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RHEE 절제를 설계하는 맥시멀리스트

리이 주현정과 이준복이 이끄는 ‘리이’는 절제된 맥시멀리즘 속에 공예적 디테일을 더하고 질감의 변주를 꾀한다.

주현정이 착용한 싱글 브레스트 블레이저, 트라우저.
이준복이 착용한 스트라이프 더블 브레스트 재킷, 티셔츠, 팬츠 모두 RE RHEE.

만나서 반갑다.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리이의 디자이너 이준복과 주현정이다. 리이는 “다시 나를 찾다”라는 슬로건 아래 군더더기를 없앤 아름다움을 그려가는 브랜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곳은 지난 3월에 문을 연 리이의 새로운 거점이다. 이 공간을 처음 구상하며 어떤 고민을 했나? 1933 리이 명동 스토어는 1백 년 가까이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가 덧입혀진 공간이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정제되지 않은 흔적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원형을 보존한 벽돌과 한국 전통 기와, 서양식 철근 구조물에 현대적 동선과 조명을 더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겹쳐 흐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지금 모델들이 입고 있는 룩은 곧 파리에서 선보일 2026 S/S 시즌 컬렉션의 일부다. 이 룩에 담은 이번 시즌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2026 S/S 시즌의 주제는 ‘실용적인 시인 (Practical Poet)’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 속에 은밀하게 숨겨진 감정을 탐구한 컬렉션 이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 시가 들리지 않는 마음을 끌어올리듯, 우리는 옷으로 기억을 기록한다. 구조적인 테일러링으로 시적인 디테일을 표현했고, “감정은 언제나 말보다 느리다”라는 이번 시즌의 메시지를 레이어링을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이번 시즌도 컨셉코리아를 통해 파리에서 쇼를 선보인다. 외부에서 바라본 리이의 강점을 짐작해본다면? 리이는 한 가지 미감에 머물지 않는다. 매 시즌 ‘마지막에 무엇을 남길까’를 먼저 정하고, 그에 따라 미니멀부터 맥시멀까지 유연하게 전개한다. 구조, 패턴, 소재, 스타 일링의 비중을 조정해 시즌 메시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형태로 완성한다. “성능 대비 합리 적인 가격”이라는 고객 평가를 기준 삼아 품질은 유지하면서 접근성을 높인다. 오래 입을 수록 가치가 깊어지고, 계절과 유행을 넘어 손이 가는 옷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지난 시즌에 이어 쇼의 베뉴가 된 팔레 드 도쿄 미술관은 동시대성과 실험 정신이 공존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디자이너로서 이 공간이 어떻게 다가오나? 팔레 드 도쿄는 ‘비워진 공간’이 가진 긴장감이 인상적인 장소다. 구조적이고 여백이 많은 공간은 리이가 추구하는 태도와 잘 어울린다. 이번 시즌에도 공간과 옷이 대화하는 방식으로 런웨이를 구성할 계획이다.

평소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 현대미술가 서도호의 작품을 좋아한다. 작가가 개인의 기억과 정체성을 건축적 구조와 투명한 소재로 섬세하게 시각화 하는 방식이 리이의 작업에 많은 영감을 준다. 특히 그가 만든 패브릭 건축물들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시간과 경험이 쌓인 ‘내면의 집’을 보는 듯하다. 레이어링과 여백, 보이지 않는 구조를 탐구하는 태도 역시 리이가 정제된 균형을 찾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

리이는 소재에 진심을 다하는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최근 유난히 깊이 빠져든 소재가 있나? 최근에는 실루엣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울 혼방 소재와 투명하면서도 단단한 오간자 소재를 주로 사용한다. 이 두 소재를 겹겹이 쌓아 올려 리이가 지향하는 형태를 완성해가고 있다.

두 디자이너가 함께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데 서로의 시선이 달라지는 때도 있나? 룩북이나 캠페인을 기획할 때는 같은 옷이라도 표현 방식을 놓고 의견이 갈릴 때가 있다. 하지만 서로의 감각을 신뢰하기 때문에 결국 더 좋은 해답에 도달한다. 이렇게 다른 시선이 부딪치고 조율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미학을 완성했다.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피드백이나 어떤 문장이 있나? 옷에 대한 것이든, 브랜드에 대한 것이든 좋다. “입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졌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리이는 단순히 옷을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 입는 사람의 내면과 꾸준히 소통하며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옷을 만들고자 한다. 한국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의 옷들은 매 시즌 다른 공간과 이야기를 품으며 해외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 몰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는 방식’. 미묘한 감정의 한 끗을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을지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K-디자이너’라는 말이 점점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지점이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요소가 있다면? 리이는 국적이나 지역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구조적 조형성과 절제된 디자인 언어로 작업한다. 하지만 여백, 절제, 중첩이라는 한국적 문법만큼은 공유하려고 한다. 그래서 리이의 옷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한국적 정서를 품으며 동시대에 K-디자인으로 인식될 수 있는 차별성을 갖는다. 이러한 감성을 지나치게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K-패션의 흐름 속에서 유연하게 확장해가고자 한다.

‘K-패션’이라는 책이 나온다면 디자이너 이준복과 주현정은 어떻게 묘사되고 싶나? ‘보이지 않는 감정을 옷으로 기록해 시간 속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감각을 만든 디자이너.’ 리이의 옷이 입는 사람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