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나없이 마치 공작새처럼 색색의 메이크업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2025 S/S 컬렉션 백스테이지에서 그와 정반대 지점을 향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런던에서 진행된 요한나 파르브 (Johanna Parv) 쇼가 그 주인공. 편안하고 실용적인 애슬레저 룩으로 꾸민 모델들의 화장기 없는 얼굴엔 하나같이 매끄러운 광이 흐르고, 어딘가 모르게 부기가 쏙 빠진 듯 날렵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내추럴 메이크업을 연출한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심지어 ‘제로 메이크업’으로 런웨이에 선 것이다. 요한나 파르브는 ‘페이스짐’이라는 페이셜 피트니스를 선보이는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했는데, 얼굴에 비타민 C와 히알루론산을 풍부하게 함유한 제품을 바르고 괄사로 마사지해 피부의 혈색이 살아나게 만들었다. 저마다 화려하게 치장하기 바쁜 백스테이지에서 이런 행보는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사실 자연스러운 스킨을 내세운 뷰티 트렌드가 더 이상 새로운 양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매 시즌 내추럴 스킨은 트렌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전면에 나선다. 내추럴에서 나아가 로(raw), 베어(bare) 스킨에 대한 열망이 강해진 흐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가리고 가꾸는 행위 자체에 대한 피로도가 극심해졌다는 것이다. 완전무결하게 커버한 밀랍 인형 같은 피부, 실크처럼 보드라운 스킨 피니시. 이런 유의 광고 문구를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 순간부터 결점 없고 반사판을 댄 듯 빛이 나는 피부는 우리 모두의 열망이 됐다. 크고 작은 모공이 눈에 띄는 피부를 몇번이나 원망했던가. 그로 인한 피로도는 ‘꾸밈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을 터. 그렇기에 요한나 파르브의 민낯 행보가 환호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 이 흐름을 증명하듯, 모스키노와 프라발 구룽, 에르뎀 등 여타 빅 쇼에서도 모델들이 간결한 스킨을 내세운 메이크업 룩으로 런웨이에 섰다.
피부를 메이크업으로 가리지 않기 위해 피부 자체의 건강을 바라는 니즈가 높아진 것은 글로벌 리서치 기관 민텔(Mintel)의 연구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스킨케어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이제 비현실적인 광고 이미지에 비판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소비자가 무려 25%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이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화려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중국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무척 놀라운 수치다. 피부 건강에 힘쓰는 흐름에는 후천적 민감성 피부를 호소하는 여성이 많아진 점도 한몫한다. 민텔은 해당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본인이 민감성 피부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소비자의 비율이 40%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이런 이들을 위한 섬유 유연제를 개발했으며, 태국에서는 미셀라 성분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오염물을 씻어내는 제품을 출시하는 등 이전과 다른 소비자의 니즈에 발맞춘 제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이런 시류의 물살을 타고 유수의 브랜드에서 이제 베이스 메이크업을 출시할 때 ‘내 피부 같은 사용감’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지난날 얼마나 커버가 잘되는지를 뽐내던 이들이 앞다투어 리얼 스킨을 표방한 피니시를 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트렌드에 힘입어 용도 변신을 꾀한 제품군은 컨실러다. 완벽한 피부 커버를 위해 존재하기에 자연스러운 스킨 룩이 유행하며 살짝 힘을 잃었다가, 지난해부터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다. 파데 프리 베이스 메이크업이 유행하면서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고 톤업 베이스에 컨실러만 더해 간결하게 마무리 하는 용도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맥에서는 세럼 광 파운데이션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는 컨실러를 출시했고, 국내 브랜드 텐스는 얼굴에 발라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크림처럼 묽고 촉촉한 제형의 컨실러를 선보였다.
제로 베이스 스킨을 ‘덜어냄의 미학’ 정도로 이야기하기엔, 그 서사가 무척이나 길고 깊다. 1분, 아니 1초 단위로 지고 피는 트렌드의 갈랫길에서 수년 동안이나 이 주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데는 앞서 이야기한 길고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베이스 메이크업 자체를 거부하자는 것은 아니다. 뷰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좇는 바르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까지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신이 알아야 할 팩트는,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에게 관심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얼굴에 주근깨가 몇개나 있는지, 다크서클이 푸른색인지 붉은색인지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소리다. 가리고 말고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선택할 일이지만 너무 애를 쓰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 이미 가지고 태어난 피부를 괜스레 원망하진 말길. 가렵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잘 다독이며 내 피부로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가리지 않아도 어여쁘게 보이는 것들이 분명 드러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