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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패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흔히 패션을 옷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옷을 가리키는 말은 생각보다 많다. 복식, 의복, 의상 같은 단어들이 모두 우리가 입는 것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패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패션 연구에서는 이 세 가지 개념을 구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복식은 의복과 장신구, 머리 모양 등을 포함한 인간의 외양 체계를 가리킨다. 특정 사회의 규범과 생활 관습 속에서 형성된 차림의 방식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의복은 신체에 착용되는 옷을 물질적 대상으로서 가리킨다. 복식 체계를 구성하는 구체적 요소로 이해된다.

이와 달리 패션은 복식이나 의복처럼 특정한 대상 자체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다. 유행의 변화, 생산과 소비의 체계, 매체를 통한 이미지 재현 등이 결합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다. 이 정의가 보여주듯 패션은 단순히 무엇을 입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패션은 사회와 산업, 그리고 문화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시스템에 가깝다. 그래서 패션은 언제나 사회적 조건과 함께 움직여 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시스템을 둘러싸고 하나의 중요한 주제가 등장했다. 바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패션 산업은 매년 막대한 양의 의류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 위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다양한 연구와 보고서를 통해 점차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의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과 물 사용, 그리고 섬유 폐기물 문제는 기후 변화 논의와 함께 중요한 환경 이슈로 떠올랐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변화까지 겹치면서 패션 산업 역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최근 패션 산업에서는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소재 개발에서 생산 방식, 소비 문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역에서 변화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 연재에서는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글에서는 패션 산업이 왜 지금과 같은 속도로 옷을 생산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구조가 왜 지속가능성과 충돌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두 번째 글에서는 패션 산업이 제시하고 있는 다양한 지속가능성 해법들을 검토한다. 세 번째 글에서는 취향의 분화와 트렌드 변화 속에서 패션이 더 오래 지속되는 문화가 될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오늘의 글은 그 출발점이다.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해 보려 한다. 패션은 왜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게 되었을까?

패션은 본질적으로 변화의 속도와 관계된 문화다.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은 「Die Mode」(1904)에서 패션을 사회적 모방과 차별의 반복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는 현상으로 설명했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그것이 확산되며 다시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에 패션은 일정한 속도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하고 유행이 형성되며 다시 다른 스타일로 교체되는 이 순환이 바로 패션 시스템을 움직이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물론 패션이 언제나 지금과 같은 속도로 움직였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의복은 훨씬 느린 변화의 리듬 속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었다. 산업혁명 이전의 옷 만들기를 떠올려 보자. 실을 한 올 한 올 엇갈려 엮어 천을 짜고, 바늘과 실로 한 땀 한 땀 천 위에 시간을 새겨 넣던 순간들. 직조와 바느질의 반복 속에서 천은 조금씩 형태를 얻고 옷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러한 작업을 생활과 연결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흔히 실용 미술(applied art)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손의 숙련과 미적 판단, 그리고 오랜 시간이 축적되며 형태를 만들어 가는 감각이 함께 작동했다. 그래서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노동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산업혁명과 함께 방직기와 재봉기가 등장하고 산업화와 대량 생산 체계가 결합하면서 의류 생산의 속도는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옷을 만드는 방식이 변화하면서 패션 역시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패션 산업은 계절별 컬렉션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 브랜드와 유통업체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더 많은 상품을 더 빠르게 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이 속도는 한 단계 더 빨라졌다. 이른바 패스트 패션이라 불리는 모델이 등장하면서 패션은 더 이상 계절 단위로 움직이지 않는다. 새로운 스타일은 몇 주 단위로 등장한다. 온라인 플랫폼과 글로벌 공급망은 디자인에서 생산, 유통까지의 시간을 크게 단축시켰다. 오늘날 일부 브랜드는 수천 개의 새로운 스타일을 매주 시장에 내놓는다. 패션의 변화는 점점 더 짧은 주기로 반복되고 소비 역시 그 속도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이러한 속도에 맞춰 변화하는 생산 방식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냈다. 대부분의 브랜드와 유통업체는 실제 수요가 발생하기 전에 소비자가 무엇을 사고 싶어 할지를 예측하고 생산량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남는 재고는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상품이 부족해 판매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재고가 남는 편이 오히려 더 안전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그 결과 패션 산업은 언제나 더 많은 상품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실제로 패션 산업은 매년 약 1500억 벌의 옷을 생산하는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그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로 판매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WGSN과 OC&C Strategy Consultants의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생산되는 의류 가운데 150억에서 450억 벌이 팔리지 않은 채 남는다. 이 사실은 패션 산업의 문제가 단순히 옷을 많이 버린다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애초에 지나치게 많은 옷을 만들어야 하는 생산 구조에 있다.

이러한 생산 구조는 환경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패션 산업은 현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퍼센트를 차지하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의류 생산 과정에서는 탄소 배출뿐 아니라 물 사용, 산림 파괴, 섬유 폐기물 문제도 함께 발생한다. 팔리지 않은 의류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폐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결국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 쌓여 있는 거대한 의류 폐기물 더미는 이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패션의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소재나 기술의 문제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친환경 섬유를 개발하거나 재활용 기술을 확대하는 노력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패션 산업의 환경 부담을 충분히 줄이기 어렵다.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패션 산업이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빠르게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작동하기 때문이다. 생산의 속도가 유지되는 한 전체 생산량은 계속 증가하고, 그만큼 환경 부담도 줄어들기 어렵다.

패션 산업이 직면한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패션은 새로운 스타일을 끊임없이 제안해야 하는 산업이다. 동시에 그 속도가 만들어내는 환경적 부담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더 많은 옷을 생산하면서 환경 영향을 줄이겠다는 목표는 생각보다 쉽게 양립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최근 패션 산업에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논의의 초점은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얼마나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패션이 어떤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가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패션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산업의 리듬, 즉 패션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와 관련된 문제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결국 지금 패션 산업이 마주하고 있는 과제는 분명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산업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오래 지속되는 문화로 스스로의 속도를 조정할 것인가. 패션의 지속가능성은 바로 이 선택의 문제 위에서 다시 정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