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 셀렘으로.
배우 전소영은 이제 멈칫하지 않고, 다음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저는 어떤 사람을 알아가고 싶을 때,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보는 편이에요. 그래서 만나기 전에 미리 좋아하는 것들을 물었는데, 리스트를 보고 ‘과일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과일이 굉장히 많던데요.(웃음)
엄청요. “밥 먹을래, 과일 먹을래?” 하면 과일을 택할 정도로 좋아해요. 하핫.
그리고 하늘색과 보라색을 좋아하고, 녹차 음료도 좋아한다고 했죠. 또 어떤 것들을 좋아해요? 이참에 좋아하는 마음을 맘껏 꺼내보면요.
음… 꽃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건 능소화고요. 그리고 유치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순금 5인방과… 모임 이름이 ‘순금 한돈’이거든요.(웃음) 쉬는 날 그 친구들이랑 등산 갔다가 우리 집에서 막걸리 한 잔씩 하는 시간도 소중하게 생각해요. 제 근작이 모두 장르물인데, 그것도 너무 사랑하지만 로맨스나 사극 장르에도 관심이 많아요. 또 최근에는 드라마 <기리고>에서 제가 맡은 인물인 ‘세아’와 포뇨(<벼랑 위의 포뇨>의 주인공)가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포뇨를 좋아하게 됐고요. 당장은 이런 것들이 생각나네요.
오늘처럼 좋아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는 편인가요, 혹은 혼자 간직하는 편인가요?
예전에는 표현하는 걸 조금 조심스러워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좋아하는 마음은 쉽게 생기지 않는 감정이라는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좋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모두 귀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요즘은 긍정의 마음은 되도록 입 밖으로 내어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그 마음을 일에 대입해본다면, 배우의 일 중에서는 어떤 면을 유독 사랑하나요?
맡은 인물의 성격, 직업, 나이, 상황에 따라 그가 느끼는 감정들이 모두 다르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마주하는 상대에 따라서도 달라질 테고요. 그 모든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게 많구나 싶어요. 배우가 되기 전보다 확실히 감정의 층위가 훨씬 넓어졌다고 느끼거든요. 그리고 제 시간들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작품을 통해 스물둘의 내가, 스물셋의 내가 이랬었구나 하고 떠올리게 되는 게 배우 일의 엄청난 장점인 것 같아요.
스물둘의 배우 전소영을 만날 수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 얘기를 해볼까요. 이 작품을 만났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죠. 두려웠어요.
어떤 의미의 걱정이었어요?
첫 주연이고, 그래서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잘 끌고 갈 수 있을지 부담이 컸어요. 액션 신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연기하는 것도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걱정이 많았어요. 제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되게 많이 하는데요. 처음으로 ‘잘할 수 있지?’라는 질문에 멈칫했던 작품이에요.
결과적으로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이 되었어요.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에서 1위에 오를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요.
제가 눈물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1위를 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나는 거예요. 기쁨보다 안도의 눈물이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걱정을 차치하고도,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가 너무 많이 고생한 작품이거든요. 일례로 전력 질주를 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배우들도 쉽지 않았지만, 촬영 팀은 무거운 장비를 이고 지고 달리고 또 달렸어요. 모두가 사력을 다한 현장이었죠. 그 노력이 빛을 발했구나 싶어 울면서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감독님, 저희 1위 했어요. 으아앙.(웃음)” 하면서요. 그런데 감독님이 (MBTI 성격 유형상) T 성향이거든요. “소영아, 무척 행복한 일이지만, 우리 너무 들뜨지 말자”라고 하셔서 바로 “네” 하고 감정을 가라앉혔습니다. 하하.
조금은 즐겨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서린고 5인방으로 나온 배우들 카톡 단톡방에서 충분히 서로 축하해주고 기뻐하긴 했죠.
한편으론 <기리고>가 만들어낸 스코어가 단순히 기쁜 감정으로 한정되진 않겠다 싶어요. 배우에겐 그 이상의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맞아요. 어딘가를 올라가는데 뒤에서 무언가가 밀어주는 느낌이랄까요. 나도 해낼 수 있구나, 앞으로 걱정 없이 도전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점에서 큰 힘을 얻은 것 같아요. 다음에는 어떤 시도를 해도 전처럼 두려워서 멈칫하진 않을 것 같고요.
두려움을 뛰어넘어 끝내 자신과 친구들을 구해내는 세아처럼요?
네. 세아처럼 작품마다 제가 맡은 인물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고 싶어요.


질문에 대답하는 눈에서 다부진 의지가 읽히네요. <기리고>를 보면서 세아의 눈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오늘 대화하면서도 전소영 배우의 눈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져요.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눈이 가장 솔직하고 내밀한 감정을 전하는 매개체라 생각해서 중요하게 여기는데, 지금 되게 큰 칭찬을 받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웃음) 다만 <기리고>에서 세아의 눈이 보였다면, 그건 상대 배우들 덕분이에요. 이야기 안에서 유독 세아가 만나는 인물이 많았는데, 그래서 촬영 때마다 마주하는 캐릭터의 눈을 잘 마주치고 그로부터 나타나는 감정을 표현하려 했거든요. 함께한 배우들이 눈을 잘 맞춰줬기 때문에 세아의 감정이 눈을 통해 잘 드러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전소영 배우의 다음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다시 용기를 낼 차례네요.
지금 한창 새 작품을 촬영 중인데요. 두려운 감정을 설렘으로 바꾸려는 과정이에요. 저는 연기를 할 때 전소영이라는 본래의 자아는 아예 내려놓고, 맡은 캐릭터로서 살아가려 하는 편이에요. 촬영하는 몇 달간은 현장 밖에서도 그 캐릭터로 사는 거죠. 그렇게 타인의 삶을 살아본다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고 연기를 한다는 자각이 덜 들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부담을 지우면서 조금씩 캐릭터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기리고>에서 세아가 친구를 위한 소원을 빌었다면, 오늘은 전소영 배우로서 나를 위한 소원을 빌어볼까요? 연기를 지속하기 위해 얻고 싶은 에너지가 있다면요?
늘 낯섦을 느끼는 감각을 얻고 싶어요.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당연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익숙해지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캐릭터를 파악하고 연기하는 과정에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계하는 편이에요.
무뎌지고 싶지 않고, 날 선 감각을 유지하고 싶은 거겠죠?
맞아요. 제 경험이 정답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언제나 조금은 낯섦을 유지하고 싶어요. 그리고 하나 더 빌어도 되나요?
얼마든지요.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얻고 싶어요. 아직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기운이 넘치지만, 언젠가는 지칠 수도 있을 텐데, 그때 빠르게 회복하고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제 막 저를 알아봐주는 팬들이 생겼는데, 그분들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쉴 틈이 없어. 우리 배우는 계속 새 작품이 나와.” 이런 유의 즐거움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에너지에 체력도 포함되어야 하겠는데요.(웃음)
제가 원래 체력이 그 다지 좋지 않았는데, <기리고>에서 세아가 육상부원으로 나오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국가대표 선수랑 같이 훈련했거든요. 그 덕분에 지금은 꽤 좋아졌어요. 요즘 촬영 일정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데,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잘해나가고 있어요.
<기리고>에서 얻은 귀한 점 중 하나네요.
네, 너무 귀하죠. 사실 더 소원을 빌 게 없다 싶을 정도로 <기리고>를 통해 얻은 게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