튈르리 정원 바생 옥토고날 분수를 중심으로 펼쳐진 디올 2026 가을-겨울 컬렉션. 조나단 앤더슨은 18세기 궁정 복식의 코드를 현대적인 실루엣으로 번역하며 새로운 디올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파리라는 무대, 튈르리 정원
파리 패션위크의 어느 날, 예상 밖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코트와 니트를 떠올릴 3월 초의 파리가 이례적인 더위에 잠긴 것이죠. 예상치 못한 햇살 아래 공개된 디올의 2026 가을-겨울 컬렉션. 쇼가 열린 곳은 파리 중심부의 튈르리 정원이었는데요. 디올은 2020년부터 이곳에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죠.
이번 시즌 쇼장은 정원의 중심에 자리한 팔각형 연못 ‘바생 옥토고날(Bassin Octogonal)’을 둘러싸는 구조로 설계됐습니다. 연못 위에는 인공 수련이 놓였고 투명한 유리 구조물이 공간을 감싸며 튈르리 공원 속 쇼장이 완성됐죠.
튈르리 정원은 원래 카트린 드 메디치가 조성하고 이후 루이 14세 시대에 재설계된 공간인데요. ‘태양왕’으로 불린 루이 14세의 궁정 문화 속에서 이곳은 사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죠.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적 장면을 패션이라는 언어로 다시 꺼내든 셈입니다.


18세기 궁정 코드의 현대적 번역
조나단 앤더슨은 이번 시즌에서 18세기 복식의 요소들을 재해석했습니다. 프록코트(정장용 롱 코트 형태의 재킷)에서 출발한 구조적인 재킷, 허리 아래로 퍼지는 짧은 러플의 페플럼 형태, 뒤쪽에 볼륨이 모이는 버슬 스커트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죠. 다만 역사적인 복식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닌 길이를 미니스커트로 줄이거나 소재를 가볍게 바꾸며 비율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실루엣은 고전적이면서도 전체적인 인상은 현대적이죠. 과거의 궁정 복식을 오늘날의 옷장으로 옮겨온 듯한 장면이라고 할까요?
또한 이번 컬렉션은 ‘계절’이라는 개념이 흔들리고 있는 현재의 패션 환경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앤더슨 역시 “이제는 계절 사이를 오가는 옷을 보여주려 합니다.”라며 흐려지는 계절별 옷장의 개념에 대해서 언급했죠. 이례적으로 따뜻한 날씨 속에서 공개된 가을-겨울 컬렉션의 아이템들은 실제로 6월부터 매장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버슬 실루엣의 귀환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인상적인 디자인 포인트는 버슬(bustle) 실루엣입니다. 엉덩이 뒤쪽에 볼륨을 모아 만드는 구조로, 18세기 귀족 드레스에서 유래한 형태죠. 여러 룩에서 뒤쪽으로 부풀린 스커트 구조가 등장했고, 앞은 짧고 뒤가 길게 흐르는 헴라인이 특징적으로 보였습니다. 일부 룩에서는 러플이나 패딩 구조를 더해 입체감을 강조했죠.


정원을 옮겨온 플라워 모티프
컬렉션 곳곳에는 지난 시즌에 이어 입체적인 꽃장식이 등장했습니다. 프린트가 아닌 실제 꽃처럼 볼륨을 가진 아플리케 형태였죠. 재킷 허리 라인이나 드레스 위에 달린 대형 코사지는 튈르리 정원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쇼장의 인공 수련과 자연스럽게 연상케 하죠. 자연을 패션의 장인 기술로 재현하는 디올의 전통적인 사부아페르(노하우)가 이번 시즌에도 강하게 드러난 부분입니다.


바 재킷의 새로운 균형
디올의 상징적인 바 재킷 역시 새로운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도니골 트위드로 제작된 재킷은 기존보다 길고 여유로운 실루엣으로 변형됐죠. 허리는 여전히 강조되지만 구조는 훨씬 부드럽습니다. 일부 룩에서는 러플 스커트나 볼륨 있는 하의와 함께 매치되며 전통적인 디올 테일러링이 보다 유연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디올 쇼에 등장한 한국 셀럽들
이번 디올 컬렉션 역시 글로벌 셀럽들과 함께 한국 셀럽들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블랙핑크 지수와 스트레이 키즈 현진이 쇼에 등장하며 현장의 시선을 모았죠. 지수는 블랙 드레스를 입고 우아한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가볍게 흐르는 쉬폰 소재와 부드럽게 부풀린 실루엣이 어우러지며 디올 특유의 우아한 분위기를 완성했습니다.
또한 현진은 화이트 셔츠 위에 구조적인 블랙 코트를 걸친 룩으로 쇼에 참석했습니다. 넓은 라펠과 여유로운 실루엣이 돋보이는 코트에 디올 메달리온 버클 벨트를 매치해 룩의 포인트를 줬죠. 클래식한 테일러링에 상징적인 액세서리를 더하며 디올의 헤리티지와 현대적인 무드를 동시에 드러냈습니다.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
조나단 앤더슨은 디올을 하나의 공식으로 규정할 생각이 없다고 말합니다. 특정한 룩 하나로 브랜드를 설명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죠. 대신 그는 잘 작동하는 요소를 발견하면 그 위에 계속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하우스를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튈르리 정원의 햇살 아래 펼쳐진 이번 쇼는 파리의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장면이었죠. 태양왕 루이 14세의 시대부터 이어진 정원의 사교 문화와 오늘날의 패션이 같은 공간에서 만난 조나단 앤더슨의 2026 가을-겨울 디올 컬렉션은 파리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한번 환기시켰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