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BOM 경계를 넘어서는 게임 체인저
본봄 여러 나라에서 살아온 경험과 풍부한 문화적 감수성은 조본봄을 경계 없는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그는 직선과 곡선,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교차하는 옷으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완성한다.
만나서 반갑다.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본봄을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 조본봄이다. 올해로 만 5년 차다.
본봄의 마지막 피지컬 쇼인 2022 F/W 시즌 런웨이를 기억한다. 오프닝 모델로 올데이 프로젝트의 타잔이 등장했는데.(웃음) 당시 그는 경력이 전혀 없는 모델이었지만, 이 친구가 문을 열면 신선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크롭트 셔츠와 핫팬츠를 입은 그의 모습은 1970 년대 일본 학생의 반항적인 무드를 담아내는 쇼 컨셉트와 딱 맞아떨어졌다.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한 나의 첫 쇼였고, 그의 첫 런웨이였다. 내게도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작업 공간에 꼭 틀어두는 음악이나 손이 가는 물건이 있나? 작업할 땐 백색소음이 필요해 늘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놓는다. 단, 새로운 건 내용에 빠져 집중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이미 본 작품만 반복 재생한다. 성인 ADHD인가 싶을 때도 있다.(웃음) 즐겨 보는 건 페드로 알모도바르, 루카 구아다니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들이다.
2026 S/S 시즌 컨셉코리아를 통해 처음으로 파리에서 쇼를 선보인다. 외부에서 바라본 본봄의 강점은 어떤 부분일지 짐작해본다면? 본봄은 쇼에 강한 브랜드다. 우리 옷은 멀리서 봐도 형태가 눈에 들어오고, 가까이에서 보면 완성도와 손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의 영감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이번 시즌은 텍사스의 웨스턴 무드와 F1 드라이 버들이 입을 법한 바이커 룩에서 출발했다. 두 스타일은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어릴 적 텍사스에서 산 기억을 되짚었고, 런던 유학 시절부터 모아온 바이크 웨어를 다시 꺼내 보았다. 바이크 웨어는 어깨를 넓히고 허리를 조이며 팔의 곡선을 살려 이상적인 남성 실루엣을 만들어주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는 ‘남성 버전의 코르셋’ 같은 바이커 웨어를 상상했다. 여성이 코르셋을 입었을 때와 효과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파리 무대를 준비하며 작업 방식이나 시선에서 달라진 점이 있나? ‘파리에서 여는 첫 쇼’라 는 부담감과 의미는 크다. 쇼를 열지 않을 때도 늘 디테일이 과장된 쇼피스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더 시간을 많이 들여 본봄식 쿠튀르를 선보이려 한다. 이국의 사람들이 “와우” 하고 감탄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고 있다.
디자인 외적으로 본봄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을 대하고 반성했다.(웃음) 본봄은 디자인 외적으로 마케팅을 잘하는 브랜드는 아니다. 앞으로는 오프라인 쇼나 매장, 온라인 채널 등을 마련해 소비자가 다양한 접점에서 본봄의 미학과 감도를 직접 경험하도록 할 계획이다.
지금도 가끔 꺼내보는 잊히지 않는 시즌이 있나? 2023 Spring 시즌이다. 2022 Winter 시즌 생산을 마무리한 직후, 중국의 갑작스러운 수출 제재로 출하가 중단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올 블랙’ 컬렉션을 선보였다. 바이어들에게는 실루엣을 강조하기 위해 컬러를 절제했다고 설명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본봄 장례식’이라 생각했다.(웃음) 결과적으로 컬렉션이 성공을 거뒀고, 지금은 탄탄한 파트너십과 사업적인 대비가 갖춰졌다. 한번 바닥을 경험한 덕에 멘털이 강해졌고, 지금은 인생에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눈에 본봄이라는 브랜드가 각인된 계기 중 하나가 K-팝 아티스트와의 협업이었다. 브랜드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새벽 2시경, 오랜만에 파리에서 지인을 만나 첫 잔을 기울이려던 순간, 블랙핑크 스타일리스트에게 연락을 받고 곧바로 미팅 자리로 향했다. 그렇게 처음 콘서트 의상을 제작했고, 본봄 특유의 과감한 실루엣이 무대의상으로 잘 맞았다. 단순히 시안대로 제작하기보다 ‘본봄스러우면서도 처음 해보는 것’을 만들며 우리 작업을 존중하는 클라이언트와 협업해왔다. 새로운 소재를 다루거나, 컬렉션에서 시도하지 않은 디자인을 무대에서 먼저 구현하고, 그 실험이 컬렉션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브랜드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최근 미하라 야스히로와 협업한 제품도 공개했다. 학생 시절 런던에서 공부할 때 미하라 야스히로 쇼 헬퍼로 일하며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에이전시를 통해 협업을 제안했는데, 다른 큰 브랜드들도 후보에 있었지만 그가 “본봄이면 재밌겠다”며 바로 수락했다고 한다. 이번 컨셉코리아 쇼 음악도 그가 직접 만든다. “페이는 삼계탕으로 달라”고 하더라.(웃음)
패션계에서 주목받는다는 건 동시에 어떤 기대를 짊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서 받는 기대보다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크다. 브랜드를 시작하며 ‘왜 한국에는 이런 브랜드가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졌고, 지금도 그 마음가짐에 어긋나지 않으려 한다. 내가 포기하면 다음 세대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될 것이기에 팔리지 않는다 해도 만들려는 마음을 지켜간다.
‘K-디자이너’라는 말이 점점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지점이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요소가 있다면? 솔직히 말하면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웃음) 물론 ‘K’라는 타이틀을 활용하긴 한다. 외국 브랜드들이 한국 스타들에게 주목하는 만큼 한국이 하나의 거대한 패션 허브가 됐다. 다만 그것만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파리 패션위크는 다양한 배경의 브랜드가 모여 음악 페스티벌처럼 각자의 매력과 시간대를 만든다. 나 역시 본봄만의 미학으로 기억되고 싶다.
‘K-패션’이라는 책이 나온다면 디자이너 조본봄은 어떻게 묘사되고 싶나? 알렉산더 맥퀸이 “너무 평온하게 끝났다면 실패한 쇼”라고 말했듯이, 조금 거북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보는 사람을 흔드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오리지널리티’. 즉 따라 하고 싶은 존재로 남는 것이다. 본봄이 그런 브랜드로 기록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