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루티의 시간은 오래 지속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전해지고, 다른 세대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며 비로소 하나의 역사로 남는다. 19세기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한 장인의 기술은 파리에서 메종으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 전 세계 부티크에서도 그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창립 130주년을 지난 지금, 벨루티가 쌓아온 시간의 유산과 그 의미에 대해 헤리티지 및 아카이브 매니저( Heritage and Patrimonial Enhancement Manager) 마리엘 기살베르티(Marielle Ghisalberti)와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 Marielle Ghisalberti
Berluti Heritage and Patrimonial Enhancement Manager

벨루티는 지난 2025년 130주년을 맞았어요. 이처럼 역사 깊은 브랜드에 합류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벌써 18년째 이 여정을 함께하고 있어요. 1백3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메종에 합류한다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입니다. 아카이브를 깊이 들여다보며 브랜드의 뿌리와 가치, 그리고 고객과 이어온 관계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죠. 오늘의 벨루티를 만들어온 각 시대의 시선을 통해 더 넓은 시대적 맥락 속에서 메종의 역사를 바라보는 건 무척 흥미로운 일이에요. 이 유산을 지켜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 생각합니다.
벨루티에 합류한 당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벨루티 가문의 고향이 있는 이탈리아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예요. 19세기 말, 창립자 알레산드로 벨루티 (Alessandro Berluti)가 아들 토렐로(Torello)에게 뛰어난 소재와 정교한 장인정신에 대한 열정을 전수하던 그 마을을 방문하며 벨루티의 시작을 실감하게 됐어요. 당시 수많은 기술과 공예가 교차하던 공방을 직접 둘러보며, 그곳에서 기반을 다진 벨루티 부자가 국제적 도시 파리로 향하던 모습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벨루티는 슈메이킹으로 그 역사를 시작한 브랜드예요. 이후 의류, 가방, 액세서리 등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하며 완성형 워드로브를 제안하는 데는 어떤 전환점이나 동기가 있었나요? 2008년 제가 벨루티에 합류한 당시, 메종은 슈즈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고 레더 의류와 액세서리 라인은 소규모에 머물러 있었어요. 아이코닉한 베네치아 가죽과 고유의 염색 기법인 파티나를 사랑하는 고객들은 이를 다른 아이템으로 확장하길 원했죠. 이후 2011년 메종에 합류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사르토리가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프라이빗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첫 의류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어요. 장인정신과 창의성, 품질, 전통과 현대성이라는 메종 고유의 가치가 의류에도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죠.
파티나와 스크리토, 베네치아 가죽은 벨루티의 유산이자 시그니처입니다. 길을 걷다 파티나 염색이 된 슈즈나 재킷을 보면 단번에 벨루티임을 알아볼 정도로 강력한 코드라고 느끼는데요. 이 요소들은 오늘날 어떤 역할을 하나요? 이 시그니처들은 벨루티 제품을 각자의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오브제로 만들어주죠. 특히 파티나는 결코 똑같이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제품은 자연스럽게 착용자의 개성을 담아내요. 한국 고객들이 사랑하는 스크리토는 가죽에 18세기 필기체 문장을 태워 새기는 기법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담을 여지를 남기죠. 이런 독보적 기술은 고객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도록 돕는 동시에 장인의 손길을 느끼게 합니다.
패션 산업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유산, 아카이브,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헤리티지’가 다시 대두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헤리티지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비추는 나침반입니다. 과거를 동력으로 삼아 현재와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죠. 오늘날 고객들은 제품에서 의미와 진정성을 찾습니다. 그렇기에 헤리티지를 조명하는 일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와 진정성, 그리고 지속 가능한 럭셔리를 전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벨루티의 전통적 작업 방식 중 앞으로도 계속 지켜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 장인 기술이 이어지는 방식을 계속해서 지켜가고 싶어요. 벨루티는 가족이 함께 일하며 기술을 이어온 유구한 역사가 있어요. 공방에서 장인이 견습생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과정부터 이탈리아 페라라 지역 마니파투라(Manifattura)의 사보아 페어 아카데미(Academyof Savoir-Faire)까지 세대를 잇는 기술의 전승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죠. 부티크에서 이뤄지는 벨루티만의 슈트라잉(Shoe-trying) 서비스 역시 앞으로도 지켜가고 싶어요. 단순한 피팅을 넘어 하나의 의식처럼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거든요.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같은 작업 방식이 전해지고 있는 점이 인상적 입니다. 지금까지 접한 아카이브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특정 물 건이나 문서가 있나요?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치수 기록(Measure – ment Seat)과 고객 서신이 특히 인상 깊어요. 이 두 가지는 장인정신, 고객과의 관계라는 벨루티 DNA의 핵심을 보여주죠. 치수 기록은 맞춤 제작의 출발점이 되는 자료로, 오늘날의 슈메이커들이 토렐로 벨루티와 그의 아들 탈비니오(Talbinio)가 일하던 방식 그대로 작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아카이브입니다. 고객 서신은 메종과 고객 사이에 형성된 깊은 신뢰와 친밀한 관계를 생생하게 전해주죠. 이 아카이브는 벨루티가 오랜 시간동안 기술과 관계 위에서 성장해온 브랜드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먼 미래에 누군가 아카이브에서 오늘날의 벨루티를 발견한다면, 어떤 제품이 꼭 남아 있기를 바라나요? 알레산드로 슈즈. 벨루티 슈메이킹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모델이죠. 이음새 없이 한 장의 가죽으로 완성한 구조는 장인정신과 혁신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담한 시도였고, 그 정신은 지금까지도 벨루티의 근간이 되고 있어요.
유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죠. 벨루티의 ‘헤리티지’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요? 벨루티의 헤리티지를 이야기할 때 이탈리아와 파리의 만남을 빼놓을 수 없어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장인정신, 그리고 파리에서 발전한 스타일과 기업가 정신이 지금의 메종을 만들었죠. 블랙과 브라운컬러 남성 슈즈가 주를 이루던 1990년대부터 선명한 색의 컬러 슈즈를 선보인 점 역시 메종의 대담함을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열정’입니다. 벨루티를 만드는 사람들의 열정, 그리고 벨루티를 신는 이들의 열정이요. 어떤 고객들은 신발을 처음 신는 순간 ‘만났다!(Met)’고 표현하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신발 끈을 묶을 때 어느 쪽부터 묶나요? 결국 벨루티의 시작은 디테일에서 비롯되니까요.(웃음)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사실 어느 쪽부터 시작하는지는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벨루티 매듭’으로 묶는 거죠. 끈을 두 번 감아 어떤 자리에서도 쉽게 풀리지 않는, 보이지 않는 벨루티식 품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