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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오징어 게임> 시즌 2, 영화 <사마귀>, 드라마 <언프렌드>에 연이어 출연하며 숨 가쁘게 달려왔어요. 요즘은 어떤 나날을 보내는 중 인가요?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데뷔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 현 장을 떠나 있는 건 처음이라 초반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요.(웃음) 발레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평소처럼 시간을 보내다가 얼마 전 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발리 여행을 다녀왔어요.

발리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나요? 하루는 석양을 보러 바다에 갔어요. 해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모두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눈앞의 풍경을 음미하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무척 생경하게 다가왔어요. 그동안 이런 사소한 순간조차 눈에 담을 틈 없이 바쁘게 살아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앞으로는 작품을 마칠 때마다 혼자 훌쩍 떠나와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이번 여행을 계기로 용기가 생겼어요.

평소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편인가요?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충전이 되는 편이에요. 꼭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또 촬영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에너지도 있더라고요. 쉬는 동안 그 에너지가 그리울 때가 있었는데, 그때 새삼 배우라는 일이 축복처럼 느껴졌어요.(웃음)

며칠 후면 <오징어 게임> 시즌 3가 공개되죠. 지난 시즌에 새롭게 등장 한 ‘노을’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직접 오디션 테이프를 보내 작품에 합류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노을이라는 캐릭터와 처음 만난 순 간을 기억하나요? 생생하게 기억나요. <오징어 게임>에서는 워낙 다양 한 등장인물의 서사가 그려지잖아요. 제가 연기한 노을은 북에 두고 온 어린 딸을 찾기 위해 게임에 뛰어든 인물이면서, 동시에 작품에서 처음 으로 핑크 가드의 시야를 대변하는 캐릭터예요. 작품의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한 줄기를 맡아 설명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라 무척 감사했어요.

작품에 임할 때 “인물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고, 어디를 바라보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고 말했어요. 노을이라는 인물에는 어떤 해석을 더했나요? 황동혁 감독님과 인물의 전사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노을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노을이라는 인물의 핵을 이루는 감정은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작품에서 다루지는 않지만 삶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인물이고, 모든 감정과 에너지를 이미 밑바닥까지 소진한 사람이겠구나 싶었죠. 노을은 다른 등장인물들처럼 선의나 악의 중 어느 한쪽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래도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마지막 장을 앞둔 <오징어 게임> 시즌 3에서는 노을의 어떤 새로운 면 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오징어 게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피날레 같은 시즌이잖아요. 4백56명의 참가자 개개인이 다른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의 동력이 되는 자신만의 기준도 저마다 다른데, 이 대목이 가장 극 대화되면서 최후를 향해 가는 이야기가 중심이 될 거예요. 이 과정에서 노을이 지키고자 하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도 더욱 명확히 설명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오늘 화보의 테마는 ‘헨젤과 그레텔’이었어요. 숲속에서 길을 잃지만 자신들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가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죠. 선택의 기로에 설 때, 박규영 배우는 어떤 기준으로 방향을 결정해왔는지 궁금해요. 제 앞에 수많은 경우의 수가 놓여 있을 때, 늘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어요. 지금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지? 먼 미래나 과거가 아닌 지금의 제가 어떤 마음인지를 기준으로 삼는 거죠.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우연히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하고 싶다는 확신이 선 뒤로는 주저하지 않았어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그리고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내린 작은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확신에 찬 선택이 후회로 돌아올 때도 있지 않나요? 그럴 땐 늘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란 걸 되새겨요. 다른 길을 갔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대신 이 선택이 결국 또 다른 나를 만들어줄 거라고 믿으면 후회보다 기대가 앞서더라고요. 다가올 고난을 앞서 걱정하기보다 지금의 직감을 따라 움직이면서 이후에 펼쳐지는 일들을 충분히 즐겨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 난관에 부딪히면 제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예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해결하고, 어렵다면 이 경험 또한 자양분이 될 거라 믿고 견딥니다.(웃음)

건강한 방식이네요.(웃음) 2016년에 데뷔한 후 한 해도 쉬지 않고 작품 에 임하며 관객과 만나왔어요.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남주리’로 처음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고, <스위트홈>의 ‘윤지수’, <셀러브리티>의 ‘서아 리’ 등 인상적인 캐릭터를 여럿 남겼죠. 박규영 배우가 사랑하는 인물들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진심으로 알고 있는 감정,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품은 인물들이에요. 제게 연기란 결국 인물에게서 저와 닮은 구석을 찾아내 극대화하는 작업인 것 같거든요. 단순히 인물과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 인물을 지탱하는 근간의 감정을 겪은 적이 있는지가 중요해요. 그래서 여태껏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온 것 같고요.

그렇게 인물에 온전히 동화되다 보면 지금껏 연기해온 인물들이 배우에게 남긴 흔적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20대 때 통과해온 캐릭터들을 통해 저라는 사람이 새롭게 덧입혀지고, 때로는 비워지기도 했어요. 한 인물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흡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 안에 있는 수많은 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연기의 즐거움은 거기에서 나오는 것 같고요.

곧 데뷔 10주년을 맞이하죠. 긴 여정을 지나오며 내적인 변화가 찾아오기도 했나요? 책임감에 대한 생각이 더욱 구체화됐어요.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보냈을 시간을 생각하고, 제 연기를 보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는 관객들의 마음에 어떤 방식으로든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 한층 확고해졌어요.

그간 걸어온 길을 하나의 선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쭉 뻗은 일자 도로 같아요.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커다란 우여곡절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스스로 우여곡절이라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연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신 고마운 분들이 곁에 많았어요. 20대 내내 어떠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저만의 중심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한 덕분인 것 같기도 해요. 앞으로도 쌓아갈 순간이 많겠죠. 지금처럼 올곧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길을 걸어나가며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야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어요. 솔직하지 못한 선택을 한다거나, 구태여 거짓말을 한다거나, 최후의 선택 앞에서 용기 내지 못하는 순간은 만들고 싶지 않아요.

올해도 어느덧 절반이 지났습니다. 그 다짐은 잘 지켜지고 있나요? 네. 지금은 부끄러운 게 없어요. 그래서 남은 한 해도 지난 계절처럼 살아보려고요. 그것만으로도 후회 없는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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