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마음, 여성 창작자를 향한 지지와 헌사를 담아.

개버딘 가죽 재킷 Miu Miu.

2026년, 마리끌레르의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을 넘어 우리의 영화를 직접 만드는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인공은 배우 한예리다. 그가 감독이 되어 마리끌레르와 함께 첫 영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를 만들며 발견하고 찾아낸 마음들을 전해주었다.

“감독은 현장에서 감각하고 인지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잖아요.
한예리 감독은 그걸 감각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좀 신기해요

유시형 감독 / 공동 연출 겸 ‘형근’ 역

“이 영화는 평온함과 약간 기묘한 고요함 사이에 있다고 느꼈어요.
고요한데 그렇다고 너무 평화롭지만은 않은, 오묘한 지점에 있는 영화로 느껴져요.”

선우정아 음악 감독

“한예리 감독은 이미 프로 무용가 그리고 배우로 유니크한 아우라를 가진 예술가예요. 그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우리가 망각하며 살고 있는 어떤 부분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그만의 깊은 사고가 담긴 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의 예술 세계에 동참할 수 있어 기뻐요.”

김호정 배우 / ‘호정’ 역

<마리끌레르>는 지난 8년간 보다 많은 여성 배우가 각자의 서사를 풍부하게 쌓으며 존재하기를, 그리고 더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총 55인의 여성 배우들과 ‘젠더프리(Gender-free)’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매해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젠더프리의 다음을 생각했다. 더 확장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다음을 도모해야 하는가. 더 자유롭게 존재하기 위해 무엇을 시도해야 하는가. 2026년, <마리끌레르>는 더 넓은 세계를 향한 새 걸음을 시작했다. ‘마리끌레르 우먼 필름 프로젝트(Marie Claire Women Film Project)’라 명명한 새로운 도전은 여성 창작자와 함께 단편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그 결과를 기록하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을 넘어 직접 우리의 영화를 만드는 창대한 여정의 첫 번째 주인공은 배우 한예리다. 영화에 대한 사랑 하나로 그는 선뜻 ‘감독’이 되어 자신의 첫 영화를 만드는 도전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고민과 곁에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 각본을 쓰고, 함께할 영화 친구들을 모으고, 감독으로 모니터 앞에 섰다. 그렇게 그의 첫 영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가 완성되는 중이다.

마리끌레르와 한예리 감독이 함께 만든 영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는 오는 4월 24일~26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최되는 제13회 마리끌레르 영화제에서 상영 및 GV가 진행될 예정이다.

놀랐어요. 배우에게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단번에 수락하기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하루도 안 지나 연락을 주셨어요.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바로 “일단 할게요. 할 건데…”로 대화가 이어졌죠.

돌이켜보면 겁이 없었네요.(웃음) 사실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을 안 한 것 같아요. 마침 영상 작업을 같이 하는 팀(영시)이 있으니까, 이들과 움직이면 어찌어찌 되겠다 싶었던 거죠. 한편으론 되게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전에는 뭔가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는데, 제안을 받고 보니 영화 공부를 하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기회를 만난 것 같았던 거죠.

이전에는 감독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건가요?

네, 전혀요. 아는 감독님이나 배우들이 꽤 여러 번 감독을 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제 대답은 ‘아니요’였어요. 그래서 마리끌레르의 제안이 너무 신기했어요. 왜 나에게 왔지? 어디서 뭘 들으셨나? 난 한 번도 연출에 관해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그래서 첫 미팅 때 제가 질문부터 했잖아요. “왜 저였어요?”라고요.(웃음)

작년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배우뿐만 아니라 인간 한예리로서도 주체적인 의도를 가지려고 해요”라는 말을 남겼어요. 그렇지만 그 인터뷰를 다시 보지 않았더라도 제안했을 거예요. 영화를 만들자는 기획이 나오고 꽤 많은 이름들이 거론됐는데, ‘한예리 배우’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만장일치로 “오!” 하는 반응이었어요. 맡은 인물에 한정하지 않고 영화라는 큰 그림을 보는 배우이니, 더 확장된 시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스스로는 연출에 자질이 없다고 생각해온 것 같아요. 무용을 할 때부터 그랬어요. 창작보다 주어진 그림 안에서 뭔가를 만들어가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영화 활동을 하면서도 연출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질문이 아니라 제안을 받으니까, 어쩐지 용기가 났어요. “할게요.” 이후에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얘기를 써야 하나?’였는데, 막상 시작하니 만들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더라고요. 그 과정이 좀 신기하면서도 저로선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고요.

