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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 디올의 시작점인 파리 몽테뉴가 30번지를 재현한 전시장 입구.

지난 4월, 크리스챤 디올이 사랑한 꽃과 정원이 피어나는 계절과 함께 디올의 75년 유산을 고스란히 담은 전시,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가 한국에 상륙했다. 파리 장식미술 박물관을 시작으로 런던, 상하이, 도쿄 등 세계 곳곳을 거쳐온 이번 전시는 입장과 동시에 관람객을 파리의 몽테뉴가 30번지, 크리스챤 디올의 시작점이자 그가 패션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여성의 행복을 꿈꾸던 곳으로 이끈다. 고객을 맞이하던 살롱부터 컬렉션을 제작하던 아틀리에와 사무실, 패션쇼를 열던 공간까지. 디올의 역사가 시작된 그곳을 두고 크리스챤 디올은 ‘또 하나의 나’라고 표현했다. 상징적인 장소가 주는 힘 때문일까. 크리스챤 디올은 1947년 그의 첫 컬렉션에서 ‘뉴룩(New Look)’이라 불리는 전설적 실루엣을 완성했다. 뉴룩을 선보이는 전시 공간 중앙에는 디올 디자인의 정수를 담은 ‘바’ 수트가 놓여 있다. 전쟁 직후, 검소함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원단을 아낌없이 써 만든 풍성한 스커트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공간 주변에는 역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새롭게 재해석한 바 수트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이 중 에디터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2023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 울 소재 바 재킷의 군더더기 없는 정제된 실루엣이 우아하고도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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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달항아리의 내부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구 형태 속에 구현한 디올 가든.

“둥글고 부드럽게 감싸는 달항아리는 우주의 기운과 자연의 순환을 담은 형태입니다. 저는 그것을 사람이 들어설 수
있도록 확장된 하나의 세계이자, 디올의 정신을 구현하는 새로운 디올의 세계로 상상했습니다. – 작가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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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가든에 설치한 작품과 아티스트 김현주의 모습.

“향수는 드레스를 완성하는 마지막 터치”라 말할 정도로 향에 진심을 다한 크리스챤 디올. 향기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미스 디올’ 방을 지나면, 그가 평생 예찬한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국 아티스트 김현주의 설치미술 작품으로 구현한 이 공간은 거대한 달항아리 안에 흘러가는 사계절의 풍경을 담아냈다. 전통 한지로 만든 수많은 나비와 나무, 꽃, 그리고 디올 하우스의 룩이 어우러지며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신비로운 순간을 완성한다. 봄의 찬란한 빛, 선명한 여름날의 그랑빌 정원과 바다, 가을 낙엽을 닮은 브라운, 파리의 겨울에 이르기까지. 원을 그리며 펼쳐진 다채로운 컬렉션과 전시장에 부드럽게 흐르는 음악이 오감을 자극하며 전율을 안긴다. “디올이 ‘꽃을 닮은 여성’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섬세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한 것처럼, 저도 한지라는 매체 안에서 그 같은 대비와 조화를 포착하고자 합니다.” 김현주 작가의 말을 통해 디올이 그토록 소중히 여긴 삶과 자연의 조각들이 왜 그의 창조 원천이 되었는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창조적 영감은 마치 나무의 수액이 흐르듯 하우스 전체에 스며들어 재봉사의 손끝을 스치고, 투왈(toile) 위를 바쁘게 오가며 바느질을 하거나 솔기 앞에서 머뭇거리는 손길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바로 그 손끝에서 미래의 스타일이 탄생하는 것이다.” –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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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아카이브를 만날 수 있는 ‘디올의 유산’.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디올 하우스를 이끌어온 역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아카이브가 펼쳐진다. 이브 생 로랑, 마크 보앙, 지안 프란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그리고 현재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까지. 각 디렉터는 디올의 상징적 요소를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해 하우스의 유산을 이어왔다. 아티스트 제이디 차(Zadie Xa)의 손길로 완성한 조각보 커튼을 따라가며 아카이브를 감상하다 보면 등장하는 그의 신작, ‘크리스챤 디올의 초상화’. 한국의 전통적인 보자기와 함께 점성술에 심취했던 크리스챤 디올의 취향을 담은 ‘행복은 꼭 찾아온다’는 꽃말을 지닌 은방울꽃이 그려져 있어 흥미를 더했다.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공간은 레이디 디올 백만을 위한 공간과 화려한 무도회 드레스에 바치는 찬사를 담은 구간이다. 한국 아티스트의 독창적 시선이 담긴 26점의 레이디 디올 백들을 선보이는 이곳은 한국을 위해 최초로 구성한 공간으로, 디올 하우스와 한국 사이의 깊은 유대를 기념한다. 그리고 꿈처럼 펼쳐지는 마지막 장면.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계단을 따라 늘어선 순백의 드레스는 마치 은하수를 옮겨놓은 듯하다. 여기에 ‘빛의 조각가’로 알려진 수 써니 박(Soo Sunny Park)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이 더해지며 공간은 빛과 환상으로 완성된다.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잠시 분주한 현실은 잊고 디올이 선사한 찰나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기분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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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의 장인정신과 오트 쿠튀르 디자인에 대한 예찬을 담은 아틀리에 공간.

디올 하우스가 꿈꾼 방대한 패션의 일대기를 집대성한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 전시 오프닝 이벤트 현장에는 수많은 별들이 함께했다. 디올의 글로벌 앰배서더 블랙핑크 지수를 비롯해 한소희, 김연아, 세븐틴 민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로몬 등이 한자리에 모여 서울의 밤을 찬란하게 빛냈다. 디올은 오늘도 과거를 단단히 딛고 그 매혹적인 여정을 이어가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중이다. 전시는 서울 DDP에서 2025년 7월 13일까지 열리며 입장권은 디올 공식 웹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