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이름부터 한국 출신의 신예 디자이너까지, 다양한 세대와 배경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2025 CFDA 패션 어워즈(2025 CFDA Fashion Awards).

지난 3일(현지 시각),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는 가수이자 연출가로 활약 중인 테야나 테일러(Teyana Taylor)의 진행 아래, 2025 CFDA 패션 어워즈가 개최됐습니다. 올해 역시 패션계의 흐름을 이끌며 상징적인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인물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죠.
매년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네 개의 주요 부문부터 살펴볼까요. 토리 버치(Tory Burch)부터 롤리나 헤레라의 웨스 고든(Wes Gordon), 그리고 디오티마의 레이첼 스콧(Rachael Scott)까지 쟁쟁한 후보들이 이름을 올린 올해의 미국 여성복 디자이너상은 랄프 로렌(Ralph Lauren)에게 돌아갔습니다. 시상자로 나선 배우 나오미 왓츠(Naomi Watts)는 그를 “아메리칸 패션의 최정점에 있는 전설”이라 소개했는데요. 동명의 브랜드를 설립한 랄프 로렌은 미국 클래식 스타일의 기준을 확립하고, 전 세계적으로 아메리칸 럭셔리의 정체성을 각인시켰죠. 또한 그는 이미 CFDA의 주요 트로피를 모두 거머쥔 인물로도 유명한데요. 1992년 평생공로상, 1995년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상, 1996년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상, 2007년 패션 거장상(American Fashion Legend Award) 선정에 이어, 올해 다시 한번 여성복 디자이너상을 수상하며 전설적인 기록을 또 한 줄 더했습니다.



이어 올해의 미국 남성복 디자이너상은 2023년부터 CFDA 회장직을 맡고 있는 톰 브라운(Thom Browne)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해당 부문에서만 네 번째 트로피를 거머쥔 그는 현대 미국 테일러링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죠. 그는 정형화된 남성복의 실루엣을 과감히 재해석하고 수트를 동시대 문화의 언어로 확장해 낸 디자이너로 평가받으며, 이번 수상으로 다시금 자신의 영향력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상은 더 로우를 이끄는 마리 케이트(Mary-Kate)와 애슐리 올슨(Ashley Olsen) 듀오가 차지했습니다. 절제된 미니멀리즘 미학을 기반으로 한 더 로우는 로고를 배제한 무장식 디자인과 프리미엄 레더, 가벼운 착용감을 강조한 기능적 구조를 통해 액세서리의 영역을 우아하게 확장해 왔죠.
그리고 우리에겐 더욱 반가운 순간이 있었죠. 바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한국 출신 디자이너 애슐린 박(Ashlynn Park)의 수상 소식입니다. 구글이 후원하는 올해의 미국 신진 디자이너상의 주인공인 애슐린 박은 서울에서 태어나 요지 야마모토, 알렉산더 왕, 라프 시몬스(Raf Jan Simons) 체제의 캘빈 클라인 등에서 경력을 쌓은 후, 2020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하우스를 론칭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식 테크닉과 서양식 드레이핑을 결합한 ‘절제된 로맨티시즘’, 그리고 제로 웨이스트 설계로 자신만의 미학을 구축해 온 그는, 2022년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 패션 신에서 잠재력을 입증해 온 차세대 디자이너죠.
그리고 또 하나 큰 화제를 모은 순간, 올해의 패션 아이콘상의 주인공인 에이셉 라키(A$AP Rocky)의 등장입니다. 지난 10월, 해당 부문 수상자가 예고됐던 만큼 그의 존재는 더욱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동시대 패션을 대표하는 아이콘답게 그는 샤넬의 블랙 실크 슈트를 입고 아내 리한나(Rihanna)와 함께 레드카펫에 등장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리한나 역시 11년 전인 2014년 같은 부문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부부가 한 무대에서 동일한 상을 받은 것은 CFDA 어워즈 역사에 남을 상징적인 장면이죠.
이 외에도 의미 있는 수상자들이 또 있었습니다. 포지티브 체인지상(Positive Change Award)은 도나텔라 베르사체(Donatella Versace), 제프리 빈 평생공로상(Geoffrey Beene Lifetime Achievement Award)은 랄프 루치(Ralph Rucci), 엘리너 램버트 헌정 설립자상(The Founder’s Award in honor of Eleanor Lambert)는 신시아 롤리(Cynthia Rowley)가 각각 수상했죠. 세 디자이너 모두 오랜 시간 하우스의 유산과 장인정신을 지키면서도,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온 리더십으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특히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CFDA와 손잡고 ‘Versace LGBTQ+ 장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소수자 커뮤니티를 지지하고 차세대 디자이너를 후원하는 사회적 실천에도 앞장서 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국제 디자이너상은 알라이아의 피터 뮬리에(Pieter Mulier)에게, 아마존 패션이 후원하는 혁신상은 피어 오브 갓의 제리 로렌조(Jerry Lorenzo)에게 돌아갔습니다. 또한 이사벨 톨레도 이사회 헌정상 (Isabel Toledo Board of Directors’ Tribute)은 안드레 워커(Andre Walker)가 수상하며 시상식을 빛냈죠. 이들 모두 문화적 실험성과 날카로운 시장 감각을 결합해, 각자의 브랜드를 고유한 방향으로 이끌어온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CFDA 패션 어워드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가 1981년부터 주관해 온 ‘패션계의 오스카’로, 디자인의 성취와 산업에 대한 공헌을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자리인데요. 올해 역시 미국 패션의 현재와 미래를 응축한 무대였던 만큼, 이듬해에는 또 어떤 이름들이 이 상징적인 무대에 오르게 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