그럼 시나리오 작업도 처음 해본 건가요? 사실 미리 써둔 시나리오가 몇 편쯤은 있겠다 생각했거든요.

진짜 하나도 없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쓴 거예요? 미팅하고 일주일 만에 시나리오 초안을 보냈잖아요.

제작자 겸 배우 겸 제 연출 선생님인 (유)시형 감독님이 하드 트레이닝을 해줬어요.(웃음) 일단 트리트먼트 3개를 써봐라, 그중에서 괜찮은 게 있으면 확장하자. 그렇게 초고를 썼더니 “예리야, 이건 시나리오가 아니야”라고, 아하핳. 다시 빠르게 작법을 배워 정리하고 인물과 이야기를 구체화하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해갔어요. 흥미로웠운 점은 저는 그게 마무리일 줄 알았는데, 계속 조금씩 수정하고 추가할 부분이 생긴다는 거예요. 이야기가 부분부분 확장되고, 등장하는 인물에 애정이 생기면서 각자의 서사를 더 그리고, 더 시도해보고 싶은 장면이 생기더라고요. 인물과 인물이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나고, 또 헤어질 때 어떤 무드가 형성되면서 이야기가 풍부해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게 되게 좋았어요.

“(한예리 감독님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인데, 첫 연출작을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떨리고 영광이에요.
감독님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꿈같아요.”

유해연 배우 / ‘우리’ 역

한예리 감독의 첫 영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는 어떤 생각에서 출발한 이야기인가요?

근래 1, 2년 동안 고민한 주제가 있었어요. 인생에서 길을 찾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좀 심각하게 빠져든 시간이었거든요. 이를 너무 무겁지 않게 잘 정리해서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생각이 기획 의도에 잘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부여된 불꽃을 느끼며 살아간다. (중략) 마음의 불꽃은 자주 오지 않는다. 오래도록 지속되지도 않는다. 마음의 불꽃을 무시하지 않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은 그것이 작든 크든 개인적인 혁명들을 이루고, 내일을 만들어간다. 이 이야기는 한때 자신이 잃었던 마음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은데…’ 혹은 ‘지금 어디로 가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며 갑갑함을 느끼는, 그러면서 마음의 불꽃이 일어나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유의 시그널은 무시하면 또 금방 사그라들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그 시그널을 보다 강하게 느낀 것 같아요. 지금 지나치면 내 인생에 다시는 불꽃이 일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 지금 뭔가를 시도해야 한다,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 고민이 제 첫 영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의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럼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에서 찾고자 하는 건 단순히 ‘마음’에 한정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저는 그게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일이 될 수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될 수도 있어요. 다만 범주를 너무 크게 벌여놓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의 온기를 찾는 이야기로 정리를 한 거죠. 계속해서 마음을 잃어가는, 그래서 본능적으로 마음의 온기를 찾는 ‘예리’(서현진)와 마음의 불꽃과 온기를 지킬 줄 아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 ‘한’(한예리)의 이야기로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한은 어쩌면 실재하지 않는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로지 예리의 꿈에만 등장하는 환상 같은 존재인 거죠.

한은 예리의 잃어버린 마음이 형상화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적어두긴 했지만, 실재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이거는 이런 거야’ 하고 정의해버리면 위험하다는 생각까지 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의 일면이 그렇거든요. 분석하지 않고 그냥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감각하는 것이요. 관객들도 이 영화를 그렇게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따뜻하다거나 뭉클하다거나, 그런 짧은 감상만 느껴도 더없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연유로 관객과의 대화(GV) 할 때 너무 조목조목 짚는 질문을 받진 않을지 조금 걱정이 되긴 해요.

‘그 장면에 어떤 의도가 있었죠?’ 같은 질문들.(웃음)

우리 그러지 말아요.(웃음)

개버딘 가죽 재킷 Miu Miu.

GV 예행연습으로 영화에 관한 질문을 하나 할게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매개는 ‘꿈’ 입니다. 인물과 인물이, 이야기와 인물이 만나는 경로로 꿈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우선은 이야기 자체가 너무 리얼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예리와 한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끌어당기는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꿈에 나오는 거라 생각했어요. 또 꿈이라는 게 자는 동안에 일어나는 정신 현상이기도 하지만,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뜻하기도 하잖아요. 어쨌든 저는 이 영화가 희망적이고 따뜻한 이야기가 되길 바랐고, 그런 이유로도 꿈을 중요한 매개로 쓰게 되었어요.

실제로도 꿈을 많이 꾸는 편인가요?

