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보석함 속 가장 비싼 한 점은 에메랄드 반지입니다. 5월의 탄생석으로 알려진 에메랄드는, 5월생도 아닌 제가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들이게 된 한 점이기도 해요. MBTI 파워 NF형 인간답게, 주얼리를 구매할 때도 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들을 갖다 붙여 스스로를 납득시키곤 하는데, 이 에메랄드 반지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제 보석함 안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주얼리와 워치를 다루는 명품 브랜드 홍보팀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젬스톤과 컬러가 가진 의미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당시의 제 상황이나 고민, 보석의 의미를 연결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 즈음 제 사주에 목(木) 기운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또 어디선가 목 기운을 보완하려면 초록색을 가까이 두라는 이야기도 접했고요.
그때의 저는 유독 마음이 쉽게 흔들리고 방향성을 잃은 채 결정을 망설이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 같은 안정감을 자연스럽게 바라게 되었죠. 생명력과 재생의 상징이라는 에메랄드의 의미가 이상하리만큼 크게 다가왔던 이유도 그래서였겠지요. 결국 이 모든 정보들을 아주 NF스럽게 조합한 끝에 “그럼 에메랄드를 사면 되는 건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꽤나 그럴듯하게 포장된 샤머니즘에 가까웠네요. 이런 방법으로도 남편을 설득해 쇼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친구들은 모두 기함을 토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굉장히 오래전부터 인간이 초록색에 비슷한 의미를 부여해왔다는 점입니다. 에메랄드의 기원은 기원전 1800년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녹색 식물조차 드물었던 황량한 사막에서 발견된 짙은 초록빛의 돌이 얼마나 특별하게 보였을지는 안봐도 본 것만 같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초록색 안에서 생명과 풍요, 젊음의 이미지를 읽어냈고, 훗날 에메랄드 애호가로 역사에 남은 클레오파트라 역시 이 보석을 자신의 권력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상징처럼 사용했다고 하네요.
생각해보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호등의 초록불은 ‘다시 움직여도 좋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사람들은 숲이나 반려 식물의 초록색에서 안정감과 회복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5월의 탄생석이 에메랄드가 된 것도 꽤 자연스러운 흐름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초록이 풍성해지는 계절과, 가장 깊은 초록을 가진 보석이 연결된 셈이니까요.
올해 공개된 하이 주얼리 컬렉션들에서도 유독 에메랄드가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메종들의 인스타그램만 둘러봐도, 약속이라도 한 듯 짙고 깊은 초록빛의 에메랄드 피스가 빠지질 않습니다. 흥미로운 건, 같은 에메랄드라도 메종마다 풀어내는 분위기는 꽤 달랐다는 점입니다.
지난 4월 19일 뉴욕에서 공개된 티파니앤코의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 ‘블루 북 2026: 히든 가든’의 트윈 버드 챕터에 속한 에메랄드 스위트 네크리스는 갓 움트기 시작한 봄의 생명력을 담았습니다. 플래티넘 덩굴 사이로 페어 셰이프와 오벌 카보숑 에메랄드를 배치해, 가지 끝에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꽃봉오리가 연상됩니다. 섬세하게 더해진 옐로우 골드 꽃받침은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의 긴장감을 부드럽고 유기적으로 이어줍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4월 22일, 파리에서 발표된 쇼메의 ‘A Journey through Nature’ 컬렉션 속 에메랄드는 보다 웅장하고 압도적인 자연에 가까웠습니다. 티 필드(Tea Field) 네크리스는 약 23캐럿의 콜롬비아산 에메랄드 컷 에메랄드를 중심으로, 층층이 펼쳐지는 다이아몬드 세팅이 마치 폭포가 쏟아지는 웅장한 차밭 풍경을 압축해 목선에 구현해놓은 듯했습니다.


반면 5월 2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론칭한 루이 비통의 ‘미시카(Mythica)’ 컬렉션 속 에메랄드는 훨씬 더 신화적이고 관능적인 분위기에 가까웠습니다. 쇼메의 에메랄드가 거대한 자연 풍경 자체를 목선 위에 옮겨놓은 듯했다면, 메스머리즘(Mesmerism) 네크리스는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다이아몬드 레이스워크로 완성한 네크리스 바디는 실제 관절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중심에 세팅된 17.18캐럿 콜롬비아산 에메랄드는 여신의 목 위에서 빛나는 부적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더해진 모노그램 플라워 컷 다이아몬드는 단순히 우아한 여성미보다는, 어딘가 야생적이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더 강조하는 쪽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5월 13일, 김지원, 장원영, 변우석 등의 참석으로 국내 언론을 뒤흔들었던 불가리의 ‘에클레티카(Eclettica)’는 에메랄드를 가장 현대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컬렉션처럼 느껴졌습니다. 에메랄드 스트라타(Strata) 네크리스는 다섯 점의 잠비아산 슈가로프 에메랄드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며 만들어내는 리듬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하나의 거대한 스톤이 시선을 이끄는 방식과는 또 다르게, 결코 작지 않은 에메랄드들이 연속적으로 배치되며 훨씬 더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고요. 특히 붉은 톤의 로즈 골드 위에서 짙은 그린 컬러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대비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앞선 메종들의 에메랄드가 자연이나 신화적 존재를 떠올리게 했다면, 불가리는 가장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초록빛을 풀어낸 듯했습니다.


이외에도 반클리프 아펠의 레꼴 주얼리 스쿨은 에메랄드를 주인공으로 한 전시 <에메랄드 정원>의 공개를 앞두고 있습니다. 6월 25일부터 7월 15일까지 북촌 푸투라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탄생한 에메랄드가 장인의 손을 거쳐 하이 주얼리 작품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전시라고 하니 개인적으로도 크게 기대가 됩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에메랄드 이야기 뿐입니다. 에메랄드가 얼마나 더 사랑받게 될지 감도 안 옵니다.

이렇게 에메랄드 이야기를 잔뜩 꺼내놓고 보니, 정작 저는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며 들인 에메랄드 반지를 너무 아껴 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메랄드는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보다 경도가 낮아 손상에 비교적 예민한 편이라 괜히 조심스럽고, 그러다 보니 의외로 손이 잘 가지 않았네요. 결국 흔들리는 마음과 방향성을 붙잡아보고 싶다며 들인 보석을 가장 안전한 곳에 모셔만 두고 있었던 셈입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에 반지를 다시 꺼내 오른손에 껴봅니다. 홈웨어 차림에 에메랄드 반지를 낀 채 랩탑을 두들기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스스로도 조금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잘 써보고 싶었던 마음만이라도 잘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