의 여행 역사를 담고 있고, 게스트 룸에 놓인 침대는 이사 오기 전 집에서 쓰던 것이다. 곳곳에, 세 가족의 히스토리가 담겨 있는 셈이다.

집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방마다 색이 다른 벽면이다. 공간을 쓰는 사람의 취향을 반영한 것. 이제 핑크가 유치하다는 딸의 의견을 반영한 아이 방의 민트, 장모님이 주로 쓰시는 게스트 룸의 퍼플, 숲속에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내기 위해 선택한 서재의 다크 그린, 투병 중이던 아내를 고려해 생기를 더한 안방의 인디언 핑크까지. 모든 공간에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딸아이 친구가 놀러 왔다가 저에게 ‘아저씨 재벌이에요?’ 하고 물어본 일이 기억에 남아요. 화려하고 깔끔한 호텔식 디자인에 적잖이 놀랐나 봐요. 사실 집을 채우며 쓴 돈은 인테리어 업체에서 제시했던 금액의 반도 안 돼요. 쓰던 물건을 가져온 경우가 많고, 직접 을지로와 인터넷을 뒤져가며 구한 자재를 썼거든요.” –한일규
“친구들이 호텔 로비에 있는 것 같다고 해 기뻤어요. 제가 원한 것이 그 분위기였거든요. 주말마다 이국적 느낌의 베란다에 둘러앉아 브런치를 먹을 때면 더없이 행복해요.” –장소미
예쁘게 꾸민 집이야 많지만, 많은 노력과 추억이 스며든 공간은 흔치 않기에 더욱 매력적인 이 집. 지금도 조금씩 변화하며 이야기를 쌓아가는 이 공간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된다.

 

TIP

한일규, 장소미가 말하는 셀프 인테리어 노하우

1. 철저하게 계획할 것
인테리어를 하기 전, 집의 도면을 입체적으로 그려보면 필요한 자재의 목록과 수량 등을 대충 짐작할 수 있어 오류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손쉽게 도면을 그려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으니 도전해보길.

2. 재단 서비스를 활용할 것
직접 자재를 구입해 현장에서 재단하면 변수에 대응하기는 쉽지만 소음과 분진, 폐기물 처리 등이 복잡할 수 있다. 치수에 따라 재단해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물론 정확하게 치수를 재는 것이 우선이다.

3. 디자인 자료를 참고할 것
인테리어 사례를 많이 보고, 원하는 방향을 잡은 뒤 인테리어를 시작할 것. 인테리어를 완성한 뒤 다소 미흡해 보이는 곳이 있더라도 부분적으로 마감재를 활용해 감추어도 되고, 가구나 오브제로 더 컨셉추얼한 곳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 유연하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