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쁘띠 아쉬는 매일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에요.” 과거의 조각에서 혁신과 유머를 찾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에르메스 쁘띠 아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드프루아 드 비리유(Godefroy de Virieu). 서울에서 진행한 쁘띠 아쉬 서울 스톱오버(Petit h Seoul Stopover)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와 나눈 진심과 긍정적 에너지에 대하여.

에르메스 쁘띠 아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드프루아 드 비리유.
에르메스 메종 도산에서 열린 쁘띠 아쉬 서울 스톱오버 현장.
쁘띠 아쉬가 제작한 장독대 모티프의 오브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에르메스는 2010년부터 재창조와 발명의 공방, 쁘띠 아쉬(Petit h)를 통해 기발한 상상력과 탁월한 장인정신, 창의적 방식의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 고 있다.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에게 쁘띠 아쉬, 그리고 이번에 서울에 서 진행하는 ‘쁘띠 아쉬 서울 스톱오버’에 대해 소개해주기 바란다.

탁월한 장인들과 자유로운 창의성의 결합이 바로 에르메스가 지닌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은 에르메스를 이루는 큰 축이자 기반이죠. 에르메스는 현재 총 16개의 메티에(Métier, 공방)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쁘띠 아쉬는 이 중 가장 마지막으로 생긴 메티에로, 다른 곳과 뚜렷이 구별되는 창작 방식을 보이죠. 우리는 주어진 재료에서 출발해 새로운 오브제를 완성해갑니다. 다른 메티에가 테마나 주제에서 출발해 이야기를 발전시킨다면 우리는 주어진 재료를 한데 모아 큰 잔칫상을 차리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장인이 함께 늘어놓은 재료들을 살피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죠. 이 잔치를 통해 우리는 작은 보석 같은 신선한 충격, 새로움, 즐거움을 주는 오브제를 제작합니다. 쁘띠 아쉬는 이 오브제를 가지고 종종 해외로 떠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기쁘게도 한국을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쁘띠 아쉬 서울 스톱오버에서 한국의 전통 공예 기법 중 하나인 ‘보자기’를 응용하기도 하고, 작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은 ‘장독대’를 디테일로 활용하거나 섬세한 ‘해녀’ 디테일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주 명료한 방식으로 말이죠. 이런 명료함은 우리의 장인정신과 오랜 시간 기울인 노력이 깃들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한국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작가에 이어 올해는 한국의 저명한 미술감독 류성희와 영화 세트장을 재현했다. 미장센의 대가로 알려진 그와 함께 일하는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쁘띠 아쉬에서도, 에르메스에서도 영화 미술감독과 함께 매장에 세트를 짓고, 꾸미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에요. 이는 상당히 과감한 시도이고 특별한 경험이었죠. 저는 류성희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그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기존에 함께 작업해보지 않은 유형이기 때문이죠. ‘아웃 오브 더 박스’,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로운 만남이 기대되었달까요. 곧바로 영화 시나리오를 상상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곳곳에 예상치 못한 쁘띠 아쉬의 특별한 오브제를 배치해 류 감독의 세계를 구현하자는 의견이 모였습니다. 우리의 오브제가 마치 영화 세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공간에 시적인 감수성을 더하도록 말이죠. 사실 작업 초반, 류 감독과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류 감독은 에르메스의 이야기와 문화, 역사를 전하는 웅장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 했죠. 하지만 요즘 제가 추구하는 맥락은 일상적인 오브제이고, 우리는 겸허하고 소박한 한국 가정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길 원했습니다. 우리의 단순 명료한 오브제가 류 감독님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생명력을 얻고, 완벽히 조화를 이루길 바랐죠. 특히 한국의 익숙한 일상과 연결되면서요. 저는 이러한 점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쁘띠 아쉬 서울 스톱오버 현장에 함께 자리한 미술감독 류성희와 에르메스 쁘띠 아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드프루아 드 비리유.

