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의 저자 쉴라 제프리스는
화장과 시술을 ‘미용 관습’이라 지칭하는데,

이는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사회적 시선 때문에
미용을 습관처럼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잘 느끼게 한다.

 

최근 미국의 인플루언서이자 모델인 블랙 차이나가 SNS에 바늘로 얼굴을 찌르고 있는 썸네일 영상을 하나 게시했다. 필러를 주입하는 시술이 연상되는 이 장면은 평상시에도 자주 필러 시술을 받는 그이기에 그다지 이슈가 될 일은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바로 필러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넣은 필러를 녹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업로드한 것! 병원에 가는 길부터 담당 의사와 상담하는 모습, 시술하는 장면 등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을 몇 차례에 나누어 올린 그는 심경을 담은 글을 함께 게재했다. “필러를 넣은 얼굴은 내 모습이 아니다. 내 얼굴은 완전히 바뀌었고, 이제는 되돌리려 한다. 새로운 마음으로 나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용기 있는 그의 결정에 응원의 댓글을 보내며 화답했다.

필러를 제거했다고 밝힌 셀럽은 블랙 차이나만이 아니다. 영국 리얼리티 쇼 <조디 쇼어(Geordie Shore)>로 인기를 모은 샬럿 크로스비는 몇 달 전 출산 후 입술에 맞은 필러를 녹였다. “내가 나오는 방송을 보았는데, 부풀어 오른 입술과 얼굴이 너무 우스꽝스러웠다.” 그는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밝히면서 8년 동안 입술에 넣은 필러를 제거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도톰한 입술의 대명사 카일리 제너는 입술 필러를, 래퍼 카디 비는  엉덩이 필러를 녹였다고 SNS를 통해 소식을 알렸으며 코트니 콕스도 한 인터뷰에서 “필러 시술은 가장 큰 실수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때는 과도한 필러 주입으로 비현실적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삼던 셀러브리티들이 일제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주름 하나 없이 탐스러운 입술, 굴곡 없이 팽팽한 얼굴선, 매끈하게 뻗은 콧대 등, 근래 아름다움에 대한 척도는 획일적인 몇 가지 기준으로 정의되어왔기에 셀럽들의 이런 행보가 다소 낯설기도 하다. 복원 시술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해외에서 유행하는 ‘클린 걸 룩’도 비슷한 맥락을 띤다. 매끈한 피부와 결을 살린 눈썹, 원래 혈색 같은 볼과 입술 등 이 룩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내추럴’이다. 앞서 언급한 서구적 미의 기준과 비교하면 민낯이나 다름없는 정도인데, 이것을 틱톡에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놀랍게도 누적 조회 수가 무려 34억 뷰가 넘는다. 이 클린 걸 룩은 챌린지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메가트렌드가 되었고, 10~20대 사이에서 지금까지 유행 중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모든 흐름과 트렌드가 자연스러움을 지향하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급격하게 바뀐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급부상한 보디 포지티브 운동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본연의 몸을 사랑하자는 흐름이 자리 잡았고, 타인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메디컬 뉴스 투데이>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보디 포지티브 운동은 건강한 방식으로 자신을 관리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이끌었으며 실제로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가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전한다. 이것은 단순히 헤어와 메이크업 룩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건강하게 다지는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운동과 식습관, 심리 등의 웰니스 부분까지 폭넓게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커먼센스(Common Sense)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이용 빈도가 높을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SNS로 인해 습관처럼 남과 나를 비교하는 현대인에게 이런 움직임은 더없이 반갑다. 최근 벨라 하디드가 틱톡에 업로드한 영상에서 “가끔은 내가 엄청나게 멍청한 사람 같다. 꾸미는 것도, 거울을 보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싫다”라고 말하는 모습은 남에게 보여주는 이미지와 상반된 현대인의 불안감을 잘 보여주는 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자 배우인 자밀라 자밀도 “각종 다이어트 보조제, 시술 등을 권하는 소셜 미디어에 속지 말자. 우리는 모두 정상적인 몸과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성화된 이유로 건강상의 문제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디즈니 채널의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알린 애슐리 티스데일은 건강 때문에 가슴 보형물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큰 가슴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만족감을 주지만, 불편할 때가 훨씬 더 많았다. 장이 민감해지고 소화계와 신경계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며 지금의 모습에 만족한다고 했다. 빅토리아 베컴과 전직 카레이서 대니카 패트릭도 가슴 보형물을 제거했으며, 특히 대니카 패트릭은 오심, 탈모 등 보형물을 넣었을 때 생긴 건강 문제를 나열하며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니콜 키드먼도 보톡스를 과도하게 맞아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데 문제가 생긴 뒤, 더 이상 성형 시술을 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그렇다면 가장 흔히 하는 시술인 필러를 녹이는 데 문제는 없을까? 더힐 피부과 이주희 원장은 안심해도 된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전했다. “필러를 넣은 후 달라진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과하다고 느낄 때 녹이는 경우가 많아요. 드물지만 필러 시술로 염증이나 혈관이 막히는 부작용이 생겨 녹이는 경우도 간혹 있고요. 하지만 필러의 주성분은 히알루론산이고, 필러를 분해하는 히알루로니다아제는 체내 성분과 유사한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이 결합한 것으로 위험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나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본연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화려하기보다 건강하고 안온한 삶에 대한 바람 등이 차곡차곡 쌓여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코르셋>의 저자 쉴라 제프리스는 화장과 시술을 ‘미용 관습’이라 지칭하는데, 이는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사회적 시선 때문에 미용을 습관처럼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잘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모습을 추구하는 스타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흐름이 어느 때보다 반가울 수밖에. 자신을 끊임없이 치장해야 한다는 외모에 대한 강박과 피로감을 모두 내려두고 그저 ‘나로서 괜찮다’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는 목소리가 아주 오랫동안 들려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