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질서가 혼란스럽고 때로는 부정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과거와 미래 사이의 긍정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미우미우의 업사이클 컬렉션을 조명하는 단편영화 <그랑드 앙비(Grande Envie)>를 선보인 캐서린 마틴이 전하는 지속 가능성의 가치.

©Hugh Stewart

미우미우가 2020년부터 세계 곳곳의 빈티지 전문점에서 엄선한 제품을 재해석해 선보이는 ‘미우미우 업사이클 컬렉션’. 순환형 디자인 실천을 장려하기 위해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이전에 사랑받았던 옷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힘써왔다. 올해 6월 새로 공개한 미우미우 업사이클 컬렉션은 의상, 프로덕션, 세트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캐서린 마틴(Catherine Martin)과 협업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위대한 개츠비>(2013)로 의상상을 받는 등 네 차례 수상한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연출에 도전해 미우미우 업사이클 컬렉션을 입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단편영화 <그랑드 앙비>를 완성했다. 1920~1930년대 프랑스 남부, 여름날의 모험을 꿈꾸는 세 젊은이를 만난 외로운 백작의 이야기. 젊은 시절에 대한 갈망 속에서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던 백작 곁에 세상을 떠난 아내가 유령처럼 나타나 과거와 현재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시간의 경계를 지우는 서사를 통해 캐서린 마틴은 ‘오래된 것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업사이클의 미학을 전한다. 이번 작품의 공개를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5월 20일, 영화의 축제가 한창인 칸에서 열렸다. 감독으로서 첫 작품을 선보인 캐서린 마틴을 현지에서 만나 연출 과정, 패션과 영화의 접점, 그리고 지속 가능성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우미우와 협업해 만든 단편영화 <그랑드 앙비>의 공개를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칸에 왔다. 권위 있는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를 찾아온 소감이 어떤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내 배우자이자 영화감독인 배즈 루어먼(Baz Luhrmann)과 함께 네 번이나 칸영화제를 찾았다. 그런데 올해는 내가 감독으로서 처음 만든 작품을 가지고 오게 되어 감회가 다르다. 연출자로 데뷔할 기회를 주고, 나를 전적으로 지원해준 미우미우 팀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내 작업’을 할 수 있는 특권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늘 상기한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신선한 관점과 긍정적 태도로 임하려고 노력해왔는데, 이번 협업 덕분에 꿈을 현실로 만드는 귀한 경험을 했다.

미우미우와 단편영화 작업을 함께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미우미우 와는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협업했다. 내가 프로덕션 디자인에 참여한 배즈 감독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96)의 의상 디자이너가 미우치아 프라다를 소개해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영화 의상 작업은 여러 번 함께했지만, 이번처럼 브랜드의 의상과 패션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건 처음이었다. 배우를 비롯한 스태프들을 직접 이끈 경험도 없어 두렵기도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배우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섭외했나?

가장 먼저 출연을 확정한 배우는 특별 출연한 윌럼 더포(Willem Dafoe)였다. 누구도 마다할 수 없는 배우인 윌럼이 섭외 요청에 응하자,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스케줄부터 미우미우와의 관계까지, 여러 조건을 테트리스처럼 맞추면서 라인업을 채워갔다. 칼리나 리앙(Callina Liang), 데이지 리들리 (Daisy Ridley), 재스민 사보이 브라운(Jasmin Savoy Brown) 등이 이번 영화에 함께해주었다.

배우들과 소통하며 영화를 완성할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뒀나?

배우들이 이야기의 상황과 맥락을 충분히 이해한 뒤 각자의 해석을 더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영화에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했다. 배우를 비롯한 많은 사람과 한정된 기간에 작업하면서 무엇을 촬영해야 할지 신중히 생각했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확보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런데 촬영을 마친 후 첫 번째 편집본을 배즈 감독에게 보여줬더니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정보가 너무 많고 직관적이야.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전하는 동시에 좀 더 시적으로 풀어낼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 4분가량의 짧은 작품이 완성되었다.

짧은 러닝타임에 압축한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나?

