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돌던 괴담이 극장을 넘어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점령했습니다.

영화 ‘백룸(Backrooms)’이 개봉 8일 만에 50만 관객을 끌어 모으며 올여름 극장가의 예상 밖 흥행작으로 떠올랐습니다. ‘살목지’의 뒤를 이어 공포 영화 열풍을 이어가는 가운데, 평일에도 관객 수가 꾸준히 늘어나며 흥행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광기 어린 노란 벽과 형광등, 그 공포의 시작
2019년,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4chan’에 게시된 의문의 사진 한 장. 온통 노란색으로 물든 벽과 저조도의 형광등, 곰팡이 핀 바닥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현실의 틈에서 미지의 세계인 백룸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글과 함께였죠. 약 6억 평방마일인 백룸은 지구 전체 면적의 3배에 달하는 공간으로,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설정인데요. 여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이 공간을 배회한다는 암시까지 더해졌습니다. 도시 괴담의 탄생을 엿보는 듯한 이 글이 바로 오늘날 1800억 흥행 신화를 일으킨 영화의 시초였죠.
백룸이라는 개념은 현실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을 상상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현실 세계가 메인 무대라면, 백룸은 백스테이지인 셈인데요. 백룸이라는 명칭에도 그 힌트가 숨어있죠. 꿈에서 본 듯한 기시감과 함께 익숙한 공간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설정이 사람들의 원초적인 불안을 건드렸고, 이내 인터넷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할리우드를 휘어 잡은 천재 감독, 케인 파슨스
이 괴담을 극장으로 끌고 온 인물은 바로 2005년생 영화 감독, 케인 파슨스(Kane Parsons)입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그는 직접 만든 9분짜리 단편 영상을 장편 영화로 발전시키며, 세계적인 흥행작을 탄생시킨 장본인인데요. 아는 사람만 아는 마이너한 도시 전설이었던 백룸이 대중적이고 세계적인 아날로그 호러의 반열에 오르게 된 데에는 2022년 케인 파슨스의 유튜브 영상이 있었습니다.
당시 16세이던 그가 공개한 9분짜리 단편 페이크 다큐멘터리 ‘백룸’은 공개 2주 만에 조회수 2000만 회를 돌파하며 ‘인터넷에서 가장 무서운 영상’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그로테스크하거나 잔인한 장면 대신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으로 공포에 떨게 만들었죠. 이후 그는 초기 영상의 세계관을 확장한 추가 에피소드 22편을 잇따라 공개했고,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미국 영화사 A24와 ‘컨저링’ 시리즈를 만든 아토믹 몬스터(Atomic Monster)가 영화 제작에 참여했고, 케인 파슨스를 감독으로 발탁했습니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그는 A24 역사상 최연소 장편 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죠. 그가 영화 제작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 없이 오픈 소스 3D 소프트웨어 블렌더와 어도비 애프터 이펙트를 독학으로 익혔다고 전해져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는데요. 이후 영화 백룸의 성공으로 역대 최연소 박스오피스 1위 감독이라는 신기록까지 거머쥐며, 천재 젠지(Gen-Z) 감독으로 거듭났습니다.


젠지가 만드는 새로운 영화 흥행 공식
결과는 할리우드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박스 오피스 모조(Box Office Mojo)에 따르면 백룸의 글로벌 흥행 수익은 약 1억 1794만 달러(한화 약 1791억 원)로, 1000만 달러였던 제작비의 약 12배에 달합니다. 이는 A24 설립 이후 가장 높은 오프닝 성적인데요.
흥행의 핵심은 젠지 세대의 지지입니다. 백룸 관객의 약 86%가 35세 이하로, 이 중 절반 이상은 25세 이하의 관객이 채웠습니다. 영화 속 숨겨진 단서와 이스터에그를 찾아보고, 세계관과 설정에 몰입하는 2차 창작 콘텐츠를 발행하며 작품을 보다 능동적으로 즐기고 있죠. 이전에도 인터넷 괴담의 IP화 시도는 있었지만, 백룸처럼 원작자가 직접 연출 봉을 쥐고 팬덤 문화와 메이저 자본이 완벽하게 맞물린 사례는 드물었습니다. 젠지가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키워낸 세계관이 마침내 극장을 사로잡은 것이죠. 백룸의 성공은 단순한 흥행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온라인 하위 문화와 젊은 창작자 기반의 콘텐츠가 흥행 공식을 흔들고 있습니다. 열기에 더해 파슨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속편에 대한 구체적인 작업을 이미 하고 있다”며 백룸 세계관의 확장 가능성을 암시했습니다. 인터넷 한 켠의 괴담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그 무한한 확장성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