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현장에서 스태프와 배우들의 화합이 정교하게 이뤄졌을 때도 좋지만, 관객을 만나는 순간이 가장 영화롭죠. 모든 영화는 관객을 중심에 두고 기획해 마지막 공정까지 거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대미는 관객과의 만남이에요.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한 뒤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과 함께 고민하고 싶었던 여러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영화 <젊은 남자>가 개봉한 뒤 첫 무대 인사가 기억나요. 그때는 무대 인사를 한 뒤 극장 앞에서 사인회를 여는 게 이벤트 중 하나였죠. 드라마 <느낌!>과 <모래시계>로 팬들이 생길 때라 지방 어디를 가도 알아봐주시고 했던.(웃음) 신인 때 느낀, 관객들과 나눈 특별한 교류와 교감… 그때의 영화롭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김태리

“촬영 세팅을 기다리는 시간에 동료 배우나 감독님 등 스태프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득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한 발 물러나 그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거죠. 장면에 따른 지문도 있어요. 겨울이라면 난롯가에 모여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웃고, 어디선가 노래가 흐르고… 그 한복판에서 문득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요.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들이 제 안에 기록되는 거죠.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제게는 영화라는 작업 과정에서 특별하고 영화로운 순간인 것 같아요.”

 

 

 

임시완

“한 5년 전쯤이었어요.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난생 처음 칸 국제영화제에 가게 됐죠. 그곳에서 해외 영화제 문화를 처음 접했어요. 관객이 모두 착석한 후에 제일 마지막에 배우와 감독 그리고 스태프들이 입장해요. 그러면 대기하고 있던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쳐줘요. 환영해주는 거죠. 당시 광경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저를 생경해하는 관객들의 표정이었어요. 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거죠.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 똑같이 박수를 쳐주는데, 처음 입장할 때와 확연히 다른 온도 차가 느껴지더라고요. 굉장히 열광적으로 박수를 쳐주며 ‘네가 저 역할을 했어?’, ‘네가 저런 연기를 했구나’ 하는 표정이 관객 한 분 한 분에게서 느껴졌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전율이 오르던 순간이었어요.”

 

 

 

조현철

“영화 <너와 나>를 준비하면서 6년 동안 꿈을 많이 꿨어요. 그 꿈 중 하나가 제가 한 고등학교의 수업 시간에 숨어든 거예요. 어떤 아이의 책상 밑에 숨어 있는데,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지 너무 걱정스러워 그 자리의 아이를 바라봤어요. 그때 그 친구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쉿’ 하면서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그 순간 모로 누워서 보이던 창문 밖 은행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죠. 이후 <너와 나> 촬영을하며 인서트로 빈 학교를 찍어야 했는데 마땅한 그림을 찾을 수가 없어 학교 복도를 걸었어요. 순간 창밖에서 은행나무 잎이 햇빛을 받으며 아주 예쁘게 흔들리고 있더라고요. 촬영감독님에게 말해 제가 꿈에서 본 시점으로 창밖 풍경을 촬영했어요. 꿈의 한 장면을 감독님이 찍었고, 그때 맺힌 상이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이 모든 과정이 저에게는 영화로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종서

“작품을 하다 보면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그냥 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그때 경험하게 되는 이상하고 마법 같은 무언가가 있는데, 그걸 매직 모먼트라 하더라고요. ‘나는 이걸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연기를 하게 되지?’ 싶은 순간들, 그게 영화 같은 시간, 영화로운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박지환

“눈떠서 지내는 모든 순간이 영화로운 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촬영 현장에서는 세트든, 조명이든, 감독이든, 배우든, 어떤 존재와 마주치는 순간, 배우 박지환에게 생기는 영화로운 지점들이 있어요. 교감하고, 충돌하고, 마주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게 현실이든, 거짓이든, 환상이든, 오해든, 진실이든 시작이 될 테니까요. 끊임없이 충돌하고, 파괴되고, 재생되는 그 시간들이 제게 영화로운 순간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 반면 사람 박지환으로서 내 삶을 영화롭게 만들려는, 영화로움을 꿈꾸는 시간들도 있습니다. NG도 없고, 그래서 다시 찍을 수도, 수정할 수도 없는 이 삶을 영화처럼 들여다보는 순간들이 찾아오잖아요. 그럴 때면 이 삶도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결국 누구에게나 모든 순간이 영화로운 거겠죠.