한국에서 한국인들과 작업하는 경험은 어땠나? 작업 방식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거나 영감을 받은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흥미로운 질문이에요. 저는 한국을 좀 더 알고 싶고, 한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행사 이후 조금 더 길게 한국에 머물 예정입니다. 여행도 하고, 이곳저곳을 탐방하면서 한국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생각이에요. 한국은 굉장히 모던하고 역동적인 동시에 특유의 세련된 분위기와 자유로움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들은 단정 지어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함과 친근함(정)이 몸에 배어 있죠. 이 점이 예전부터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은 유머러스하고 시대감각이 살아 있어요. 작업에 대해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편하고, 대화가 잘되고 분위기도 따뜻하죠. 이 점이 제게는 큰 영감이 됩니다.

서울은 얼마 만인가?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에서 특별히 영감을 받고 싶은 부분이 있나?

오늘이 한국에 온 지 3일째예요. 아직 밖에 제대로 나가보지도 못했죠.(웃음) 서울에 1년 반 만에 다시 온 것 같아요. 우리는 스톱오버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 1년 6개월 전에 해당 목적지를 먼저 방문해요. 현지의 미술감독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지만, 박물관이나 도시의 거리거리, 골목골목을 둘러보기도 하죠. 현지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에겐 매우 중요해요. 거기에서 영감을 얻으니까요. 지난번에 서울 곳곳을 산책하며 영감을 채운 기억이 납니다. 이 행사가 끝나면 서울의 거리 곳곳을 다니며 현지인의 일상과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고 싶어요. 한국을 좀 더 발견하고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날 예정이에요. 서울을 둘러보고 해녀가 있는 제주도도 여행할 예정이죠. 벌써 자못 기대돼요.

가죽 버킷 안쪽에 장식된 한국의 해녀 이미지.

쁘띠 아쉬 오브제 중 조각보 선반이 눈에 띈다. 조각보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한국의 전통 공예 기법이기도 하다. 한국 해녀의 모습을 표현한 레더 마케트리 수납 버킷 등 한국적 모티프의 오브제가 흥미롭다. 이번 쁘띠 아쉬가 선보인 오브제들은 어떻게 탄생했나? 접근법이 궁금하다. 또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한국의 보자기는 그 자체로 완벽해요.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료로 이 조각보 기술을 계승했죠. 우리가 만든 완성품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집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쓰임이 있는 오브제예요. 에르메스는 장식만을 위한 공예품은 만들지 않죠. 과거에서 영감을 받은 기능적인 오브제를 추구하니까요. 이는 에르메스 쁘띠 아쉬의 본질과 맞닿아 있어요. 그리고 이런 오브제에 ‘윙크’ 같은 작은 위트를 담는 것도 잊지 않죠. 예를 들어, 해녀 그림이 있는 오브제는 한국의 어딘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죠. 이런 작은 디테일을 오브제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위트는 단순히 웃음만을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섬세하게 절제된 표현을 담아 은근하게 전달하려고 하죠.

2010년에 쁘띠 아쉬 공방을 탄생시킨 파스칼 뮈사르(Pascale Mussard)와 긴밀히 협력했다. 2018년부터 쁘띠 아쉬 공방의 수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하며 이곳의 오랜 이야기와 역사를 몸소 체득했을 텐데, 예전과 지금의 일하는 방식 혹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체감하나? 오랜 시간 당신을 이토록 사로잡은 에르메스 쁘띠 아쉬의 매력은 무엇인가?
쁘띠 아쉬에서는 매일이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에요. 이 점이 에너지를 주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비타민처럼요.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 그래요. 힘이 넘치는 작업의 연속이죠. 어떨 때는 아티스트나 장인들과 미팅하면서 놀라운 순간을 마주하는데, 그럴 때면 일종의 황홀경에 빠지기도 해요. 그 대신 그만큼 많은 힘과 에너지가 들죠. 저는 매일같이 수 많은 아티스트를 만나야 해요. 그들에게 차분하고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과 에너지를 많이 쏟죠. 늘 하루를 꽉 채워 알차게 보내는데, 이런 일상이 익숙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좋아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선 장식 도시락통 등 쁘띠 아쉬 오브제가 자리한 한국적인 주방을 연출했다.

