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낡은 갑옷의 회색으로 시작된 이번 막스마라 런웨이에는 절제된 긴장감이 감돌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안 그리피스의 시선은 중세로 향해 있었다. ‘암흑의 시대’라 불리는 시간 속에서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발견한 걸까. 컬렉션의 기조에는 중세적 레퍼런스가 스며 있었다. 힙 라인을 따라 자연스럽게 퍼지는 캐시미어 맥시 스커트와 중세 궁정 복식을 떠올리게 하는 스웨이드 튜닉, 그리고 리벳 장식을 더한 허벅지 위로 올라오는 스웨이드 부츠와 긴 가죽 장갑. 다크 에이지에서 불러들인 권위는 컬렉션 전반에 은유적으로 드러났고, 그것은 막스마라의 코트에서 가장 또렷한 형태로 집약됐다.

이번 시즌 코트는 어깨가 조금 더 넓어지고 길이도 길어졌다. 중세 군복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적인 실루엣으로 어깨를 감싸는 둥근 볼륨이 더해졌다. 네크라인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누벅 패치는 쇄골을 감싸며 어깨를 보호하는 중세 갑옷의 고르제를 떠올리게 했다. 금속 대신 누벅과 스웨이드로 번역된, 일종의 ‘부드러운 갑옷’이었다.

부드러운 갑옷의 원형은 중세 북이탈리아의 여성 통치자 마틸데 디 카노사에서 시작된다. 군사 지휘관이자 외교가였던 마틸데는 황제와 교황 사이에서 권력을 조율했던 인물이다. 역사는 그녀를 성경의 구절, ‘지혜로운 뱀처럼, 순수한 비둘기처럼’이라는 말로 기억한다. 지금의 언어로 옮기면 아마 이런 사람일 것이다. ‘영민하고 고요한 권위를 지닌 여성 리더’. 막스마라가 1980년대부터 그려온 여성의 모습도 그렇다. 실용 속에 놓인 우아함, 그리고 과장되지 않은 권위. 권위란 누군가를 누르는 힘이라기보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조용히 서 있는 태도에 가깝다. 이번 컬렉션은 그런 권위를 옷의 구조와 색으로 풀어냈다.

컬러 역시 그 권위의 구조를 따라 움직였다. 늑대와 여우, 사자를 떠올리게 하는 색들이었다. 런웨이를 채운 차콜 그레이와 러스트 브라운, 카멜은 단순한 어스 톤이라기보다 지배력과 전략, 왕권을 떠올리게 하는 색조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의 컬러로 통일하거나 미묘한 톤온톤으로 이어지는 룩은 마치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였다. 이 팔레트 안에서 막스마라 특유의 텍스처 플레이가 더욱 도드라졌다. 캐시미어와 카멜 헤어, 알파카, 더블 페이스 등 서로 다른 소재들이 겹쳐지며 같은 색조 안에서 질감의 깊이를 만들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막스마라의 아이콘 코트 101801 역시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읽힌다. 흥미로운 우연이 하나 있다. 마틸데 디 카노사의 권력이 절정에 이르렀던 해가 1081년이라면, 막스마라의 역사적 전환점은 1981년, 아이콘 코트 101801이 탄생한 해다. 넉넉한 실루엣과 기모노 슬리브를 지닌 이 코트는 당시 사회로 본격적으로 진출하던 여성들의 새로운 유니폼처럼 자리 잡았다. 이번 컬렉션에서도 여러 변주로 등장했지만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옷. 시간이 지나도 형태와 가치를 유지하는 옷. 이안 그리피스가 말했듯 막스마라의 코트는 결국 시간을 견디는 옷이다.

중세의 군주가 전장에서 지혜와 전략으로 얻은 승리 뒤에 서 있듯 오늘날 막스마라의 여성은 자신의 삶이 펼쳐지는 자리에서 같은 힘으로 서 있다. 역사 속 여성의 강인함이 코트라는 형태로 다시 등장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