 

 

 

심달기

“영화 <말아>를 촬영하면서 영화와 실제를 오가는 신비로운 경험을 참 많이 한 것 같아요. 시작부터 그랬어요. 감독님을 처음 만나러 찾아 간 곳이 알고 보니 제 가장 친한 친구의 본가와 같은 건물이더라고요. 그곳이 영화에서 ‘주리’의 집으로 등장하는데, 친구를 만나러 일상적으로 드나들던 곳에서 주리가 되어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묘했어요. 같은 공간을 실제 저와 주리를 연기하는 제가 공유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극 중에서 주리와 엄마가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을 찍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어요. 대개 영상통화 하는 장면은 배우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연기하면, 그 장면을 휴대폰 화면에 합성해 완성하는데, <말아>에선 실제로 엄마 역할을 맡은 정은경 선배님과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이 그대로 영화에 쓰였어요. 그 장면을 찍으면서도 영화와 실제 사이를 오간 것 같아요. <말아>를 생각하면 그런 인상적인 몇몇 경험이 떠올라요.”

 

 

 

서현우

“영화 속 인물로 분장한 후 촬영장에 가면 많은 대화가 시작돼요. 먼저 스태프들과 언제 오셨냐, 어제는 잘 쉬었냐 하며 안부를 물어요. 제가 아닌 작품 속 인물이 되어 대화도 나눠보고요. 연기에 임하다가 잠시 시간이 생기면 현장을 빠져나와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이 촬영하는 모습을 구경하는데, 그때 근처를 지나가던 주민들이 저한테 “지금 영화 촬영하는 거예요?” 하고 말을 걸기도 해요. <정직한 후보2>를 촬영하던 어느 날, 극 중 인물인 ‘조태주’와 어울리는 공무원 차림을 하고 현장에 있던 분들과 한 식당에 간 적이 있어요. 사장님이 저한테 영화 촬영하러 왔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럴 때면 전 “맞습니다” 하며 지금 찍는 영화가 무엇인지, 제 옆에 앉은 감독님은 누구인지 소개해드려요. 그러다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연기하고, 촬영이 끝난 이후에는 다시 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영화 속 인물에게 집중하거나 그에게서 벗어날 때, 현장 안팎에 있는 사람들이 저한테 굉장히 많은 힘을 줘요. 작품 속 세상과 실제 세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모든 순간이 영화 같아요.”

 

 

 

신시아

“영화 <마녀 part2.>의 시작점, ‘소녀’가 아크 밖을 나와 처음으로 눈밭을 걸어가는 장면이 생각나요. 넓은 전경과 함께 풀숏으로 찍어야 하는 장면이라 모든 스태프가 빠지고 카메라와 저만 남았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때 온전히 홀로 그 설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영화 속으로 온전히 들어왔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소녀가 느꼈을 낯섦, 쓸쓸함, 외로움, 그리고 해방감이 모두 고스란히 느껴진 순간이었어요.”

 

 

 

김동휘

“촬영장에서 ‘모니터링을 한다’는 행위 말이에요. 결국 어떤 인물로 분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데, 그 간극이 되게 재밌어요. 17인치 혹은 24인치 모니터를 보는 인간으로서의 김동휘와 또 그 캐릭터 안에 있는 배우 김동희를 볼 때의 간극이요.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서 그게 되게 재밌는 것 같아요. 관객에게 보여드리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관찰자가 된다는 게 좀 영화로운 순간인 것 같아요.

 

 

 

김시은

“영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을 지닌 것 같아요. 촬영 전에 혼자 연습하다 보면 ‘잘해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은 걱정이 들 때가 있어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수많은 사람이 모인 현장에서 발현되는 에너지 덕분에,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답을 찾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특히 감독님이 ‘액션’을 외친 후 1초간 이어지는, 어쩌면 1초보다 짧은 적막을 깨고 배우들이 합을 맞추는 순간에 짜릿한 경험이 자주 일어나요. 영화 <다음 소희>에서 ‘소희’가 마음에 꾹 눌러 담고 있던 감정을토해내는 장면이 지금 문득 떠올라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감정에 북받쳐 누군가에게 소리치는 장면이었어요. 제가 연기하자 상대 배우가 제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더라고요.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 앞에 있는 사람이 배우가 아니라 작품 속 인물로 보였거든요. 배우 간 호흡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그 순간이 참 영화로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