어린 시절부터 손으로 다양한 사물과 소재 실험을 즐겼다고 하던데, 이런 직업을 선택할 거라고 예상했나? 당신의 유년 시절이 궁금하다.

저는 지금도 유년기를 산다고 생각해요.(웃음) 여전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거든요. 이 호기심을 동력 삼아 상상하고, 이것저것 만들고 변형하는 것을 즐기죠. 어린 시절부터 그랬어요. 사물을 직접 느끼고 손으로 만지며 재료를 다룰 때 비로소 세상을 지각한다는 느낌을 받곤 했죠. 분명 손끝을 통해서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어요. 이건 저에게 일종의 언어이자 소통하고 창조하는 방식이죠.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을 손으로는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점은 분명 제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다행히 그 시절의 감각이 지금도 제 안에 살아 있죠.

쁘띠 아쉬의 초창기 멤버로 알고 있는데, 처음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것인지 궁금하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장인정신과 공예의 매력에 빠져 있었어요. 산업디자인 학교에 다녔는데, 휴대폰 같은 제품 디자인에 중점을 둔 곳이었죠. 그때는 산업디자인에 대해 인간적인 요소가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중요한 건 전문성과 기술을 갖추고 무언가를 애정을 쏟아 제작하는, 열정적인 장인들을 만나는 일이었어요. 장인들은 자신의 기술과 직업을 사랑하고 그에 자부심이 있으니까요. 저는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은 진심에서 우러나고, 진심은 사람을 이끌고, 연결과 만남을 가져오거든요. 학교를 마친 후에는 수공예의 이러한 점에 매료되어 장인들과 함께 일했고, 친구들과 작은 회사도 설립했죠. 그러던 중에 쁘띠 아쉬 디렉터 파스칼 뮈사르를 만났어요. 한 전시회에서 제가 디자인한 오브제 컬렉션을 선보이던 때였는데, 그가 저를 찾아왔죠. 그렇게 처음 만나 쁘띠 아쉬의 시작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전통 공예 기법인 조각보를 현대적으로 응용한 매력적인 오브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는 늘 새로운 영감과 자극이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자연만큼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주 보며 만끽하고, 그 속에서 명상과 사색을 즐기죠. 엄밀히 따지면 제가 명상한다기보다는 자연 속에 있는 것이 저에게는 명상의 일종인 셈이죠. 자연을 관찰하고 응시하며 느끼는 것. 이때야 비로소 더없이 평화롭고 심신이 정결해지는 느낌을 받아요.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은 저에게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시간이고, 관찰력을 연마하며 영감을 채우는 시간이죠. 자연에선 선명하게 집중할 수 있기에 이 시간이 꼭 필요해요. 제가 삶에서 깊이 감사하는 것 중 하나는 어릴 때부터 자연에 둘러싸여 자랐다는 점이에요. 유년 시절에 경험한 자연과 그 속에서 보낸 시간이 저의 초석이자 기반이 되었으니까요.


손꼽기 어렵겠지만 에르메스 쁘띠 아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지금까지 선보인 제품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오브제는 무언가?

이 질문을 종종 받아요. 하지만 저는 오브제나 프로젝트 하나에 깊이 애착을 갖지는 않아요. 항상 다음 프로젝트, 혹은 다음 작품이라고 답하죠.(웃음)


인상적인 인터뷰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에너지를 느꼈다.
쁘띠 아쉬 공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입니다. 쁘띠 아쉬의 근본적인 가치는 바로 서로 다른 것들의 연결, 유대, 그리고 좋은 바이브죠. 이번 쁘띠 아쉬 서울 스톱오버를 진행하면서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바이브를 많이 느꼈습니다. 한국의 영화 세트처럼 연출한 이 프로젝트 자체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류성희 감독에게 고맙습니다. 정말 멋지게 작업해주었어요. 프랑스와 한국의 물리적 거리, 시차, 문화적 차이 등이 있을 텐데도 제가 원하는 바를 잘 이해하고 멋진 결과물을 완성해주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