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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듀오

맞닿은 두 세계 (유계영과 서효인)

 

유계영의 첫 시집을 편집한 서효인은 시인이다. 선배 시인이자 편집자인 서효인은 원래 유계영의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편집자가 편집할 책을 배당할 때 종종 하고 싶은 책을 직접 어필하기도 하는데 이번이 그런 케이스.

“세상 모든 게 다 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 그 순간의 감정이나 감각을 잘 포착하고 그 포착한 감정에 대해 함부로 이렇다라고 정의 내리지 않고 그 감각이 맞나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유계영 시인의 시예요. 글을 쓰다 보면 그러기가 어렵거든요. 내가 하는 말이 다 맞는 것 같고, 내가 내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기 쉽죠. 그럼 그 방향으로 쭉 나가게 되는데 유계영 시인은 이게 맞을까, 틀린 게 아닐까 하는 흔들림에 대해 솔직하게 써요. 흔들림을 포착해서 언어화하는 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저는 그걸 어색함이라고 표현했는데 익숙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색해해요. 그게 시의 역할이기도 한 것 같아요.” (서효인)

앞에 두고 하는 칭찬에 유계영은 자신의 시가 그렇듯 어색해하며 몸을 뒤로 뺐다. 둘은 시인과 편집자로 만나기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유계영은 자신의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시집을 편집하는 건 축복이라고 말했다. “제가 좀 소심해서 친한 사람이 편집해주면 요구 사항을 더 쉽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했어요.” ‘온갖 모든 것들의 낮’이라는 제목도 둘의 합작품이다.

“제목을 자꾸 이상한 걸 가져와서 설득하느라고 애먹었어요. 제가 편집자지만 선배 시인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야, 제목 이거 해라’ 할 순 없으니까 일부러 제목을 여러 개 뽑아서 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한다고 시 8편 정도 출력해서 보여주고 설득했죠. 이 제목이 되는 이유, 안 되는 이유도 들어가며 계속 얘기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제목이 나오게 됐죠.”(서효인) “자의식이 과잉돼 제목을 기괴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 제목만은 안 된다는 간곡한 이메일을 받았죠. 하하.”(유계영)

첫 시집에서 편집자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 건 신뢰가 없는 사이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시 잘 보시거든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제 시가 좋다고 했으니까요.(웃음)”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세계관도 있지만 확정된 세계를 못 견디고 자꾸 도망하고 미끄러지는 세계관도 있는 것 같아요. 유계영 시인은 후자에 가깝죠. 그 와중에 미끄러짐에 대해 쓰는 문장이 유려하고 아름다워요. 시 전체를 보면 난해할 수도 있고 의미 포착을 일부러 지연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시 구절구절이 반짝이죠.”(서효인)

스테디셀러인 황인찬의 시집도 편집한 베테랑 편집자인 서효인은 민음사에서 유계영의 두 번째 시집이 나온다면 한 번 더 자신이 편집을 맡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진짜 편집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시집 나오고 스스로 끔찍해한 기간이 길었어요. 사람들한테 시집 나왔다고 자랑도 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어서 안 보고 싶더라고요.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건 온전히 선배 때문이에요. 이렇게 열심히 노동해서 책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많이 다잡았어요. 숭고했다고 생각합니다.”(유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