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면서도 소탈한 대화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투지. 포근한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봄날,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주를 줄게> 속 ‘선태형’ 역으로 큰 사랑을 받은 배우 배인혁을 만났습니다.

마리끌레르 코리아와는 첫 화보 촬영이에요. 오늘 촬영은 어땠나요?
스튜디오 채광이 아름다워서 촬영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그동안 다양한 콘셉트를 경험해왔지만 이번 촬영은 다른 결로 다가왔거든요. 화보라는 게 사진 작업이다 보니 오히려 갇혀 있을 수도 있는데 오늘은 보다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촬영해서 흥미로웠어요.(웃음)

드라마 <우주를 줄게>가 많은 사랑 속에서 막을 내렸어요. 종영 이후에도 여전히 좋은 반응이 이어지고 있고요. 마지막 화를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아쉬운 마음이 커요.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한 작품이 끝날 때는 늘 여러 감정이 같이 따라오는데 이번에는 유독 그 여운이 길게 남더라고요. 시원함도 있지만 섭섭한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던 거 같아요. ‘우주’ 역을 맡은 유호를 비롯해 함께한 배우들과 정이 많이 쌓였거든요. 촬영이 끝난 뒤에도 자연스럽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드라마를 끝까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극 중에서 아이가 성장해 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보니 그 장면들을 다시 볼 때마다 묘하게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하고요.

‘선태형’ 역을 연기하는 건 어땠어요?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연기하면서 쉽게 납득되지 않는 지점들이 꽤 있었거든요.(웃음) ‘나라면 이렇게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죠. 분명 ‘태형’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자꾸 제 기준으로 해석하려 하더라고요. 배우로서의 시선과 캐릭터의 판단 사이에서 충돌이 생기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그 간극을 좁히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요. 그래서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인물에 대한 이해를 쌓아갔어요. 결국 ‘태형’에게 맞춰서 제 안의 무언가를 찾으면 되는 거더라고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맡은 배역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요? 또는 인상 깊었던 촬영 현장이 있다면요?
<우주를 줄게>요. 가장 최근 작품이기도 하고, 촬영 현장에 있는 모두가 아역 배우인 유호의 컨디션에 맞춰 시간을 조율했기 때문에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정해진 시간과 관계없이 갑자기 점심을 먹거나 오후 4시도 안된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하기도 했어요. 당연하게도 모든 일정이 유호를 중심으로 돌아갔죠.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그랬어요. 유호의 컨디션을 위해 먼저 촬영을 마치고 빠지면 저는 혼자 허공을 바라보며 연기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거든요.(웃음) 그런 과정들이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옐로우 셔츠 Ferragamo.

‘처음’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해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릴 때부터 TV 드라마를 보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다들 그렇듯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무렵 부모님께 배우가 되고 싶다고 처음으로 말씀드렸죠. 당시에는 어머니의 반대도 있었어요. 또 지금처럼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느껴졌고요. 그러던 중 가장 친한 친구가 먼저 연기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나도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그런 건가요?(웃음)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죠.(웃음) 마음은 있었지만 쉽게 결심하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먼저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게 더 정확한 거 같네요.

그렇다면 첫 배역은 어떤 역할이었나요?
그 당시 웹 드라마가 유행이었어요. 대표적으로 ‘플레이리스트’라는 제작사가 있었죠. 제 첫 작품은<러브 버즈>였고, 그 안에서 ‘승준’이라는 역을 맡았어요. 카메라에 서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아 어쩔 줄 몰라 했어요. 그래도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때 처음으로 ‘배우님’이라고 불렸을 거잖아요. 그 타이틀을 들었을 때는 어땠나요?
쑥스러웠어요.(웃음) 이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호칭이었으니까요. 또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었기에 실감이 잘 나지 않았죠. ‘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 만큼 어색하고 낯선 기분이었어요.

지난 작품들을 둘러보니 처음부터 주인공이었던 건 아니었어요. 단역에서부터 주연이 되기까지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죠.
저를 보고 비교적 쉽게 주인공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짧은 시간 안에 뭐든 하려고 한 것도 사실이고요. 다만 웹 드라마를 거쳐 TV 드라마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스스로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10층짜리 건물이 있다면 저에게는 6층부터 8층까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단역이나 다양한 역할을 일부러 찾아 나섰어요. 중간 단계가 비어 있는 만큼 더 많이 고민하고 제 자신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죠. 더 치열하게 노력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요. 특히 선배님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자연스럽게 긴장감도 높아지고 에너지도 주고받으면서 배우로서 한층 더 성장한 거 같아요.

그 긴 시간 동안 배우님을 더욱 단단하게 하거나 버틸 수 있게 해준 존재가 있을까요?
제 가족, 그리고 ‘배배’요. 제 팬덤명이거든요.(웃음) 처음에는 소소하게 느껴졌던 응원이 점점 더 커지고 깊어지는 걸 체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임감도 함께 커졌어요. 이제는 제 선택과 행동이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고 하고요.

재킷과 이너로 입은 셔츠, 팬츠 모두 Dolce & Gabbana.

또 반대로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 사람 같기도 해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보이기 위한 모습’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 보이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저를 매체를 통해 접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배인혁’이라는 사람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드라마에서는 캐릭터에 맞게 행동해야 하지만 인터뷰나 예능, 콘텐츠에서는 ‘사람 배인혁’의 모습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누군가는 낯설게 느낄 수도 있고, 반대로 더 편안하게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사람마다 보는 관점은 다르니까요. 다만 저는 스스로를 꾸미고 싶지는 않아요. 화보나 시상식처럼 연출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지만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에서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임하려고 해요.

작품을 선택할 때는 어떤가요? 주변의 의견보다 본인의 판단을 더 믿는 편인가요?
확실히 혼자 결정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회사와 충분히 논의하는 편이거든요. 회사에 계신 분들이 저보다 더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작품을 접해온 만큼 그 의견을 신뢰하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대본을 함께 검토하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방향을 정한 뒤 결정을 내려요.

그렇다면 <우주를 줄게> 대본 처음 봤을 때는 어땠어요?
펑펑 울었어요. 드라마 <체크인 한양> 촬영 때문에 전주로 이동하는 차에서 대본을 읽었었는데 당시 4부까지의 이야기가 굉장히 깊고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그 순간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남은 2026년 배우로서, 또 개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지금은 주어진 휴식을 잘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힘 있게 뛰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충전이 필요하니까요. 그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가족,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또 저만의 여유도 충분히 가지려고 해요. 그 과정을 통해 좋은 작품을 만나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올해의 목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