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부터 하우스를 책임진 아드리안 아피올라자(Adrian Appiolaza)가 모스키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밀란 브랜드 써네이(Sunnei)의 창립자 듀오 시모네 리조(Simone Rizzo)와 로리스 메시나(Loris Messina)가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죠. 프렌치 시크나 미니멀리즘이 지배적인 패션계에서 독보적인 유머 감각과 풍자로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을 사로잡았던 하우스, 모스키노와 거침없는 젊은 에너지를 가진 써네이의 만남에 밀란 패션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과연 이 흥미진진한 바통 터치에는 어떤 서사가 숨어있을까요?

하우스의 코드를 묵묵히 정돈했던 아드리안 아피올라자

    로에베와 마르니 등 하이패션의 최전선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고 모스키노에 합류했던 아드리안 아피올라자. 그는 창립자 프랑코 모스키노(Franco Moschino)의 방대하고도 해학적인 유산을 가장 진지하고 학구적인 태도로 탐구했던 인물이죠. 전임자 제레미 스콧이 팝아트적인 자극과 화려한 쇼맨십에 집중했다면, 아피올라자는 하우스의 오리지널 코드를 동시대적인 웨어러블 룩으로 치환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평론가들은 그의 컬렉션을 두고 “하우스의 뼈대를 다시 세운 안정적이고 품격 있는 터치”라며 찬사를 보냈죠. 그는 브랜드를 성급하게 전복시키기보다 모스키노의 본질을 차분하게 정돈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완벽한 도약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약 1년 남짓한 짧은 시간임에도 그는 확실하게 그의 색깔을 모스키노에 녹여냈죠.

    그가 브랜드를 떠난다는 사실을 듣고 보니, 마지막이 된 모스키노의 2026 F/W 컬렉션이 새롭게 보입니다. 그는 이번 쇼를 앞두고 “내게 아주 개인적인 작업이며, 무엇보다 내 뿌리에 관한 이야기다. 내 어린 시절의 집, 아르헨티나에 바치는 오마주이자 기억과 회상, 향수를 담았다”고 고백한 바 있죠.

    @ adrianappiolaza

    종이돈을 위트 있게 이어 붙인 펌프스, 그리고 평화와 인권을 외치던 아르헨티나의 국민 만화 캐릭터 ‘마팔다(Mafalda)’가 외치는 “BASTA!(멈춰!)”의 메시지까지. 어쩌면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인생과 가치관을 이 컬렉션에 압축해 우리에게 파노라마 같은 작별 인사를 건넸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던 그였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적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죠. 축축하고 눈물젖은 작별 인사 대신, 그와 모스키노가 늘 그래왔듯 가장 유쾌하고 쿨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THE END”라는 문장과 함께 말이죠.

    ‘써네이’에서 모스키노로 향한 듀오, 시모네 & 로리스

    이제 바통을 이어받은 써네이의 창립자, 시모네 리조와 로리스 메시나를 주목할 시간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두 사람은 패션 비전공자 출신입니다. 정형화되지 않은 시선이 무기였던 이들은 2014년, 밀란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 ‘써네이(Sunnei)’를 론칭하며 단숨에 패션 신의 다크호스로 떠올랐습니다. 이탈리아 레이블 특유의 고급스러운 테일러링 위에 얹어진 톡톡 튀는 컬러감, 그리고 젊고 트렌디하면서도 지적인 위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작년 9월, 이들은 런웨이를 경매장으로 탈바꿈시키고 디자이너 자신들까지 경매 매물로 올려버리는 파격적인 ‘옥션 쇼(Auction Show)’를 선보이며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죠. 이후 2026 S/S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브랜드를 떠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았던 브랜드를 뒤로 한 채 모스키노에서의 새로운 모험을 준비하고 있죠.

    2020년대의 ‘힙’으로 부활할 프랑코 모스키노의 유산

    왜 이들일까요? 답은 명확합니다. 모스키노의 창립자 프랑코 모스키노가 추구했던 패션 시스템에 대한 풍자와 위트가 써네이 듀오가 그동안 보여준 유쾌한 퍼포먼스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관객들에게 점수판을 쥐여주고 룩을 평가하게 하거나, 모델들이 록스타처럼 관객석으로 크라우드 서핑(Crowd-surfing)을 하게 만들던 두 사람의 엉뚱한 천재성. 이 발칙한 아이디어가 모스키노라는 아카이브를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날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모스키노의 모기업 에페(Aeffe) 그룹 역시 이들의 감각적인 시선과 바이럴 능력이 하우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죠.

    이들이 이끄는 모스키노의 새로운 챕터는 오는 9월, 밀란 패션위크에서 그 베일을 벗을 예정입니다. 이별은 늘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새로운 도전과 시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죠. 하우스의 뼈대를 단단하게 다져놓은 아피올라자의 유산 위에서, 가장 힙하고 발칙한 모습으로 귀환할 모스키노의 신세계를 기대해봐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