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국 인터뷰 드라마 멸망

니트 스웨터 발렌시아가 바이 분더샵(Balenciaga by BoonTheShop).

 

사이코패스에게 아버지를 잃고 동생이 납치당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자라 범죄를 분석하는 프로파일러가 되었고 계속 궁금해했다. 그는 복수심이나 울분, 원망, 분노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이코패스가 아버지를 죽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서 서인국은 이 이상한 남자, ‘이현’을 연기했다. <너를 기억해>에는 사이코패스인 동생과 동생을 납치한 또 다른 사이코패스, 비밀을 하나씩 간직한 사람들까지 온통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16부 내내 이현은 감정을 꾹꾹 눌러 감추다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폭발시켰고, 또다시 감정을 눌렀다. 모든 게 처음이어서 무섭기만 했던 <사랑비>를 시작으로 멋모르고 덤볐기에 오히려 즐거웠던 <응답하라 1997>,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된 <고교처세왕>과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극한의 상황에서 감정을 폭발시켜야 했던 <왕의 얼굴>을 거쳐 <너를 기억해>에 이르러 서인국은 캐릭터를 고민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매번 다른 허들을 넘으며 달리는 중이다.

 

서인국 인터뷰 드라마 멸망

니트 풀오버 우영미(WooYoungMi), 팬츠 폴 스미스(Paul Smith),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너를 기억해>가 끝나고 뭘 하며 지냈나? 그냥 푹 쉬었다. 친구들 만나서 술도 마시고 웨이크보드도 타고. 지난 주말에도 웨이크보드를 타러 갔다 왔다.

쉽지 않은 작품이었을 것 같다. 작품은 잘 보내주었나? 솔직히 지금도 힘들다. 지금 힘든 건 캐릭터로 인한 후유증이라기보다는 촬영하면서 생긴 습관 때문이다. 3개월 넘게 밤샘 촬영을 하며 버티던 생활 패턴이 아직 남아 있어서 두세 시간 자면 눈이 번쩍 떠진다. 요즘은 몸이 계속 힘든 상태다.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이현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질감 때문에 힘들었다. 이번에 연기한 이현이라는 캐릭터는 진짜 이상한 남자다. 어릴 때 자식인 자신을 사이코패스로 여기는 아버지 때문에 정체성이 혼란스러웠던 때문인지 그는 자기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면서도 슬퍼하거나 아버지 를 죽인 사람에 대한 증오나 복수심을 키우는 대신 그가 아버지를 죽인 이 유를 궁금해했다. 어떤 현상을 대하는 접근 방법이 나와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였다. 한번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을 납치한 범인을 마주하고 식사를 하는 장면을 찍는데 뒷골이 땅기고 혈압이 오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캐릭터에게 이질감을 느낀다는 건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며 생긴 내 윤리관과 좀처럼 맞지 않는 이현을 연기하는 순간에는 엄청 몰입했지만, 컷 사인이 떨어지면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무사히 잘 마쳤다. 16부를 이끌어오며 힘들 때면 어떻게 버텨냈나? 연기하는 순간에는 무척 신이 났다. ‘내가 언제 이런 캐릭터를 만나보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연기하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가쁠 정도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그런 순간이면 이상하게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러다 그 장면을 끝내면 다시 캐릭터와 나 사이의 괴리감때문에 힘들어졌다. 힘든 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연기할 때의 카타르시스 때문인 것 같다. 참 이상하지. 입 속이 늘 헐어 있을 만큼 몹시 힘들었는데, 또 엄청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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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와 니트 스웨터 모두 프라다(Prada).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 같나? 많이 변했다. 처음 데뷔했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신나기만 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연기가 어려워졌다. 문득 내가 너무 익숙한 연기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전 작품에서 했던 걸 끄집어 낸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 그런데 이제는 순수하게 내가 지금 맡은 역할만 생각하는 법을 익혔다. 그간 쌓아온 경험들 덕분에 하나부터 열까지 따질 수 있게 되었다. 그 경험들이 고맙다.

벌써 스물아홉이다. 20대의 마지막 해를 잘 마무리하고 있나? 큰 것을 하나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오며 힘든 순간이 분명 더 많았을 텐데,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지 않나. 그래서 <너를 기억해>를 할 때가 특히 힘들었고, 잘해냈다는 생각을 한다. 내 20대는 후회 없이 열심히 산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대중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항상 내 직업에 충실하며 살았다. 가끔 요즘 왜 앨범을 내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사실 음악을 놓은 적이 없다. 오히려 음악에 대한 욕심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프로듀서가 되어 앨범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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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언더커버 바이 무이(Undercover by MUE), 셔츠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데님 팬츠 아르마니 진(Armani Jeans), 구두 닥터마틴(Dr. Martens).

