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서트에서 공연한 클로에 카이예.
화려해 보이는 패션 월드의 이면에서 패션 하우스는 언제나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왔다.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인지 오랜 시간 고찰했고, 이것이 단순히 아름답고 값비싼 것의 총합이라면 그 지속 가능성은 짧고 덧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옷과 가방, 보석처럼 손에 잡히는 물질보다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 유산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엔드 하우스들은 제품을 넘어 예술로 향했다. 예술은 순간을 넘어 시간과 인간의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영원불멸의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무용과 영화, 음악, 미술, 건축 등 그들이 후원하고 헌정하는 예술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모든 시도에는 하나의 공통된 신념이 관통한다. LVMH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는 “럭셔리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감정과 문화, 그리고 꿈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이 필요하다. 예술은 유행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한 시대의 감각을 ‘영원한 형태’로 남기기 때문이다. 럭셔리 하우스들이 예술을 후원하고 이에 헌정하는 이유는 순간의 유행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까르띠에가 현대미술을 위한 재단을 세우고, 프라다가 폰다치오네 프라다를 통해 철학적인 전시를 열며, 보테가 베네타와 로에베가 현대미술이나 공예 분야 거장들과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브랜드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문화의 일부로 존재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결국 하이엔드 브랜드가 예술에 헌정하는 행위는 바로 그 ‘영원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전략이자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브랜드가 예술에 헌정하고 있지만, 그중 한 세기를 아우르며 전방위적으로 예술 후원으로 지속 가능한 럭셔리를 만들어가는 대표 브랜드가 바로 샤넬이다. 패션의 영역을 넘어 영화·음악·무용·건축 등 다양한 예술 장르 속에서 샤넬은 언제나 창작의 순간과 함께해왔다. 가브리엘 샤넬이 20세기 초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보여준 개방적 태도는 오늘날까지 하우스의 정체성으로 이어졌고, 샤넬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탐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후원과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예술이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다시금 영감을 환기하는 ‘순환의 장’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파리 국립 오페라의 긴밀하고 특별한 후원사로 활약하고 있는 샤넬은 2018년부터 파리 국립 오페라의 댄스 시즌 오프닝 갈라 후원사, 2023년부터는 파리 국립 오페라의 주요 후원사로 활동해왔다. 공연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무대의상 디자인, 안무가와의 협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술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것. 지난 9월에도 안무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가 재해석한 이고리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과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를 조명한 신작 <조세핀(Joséphine)>을 후원하며 네 벌의 무대의상을 제작했고, 6월에는 호페쉬 섹터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위해 안무를 고안한 무용극 <레드 카펫(Red Carpet)>을 위해 무용수 13명의 의상을 제작했다. 영화 예술에 대한 흔들림 없는 관심도 인상적이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도빌 아시아 영화제 등과 같이 대중의 이목이 상대적으로 더 집중되는 글로벌 영화제는 물론이고, 샤넬의 가치에 부합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들의 손길이 미친다. 시네마 파라디소 루브르(Cinéma Paradiso Louvre)처럼 소규모 영화제를 지원하기도 했다. 명작을 대중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온 샤넬이기에 가능한 선택! 한국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후원한다. 지난 9월에 펼쳐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제와 손잡고 문화와 예술에 기여한 여성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까멜리아상’을 신설하기도 했다. 샤넬은 2022년부터 4년째 한국의 공예 산업에 헌신하는 ‘예올’과 협업해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장인정신을 기리고 그 기술을 계승 및 발전시켜 장인들이 걸어가는 길을 비추는 등대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고 있는 것. 무용 예술을 향한 반클리프 아펠의 사랑도 남다르다. 1920년 루이 아펠과 클로드 아펠이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발레 공연을 보며 발레에 대한 열정을 키웠고, 1940년에 메종 최초의 발레리나 클립을 탄생시킨 것을 시작으로, 1950년대에 만난 뉴욕 시티 발레단의 공동 설립자이자 저명한 안무가인 조지 발란신과의 만남으로 메종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무용계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클리프 아펠은 문화 예술의 글로벌한 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서울을 주목했다.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이자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서울 전역에 무용 예술의 불꽃을 심고 있는 것. 타오 댄스 시어터, 마르세유 국립 발레단, 마르코 다 실바 페레이아 등 세계적인 안무가와 무용수들을 초대해 9개의 작품을 선보인다. 현대무용의 아름다움을 대중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취지로 펼치는 프로젝트다. 이와 더불어 전 세계 수많은 무용 단체의 창작을 독려하고 새로운 무대에서 활약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오데마 피게는 제이지, 퀸시 존스, 마크 론슨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오랜 우정을 쌓으며 음악 세계와 창의적 시너지를 구축해가고 있다. 2010년부터 클로드 놉스 재단(Claude Nobs Foundation) 및 EPFL과 협력해 몽트뢰 재즈 디지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음악계에 대한 기여를 확대해나가는 중. 지난 7월에는 기념비적인 150주년을 맞아 2019년부터 글로벌 파트너로 함께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주요 프로그램으로서 오데마 피게만의 독점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부브리(Vouvry)의 폐쇄된 화력발전소에서 알렉스 완, 클로에 카이예, 페기 구가 1천여 명의 관중을 사로잡으며 오데마 피게의 비전을 효과적으로 전달해냈다. 한편 토즈는 콜로세움 복구 작업의 전체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탤리언 헤리티지’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2010년 디에고 델라 발레 회장이 약 2천5백만 유로(당시 환율로 한화 약 3백25억 원)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밝히며 2011년부터 복구 사업을 후원하기 시작한 것. 하우스의 후원을 바탕으로 고고학, 건축 등 복구 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이들을 모을 수 있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쌓여온 세월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면서도 건축물의 손상을 최대한 줄이고 원형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진정한 럭셔리는 문화를 만들어낸다. 하우스 브랜드의 진정한 경쟁력은 디자인이나 기술이 아니라, 문화 예술을 통해 시간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드는 능력에 있다는 것. 스쳐 지나가는 트렌드 사이에서 더 깊어지는 아름다움을 남기기 위해 시간을 초월한 가치를 지닌 예술과 문화를 끊임없이 돌아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럭셔리는 물질을 넘어 문화가 되고, 예술은 하우스의 영혼을 보존하는 방식이 된다. 한 벌의 드레스,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는 순간마다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하우스의 존재 의미를 형상화한다. 예술은 그들에게 시간을 잇는 다리이자, 덧없음을 영원으로 바꾸는 장치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헌정은 겉치레를 위한 스폰서십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순수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언젠가 모든 트렌드가 사라진 뒤에도 남을, 영원히 지속될 아름다움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