요즘 많이 꿔요. 잠드는 순간까지 생각을 끊지 못해서 그런가 봐요. 실은 잠을 잘 못 자고 있어요. 원래 하루 여덟 시간씩 자는 사람이었는데, 반년 넘게 네 시간씩밖에 못 자고 있는 데다, 영화 만들면서부터는 두 시간 간격으로 계속 깨더라고요. 감독의 고통이 이런 건가 싶어요. 셧다운이 안 돼요. 자다가도 번뜩 무슨 생각이 나요. 그러면 일어나서 메모를 하고 자야 돼요. 저 요즘 사우나도 자주 가요.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떤 생각들이 막 떠올라요. 기이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웃음)

‘감독으로서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네요.(웃음) 감독이 되면서 새로이 갖게 된 태도나 생각도 있을 것 같아요. 요즘 어떤 생각을 제일 많이 하나요?

빠르게 결정하지 말자. 무엇이든 너무 빠르게 장담하거나 이게 좋다고 확언하지 않으려 해요. 현장에 가기 전에는 수만 가지 길을 열어놔야 그게 천천히 좁혀지면서 자연스레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의 길을 확정하고 가면 아니다 싶을 때 돌아오기가 몹시 힘든 거죠. 요즘 하루에 1백 번쯤 “침착하자” 하고 되뇌요. 그리고 저는 이제 첫 작품을 하는 입장이니까, ‘모르겠으면 모른다고 말하자’, ‘아니라고 얘기할 때 빨리 수긍하자’ 이 두 가지 태도도 꼭 견지하려고 해요. 제가 고집이 좀 센 편이거든요. 그런데 감독이랍시고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모두가 반대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건 아닐지, 매일 스스로를 검열해요.

반대로 이 영화의 창작자로서 끝까지 놓치지 않고 고집스럽게 지키고자 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잘 만들고 못 만들고, 혹은 지나치게 어렵다거나 너무 뻔하고 쉽다거나 이런 만듦새를 다 떠나서 결과적으로 ‘나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그게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자 핵심이잖아요. 여성 창작자의 꿈을 자유롭게 펼쳐내기 위해 마련한 장의 첫 타자로서 가장 나다운 시도를 하는 것이 다음의 창작자에게도 보다 열린 기회를 만들어줄 테고, 그게 더 확장된 세계로 가는 길이 될 거라 생각해요. 저도, 다음의 누군가도 고유한 나만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재미있게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잖아요.

기세가 느껴지는 말이네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첫 미팅 때부터 지금까지, 한예리 감독님의 기세에 놀라는 중입니다.(웃음)

제가요?

처음은 설렘만큼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그럼에도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늘 “해보자”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기세를 느꼈습니다.

두렵다고 느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특히 창작자들은 두려움을 지우고 용기를 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잘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되든 안 되든, 해보는 과정을 거쳐야 결국 어떤 지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는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판을 만들어준 마리끌레르 팀도 있고, 같이 영화 만드는 영시 팀도 있고, 음악 감독을 맡아준 (선우)정아도 있고, 기꺼이 함께해준 (서)현진이를 비롯한 배우들도 있으니까요.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에 제가 더 용기를 내는 것 같기도 해요. 특히 현진이에게 너무 고마운 게, “현진아, 미안해. 내가 몇 년 만에 전화해서 이런 제안을…” 그랬더니 “예리야, 이렇게 만나는 거야. 원래 사람은, 인생은 그런 거야”라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정아도 질문 하나 없이 무조건 하겠다고 해줬고요. 이 마음들을 잘 갚기 위해서라도 계속 가보자 하는 중이에요.

키드 모헤어 재킷, 프린트 실크 스카프, 캐시미어 카디건 베스트, 포플린 셔츠, 키드 모헤어 스커트, 가죽 벨트 모두 Miu Miu.

덕분에 멋진 여성 아티스트들을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음악 감독부터 배우까지, 각각의 포지션에 지금의 인물들을 떠올린 연유가 궁금합니다.