난 항상 어제와 내일,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낙관을 연결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영화에도 과거를 그리워하는 백작과 미래에 대한 열정을 지닌 세 젊은이가 등장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이 우연히 백작의 저택을 찾아가 그의 삶을 잠시 경험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저마다 지닌 욕망을 그리고자 했다. 영화 제목인 ‘그랑드 앙비’가 ‘큰 욕망’을 뜻하는 만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욕망이 작품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게 이 이야기와 미우미우 업사이클 컬렉션이 맞닿은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업사이클 또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일일 테니 말이다.

이번 미우미우 업사이클 컬렉션에 대해 “모든 룩이 해변과 항해 문화가 만들어낸 쾌락주의를 생생하게 표현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특성을 작품에 어떻게 반영했나?

이번 컬렉션에 영향을 준 시기인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에 주목했다. 전쟁으로 정치적 먹구름이 드리운 시대였지만, 그럼에도 여름철의 프랑스 남부는 뜨거운 태양 아래 휴가를 누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름다운 자연이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준 거다. 그 자유로운 분위기가 영화 속 인물들의 피크닉 장면에 담겨 있다. 다 같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미우미우 업사이클 컬렉션의 실루엣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었다.

특정한 컬렉션을 조명하는 작품인 만큼, 의상도 중요하게 여겼을 듯한데 어땠나?

그렇다. 인물이 움직이는 모든 순간에 옷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담아내는 게 이번 작품의 주요한 과제였다. 관객이 영화의 이야기뿐 아니라 미우미우 업사이클 컬렉션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빈티지 레이스를 조합하는 등 과거의 아이템을 아름답게 재탄생시킨 미우미우 팀이 멋진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 매력을 영화에 담아내겠다는 목적을 달성한 듯해 기쁘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룩이 소중하다. 6월 7일 런던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의 미우미우 매장에서 공개되는 이번 컬렉션이 큰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

작품을 완성하고 공개하는 과정을 지나온 지금, 업사이클에 대해 어떤 고민을 품고 있나?

업사이클에 대한 관심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폐기물에 대한 인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쌓여가는 쓰레기를 어떻게 버릴 것인가?’,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어디에 둬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 패션은 자연을 오염시키고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최근 패션의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구상 중인데, 패션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미우미우의 업사이클도 근본적 해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노력이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화두를 제시하다 보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말에 동의한다. 물론 소비 행위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패션의 소비자이자 애호가로서 내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 하지만 쉽게 버려지는 것들이 지닐 수 있는 가치를 계속 상상하면서 ‘오래된 것도 다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더욱 열어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패션을 넘어 널리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패션 하우스의 행보가 영화계를 비롯한 다른 산업에도 본보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랑드 앙비> 또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작품에 관객의 마음에 어떻게 가닿기를 바라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대화하는 순간이 멋진 창조적 긴장을 만들어낸다고 느낀다. 현재의 질서가 혼란스럽고 때로는 부정적으로 여겨질지라도, 과거와 미래 사이의 긍정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 그 마음가짐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패션계에 오랜 기간 몸담아왔고, 감독으로서 영화계에 첫발을 들인 당신이 생각하는 패션의 영향력에 대해 묻고 싶다. 패션이 영화, 나아가 현대의 삶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나?

패션과 영화는 끊임없이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공생 관계다. 의상은 영화적 스토리텔링의 단서 중 하나이고, 아무리 이야기가 훌륭해도 관객이 의상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그 의미가 퇴색할 수도 있다. 영화 속 이야기뿐 아니라,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패션은 큰 도움이 된다. 대중이 패션에 돈을 쓰는 양상은 그 시대의 욕망을 드러낸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그 욕망을 용인할 수도, 부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반응하든, 적어도 당대 사람들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본다. 미우치아 프라다 도 “패션은 즉각적인 언어”라고 말하지 않았나. 우리가 매일 아침 옷을 고르는 것조차 자신이 누구인지를 주변에 알리는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 패션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본적 요소가 아닐까 싶다. 패션은 모든 삶의 배경이자 타인에게 건네는 대화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