 

의외다. 음악보다는 연기에 더 집중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제작 편수로만 보면 앨범보다 드라마가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타 수업도 받고 작사, 작곡 공부도 하며 음악을 계속 하는 중이다.

새로운 앨범은 언제 만날 수 있는 건가? 때가 되었다는 이유로 앨범을 내고 싶지는 않다. 시기를 정해놓으면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장르를 굳이 제한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음악에 내 얘기를 담고 싶다. 내가 부르는 노래에 담긴 멜로디와 가사가 내 얘기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안에 쌓아둔 걸 끄집어내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것 있지 않나. 비가 오는 날엔 막걸리가 생각날 때도 있고 소주가 당길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나가기 귀찮을 때도 있다. 같은 상황에도 매번 다른 기분. 어느 순간 내가 느낀 즉흥적인 기분을 음악에 담아내고 싶다. 그야말로 솔직한 내 얘기와 내 기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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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터틀넥 풀오버 엠피 디 마시모 피옴보 바이 쿤(MP di Massimo Piombo by KOON), 팬츠 알테아(ALTEA).

 

지금부터 당신의 오늘에 대해 물어보려고 한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아침 8시쯤 일어났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 돼지 목살이 있길래 꺼내서 아주 매운 청양고추, 쌈장이랑 먹었다. 참 달걀말이까지 만들어 먹었다.

오늘 들은 음악은? 뭐였더라. 아, 존 메이어의 ‘그래비티’.

오늘 왜 그 옷을 골라 입었나? 어제 반바지를 입어서 오늘은 긴 바지를 입고 싶었다. 패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냥 그때그때 입고 싶은 걸 꺼내 입는다. 쇼핑도 계절이 바뀔 때 한 번씩 하는 게 전부다. 여름에는 여름옷, 겨울에는 겨울옷.

자기 전엔 뭐 할 건가? 남은 게임 해야지. 플스 게임을 하는데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라서 한 번 깨려면 며칠 걸린다. 요즘은 배트맨 게임을 하고 있다. <너를 기억해>가 끝나고 별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보내는 중이다. 영화도 감정적으로 기복이 큰 작품 말고 <미니언즈>처럼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되는 것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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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와 니트 스웨터, 팬츠 모두 프라다(Prada), 구두 처치스(Church’s).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서인국은 우리가 보는 서인국과 많이 다른가? 완전히 다르다. 친구랑 있을 때는 너무 편하니까. 오늘 같은 화보 촬영장에 와서 장난스럽게 사람들을 툭툭 치면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친구와 함께 있으면 행동, 표정, 말투 모든 게 달라진다. 그리고 대화의 수준도 어려지는 느낌이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시끌벅적 떠들 때도 있지만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각자 웹툰을 보다가 생각나면 술잔을 부딪히는 식이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지트는 어디인가? 주로 우리 집에서 모인다. 메뉴는 거의 치맥. 노래방에도 자주 간다.

가수도 노래방에서 노래를 열심히 하나? 말이라고! 엄청 열심히 부른다. 잘 부르려고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막 신나게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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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드 재킷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헨리넥 니트 스웨터 발렌시아가 바이 분더샵(Balenciaga by BoonTheShop), 팬츠 알테아(ALTEA), 구두 알든 바이 유니페어(Alden by Unipair).

 

촬영 현장에서의 당신은 어떤가? 데뷔 당시와 지금의 서인국은 달라졌을까? 변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 같다. <사랑비>를 찍을 때만 하더라도 아무 것도 모르고 무섭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상당히 방어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때부터 연기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사랑비>를 할 때는 <슈퍼스타K>로 연예계라는 곳에 발을 들인 지 2년쯤 지난 때였다. 지금껏 살아온 세상과 판이하게 달라 무척 힘든 시절이기도 했다.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고 친구에게 얘기하자니 괜한 소문이 날까 두려워 속에 쌓아두기만 했다. 그러다 <사랑비>의 ‘김창모’를 만나, 비록 내 진짜 감정이 아닐지언정 감정을 표출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내가 연기라는 것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연기를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 아마 평생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연기가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가며 오랫동안 연기를 하고 싶다. 가늘고 길게.(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청춘은 어떤 모습인가? 나이와 상관 없이 다음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면 청춘이 아닐까? 나는 고등학생 때 가수가 되고 싶어 쉬는 시간마다 노래를 부르고 학교가 끝나면 음악 학원에 가서 또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내가 만들고 싶은 앨범과 하고 싶은 연기를 위해 또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그 시간이 모두 청춘의 순간이 아닐까? 나는 내 청춘을 잘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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