일단 주인공 예리 역에는 그의 황량한 마음을 생각했을 때, 현진이가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건조한 얼굴이 서늘한 겨울 배경에 놓였을 때, 너무 아름답게 잘 표현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무엇보다 주도적으로 씬을 끌고 갈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는데, 현진이라면 믿고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배역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예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호정’ 역은 (김)호정 선배님을 상정하고 시작했어요. 외롭고 쓸쓸하지만 그럼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여성을 섬세하게 표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우라고 생각했거든요. (유)해연 배우는 함께하는 시형 감독이 추천했는데, 만나자마자 싱그럽고 햇살 같은 에너지가 제가 생각한 ‘우리’와 아주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리가 우리를 만나는 장면에서 뭔가 뒤돌아보고 싶어질 정도의 따스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해연 배우가 딱 그런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여성 배우들을 꾸리고 나니까 ‘형근’ 역의 남성 배우가 드러내는 은은한 존재감이 굉장히 중요하겠다 싶더군요. 사실 여성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성 역할이 좀 튈 때가 있어요. 자칫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인 느낌을 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시형 감독이 그렇지 않은, 다른 배우들과 밸런스를 잘 맞춰주는 배우이기도 해서 ‘형근’ 역을 부탁하게 됐어요. 또 제가 현장에서 감독과 배우 두 역할을 해야 하니, 공동 연출로 모니터를 서로 봐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마지막으로 이들을 모은 그림이 시리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여지없이 정아의 음악을 떠올렸어요. 제가 만들어내는 감성을 누구보다 잘 표현해 줄 음악가이기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아도 영화에 잘 스며드는 음악이 나올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이렇게 다 꾸리고 나니까 딱 한 가지 생각만 들더라고요. ‘나만 잘하면된다.’(웃음)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웃음) 어떤가요? 감독으로서 맞는 기쁨과 고난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비슷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피곤과 피로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고달플 정도로 피곤하진 않아요. 다만 피로할 뿐(웃음), 그렇지만 재미있어요. 어찌 됐건 다 끝내고 쓰러지자는 생각으로 내달리는 중이고요.

장렬히.(웃음)

그렇죠, 하하. 사실 이렇게 시간을 쏟고 열심히 해도 결과가 좋을 거란 법은 없죠. 그래서 최대한 이 과정을 잘 즐기고 싶어요. 저 하다가 막 울기도 해요. 그러다가도 PD님이 “감독님, 이 일이요” 하면 잠시 눈물 닦고 “미안해. 얘기해봐” 그래요. 며칠 전에도 눈물이 나서 “잠깐 뛰고 올게요” 하고선 사무실 근처를 한 바퀴 달리고 와서 일하고 그랬어요.

현장에서도 지켜보며 내내 궁금했어요.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열성적으로 만드는지요.

저도 되게 궁금한 점이에요. 스스로에게도 ‘무엇이 너를 움직이게 하느냐’ 이 질문을 되게 많이 하거든요. 단순하지만 결국은 좋아해야 되는 것 같은데, 저뿐만 아니라 지금 같이 만드는 팀 영시 사람들이 다 그래요. 창의적인 걸 만들 때 무엇이 필요한지 공부하는 걸 치열하게 즐거워해요. 그래야 본인들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강원도 답사도 네 번이나 다녀왔죠.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강원도는 마스터한 것 같아요. 사북, 정선, 태백 이쪽은 이제 저한테 물어보면 됩니다.(웃음)

곧 촬영이 끝나고 편집을 거쳐 4월 24일, 제13회 마리끌레르 영화제에서 영화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그날의 그림을 미리 상상해본다면요?

일단 촬영이 끝나면 편집 들어가기 전에 조용한 데 가서 이틀은 자려고요. 그리고 다시 가열차게 편집을 한 다음에… 글쎄요, 기술 시사를 할 때 한 번 울 것 같은데요? 우는 건 거기까지 하고, 상영하고 GV할 때는 엄청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가 모든 분에게 이해받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하지만, 일부분을 감각했을 때 따뜻함이 느껴지거나 보는 이의 어떤 부분이 투영되어 공감하게 되는 장면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 기쁠 것 같아요.

이번 도전을 계기로 감독으로서의 여정을 이어나갈 생각도 있나요?

연출까진 모르겠지만, 각본 쓰는 건 꽤 흥미로워서 단편 작품을 조금 더 써볼까 싶어요.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면 2년 이상은 생각해야 한다기에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일단 그랬어요. 되게 힘든데 재미있어요. 이상해요.

이번 ‘마리끌레르 우먼 필름 프로젝트’를 함께한 모두의 마음이 그렇지 않나 싶어요. 너무 힘들고도 즐거운. 그리고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장면만 남는 거죠.(웃음)

특히 현장에서 각자의 방향이나 생각이 부유하다 탁 접점이 맞물리는 순간, 그때의 희열이 진짜 커요. 감독이든, 배우든, 스태프든 현장에 있는 모두 영화의 어떤 부분을 담당하고 있잖아요. 그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만큼 근사한 일이 있나 싶어요. 그래서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춥고 고되다 하면서도 계속 영화 안에 머물고자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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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한예리 같았어요.
모든 인물에 예리 감독님의 면면이 스며들어 있다, 저는 그렇게 보였어요.”

서현진 배우 / ‘예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