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6명의 필진에게 삶의 코어가 무엇이냐 묻자,
이토록 다채로운 생이 우리 앞에 당도했다.
오늘을 살아내며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그 무언가에 관한 6개의 이야기.
수박과 여름 채소
박솔뫼, 소설가
얼마 전 친구를 만나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뭔가 재미있는 일은 있었는지, 주말에는 뭘 했는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평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친구가 갑자기 인터뷰를 하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바꾸고 물었다. 요즘 당신을 지탱해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 나를 지탱해주는 것? 지탱해주는 것은 음… 산책, 현미밥 그리고 커피? 깊게 생각하면 답하기 더 어려울 것 같아 생각나는 대로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한 것이 산책, 현미밥, 커피였다. 산책과 커피는 늘 필요한 것이었고, 현미밥은 평소 특별히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매일 먹는 것이므로 나온 답이었다. 매일 먹는 것이 나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것일 테니까. 대답을 들은 친구는 의외로 책이나 영화 같은 것이 없네 하며 웃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러게 싶어서 약간 부끄러웠지만 그러고 보면 나는 손에 잡히는 분명한 것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는 것 같다. 극장에서 보내는 시간이나 책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 중요하지만 대답하던 그때에는 산책과 커피가 더 먼저 떠올랐고, 책과 영화라고 말하면 구체적인 느낌이 아무래도 덜한 것 같았다. 요즘 재밌게 본 영화나 방금 전까지 읽던 책 같은 것을 말하고 싶었는데, 그 순간에는 그런 것들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너는? 하고 친구에게 물었을 때 친구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아마 얼마 전 헌책방에서 산 책들과 집에서 보는 영화, 악기 연습 같은 것을 말했던 것 같다. 맞아, 그런 시간들이 중요해 하고 생각하며 요즘 뭔가 재밌는 것이 있었는지 영화는 뭘 보았는지 이어서 물었던 것도 같고.
그때나 지금이나 산책과 커피는 중요하다.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는 걷는 시간이 필요하고 걷다 돌아와 커피를 마시며 쉬는 일은 종종 이전에 하던 일에서 다음 진행할 일로 넘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 현미밥은 여전히 거의 매일 먹는 음식인데, 지금 그 질문을 받는다면 거기에 추가로 수박을 이야기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거의 매일 수박에 대해 생각한다. 집에 가면 수박이 있다거나 수박을 다 먹었다거나 다음에 친구네 가면 수박을 사서 나눠 먹어야겠다거나 그런 생각. 수박을 먹고 있을 때가 가장 좋지만 수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수박 향이 입안에 맴도는 것 같다. 무겁고 자르기 귀찮지만 그래도 수박이 있어서 무더운 여름도 조금 견딜 만해진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가는 길에는 수박을 사 가야지 다짐하며 걸었다. 그렇게 수박을 생각하는 사이사이 가지와 감자, 아스파라거스와 애호박 같은, 여름에 먹으면 더 맛있는 채소들을 이어서 생각한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채소들이지만 역시 제철에 먹는 것이 더 맛있다. 올리브 오일에 채소를 구워서 현미밥과 간단히 밥을 먹고, 어제 사서 잘라둔 수박을 먹으면 그래도 그 순간은 모든 것이 다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나를 지탱하고 내게 힘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