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결혼하던 해에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습니다. 까르띠에 코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하이주얼리 이벤트를 개최했고, 팬더 드 까르띠에 워치의 리뉴얼 론칭 이벤트를 국내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였습니다. 게다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국내 첫 소장품 전시도 있었죠. 두 달 동안 제 이력서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개의 프로젝트를 모두 마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행사가 끝난 지 정확히 두 달 뒤, 저는 버진로드를 걸었습니다.

어떻게 준비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이어트는커녕 드레스도 겨우 피팅했고, 웨딩 주얼리도 드레스 숍에서 보유한 제품 가운데 가장 심플한 디자인을 골랐습니다. 예물 역시 큰 고민할 새도 없이 ‘정석’이라고 불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커플링에 가드링, 그리고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솔리테어 링까지. 남들이 하는 구성은 다 갖췄지만, 이전 글에서도 설명했듯 결혼 후에는 보석함에 잠들어 있는 날이 더 많은 삼형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솔리테어 링을 착용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죠. 당시에는 시계 브랜드에서 이직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관심도 자연스럽게 예물 시계에 더 쏠려 있었습니다. (예물 시계를 고른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이미 구구절절 풀어놓았지요.) 반지는 그저 ‘이 조합이 좋으니 남들도 이렇게 선택하겠지’라는 생각으로 골랐고요. 지금만큼 다양한 보석을 접하고 주얼리를 좋아했던 때라면, 아마 조금 더 저 다운 반지를 선택했을 겁니다. 결혼 반지는 가장 오래도록 나를 설명하는 주얼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거든요.

어느덧 결혼 10주년이 가까워졌습니다. 자연스럽게 ‘10주년 반지’ 레퍼런스를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요즘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덕에 중량이 큰 다이아몬드도, 리세일을 고려해 쉽게 선택하지 못했던 팬시 컷 다이아몬드도 훨씬 실현 가능한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예전에는 상상으로만 끝났던 디자인들까지 즐겁게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러던 절묘한 시기에 테일러 스위프트와 두아 리파가 나란히 결혼 소식을 전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위해 맞춤 제작한 결혼 반지를 선택했지만, 디자인도, 세상에 공개한 방식도 놀랄 만큼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따라가다 보니 반지 안에는 두 사람이 음악과 패션을 통해 오랫동안 보여준 각자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야기를 남겼고, 다른 한 사람은 순간을 남겼습니다.


▶ 이야기를 남기는 사람, 테일러 스위프트

@taylorswift

테일러 스위프트의 반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10캐럿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스톤 크기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이 반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중량보다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앤티크 올드 마인 컷의 분위기를 가진 세로로 길게 늘인 쿠션 컷 다이아몬드, 존재감 있는 옐로 골드 밴드, 그리고 스톤 가장자리를 따라 섬세하게 둘러진 밀그레인 장식까지. 새로 맞춘 반지임에도 오래전부터 대를 이어 전해진 빈티지 링 같은 인상을 남깁니다. 현대의 브릴리언트 컷처럼 빈틈없이 밝게 반짝이기보다, 정교한 비율이 표준화되기 전의 올드 컷 특유의 묵직하고 불규칙한 빛을 떠올리게 하죠.

해외 주얼리 매체들 역시 이 반지에서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올드 마인 컷과 올드 유러피언 컷의 미감을 읽어냈습니다. 최근에는 완벽한 대칭과 광채를 추구한 현대식 브릴리언트 컷보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비율과 표정을 지닌 올드 컷 특유의 매력에 다시 시선이 쏠리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무엇보다 이 반지는 남편인 트래비스 켈시가 디자이너와 함께 고심해 맞춤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사람을 생각하며 하나의 반지를 새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미 디자인 자체가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 반지를 공개한 방식도 테일러 스위프트다웠습니다. 여러 장의 사진은 단순히 결혼 발표용 이미지라기보다 하나의 영화처럼 이어졌습니다. 반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면서도 두 사람이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를 먼저 펼쳐 보이는 프롤로그 같았달까요. 사진 한 장마다 팬들이 들여다보고 해석할 만한 단서가 있었고, 그녀의 결혼 반지는 그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사진 속에서 까르띠에 산토스 드모아젤(Santos Demoiselle) 워치를 발견하고 또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까르띠에의 대표적인 남성 워치인 산토스를 여성을 위해 보다 우아하게 재해석해 2000년대 초 선보인 모델로, 이미 10여 년 전에 단종된 시계입니다. (오늘날에는 팬더 드 까르띠에 워치가 그 디자인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녀의 곁에 있었을까. 의미 있는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것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직접 찾아 헤맨 끝에 만난 시계였을까. 세상의 어떤 새 시계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굳이 단종된 빈티지 워치를 착용한 이유에는 분명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반지의 빈티지한 디테일, 오래된 시계, 한 편의 영화처럼 구성된 사진까지. 테일러 스위프트는 결혼을 발표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주얼리는 단순히 아름다운 물건으로 머물지 않고, 계속 들여다보고 그 안의 의미를 궁금하게 만드는 서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 순간을 남기는 사람, 두아 리파

두아 리파의 반지는 첫인상부터 테일러 스위프트의 반지와 정반대입니다. 두꺼운 18K 옐로 골드 시가(Cigar) 밴드 위에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디자인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결혼반지의 문법과 거리가 멉니다. 가느다란 밴드 위로 다이아몬드를 높이 들어 올린 전형적인 솔리테어 링이 아니라, 골드 밴드의 묵직한 볼륨과 조형감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 정도로 두껍고 대담한 솔리테어 링은 저 역시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반지만 따로 보면 과감하고 낯선 디자인이 두아 리파의 손 위에서는 놀랄 만큼 자연스럽습니다. 평소 그녀가 즐겨 착용해 온 볼드한 골드 주얼리와도 잘 어울리고, 화려한 무대 의상은 물론 비교적 담백한 일상복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강한 실루엣과 대담한 주얼리를 즐기면서도 결코 그것에 눌리지 않는 사람. 반지의 존재감이 아무리 커도 결국 먼저 보이는 것은 두아 리파 자신입니다. 그래서 이 반지는 독특한 디자인이라기보다, 처음부터 그녀를 위해 존재했던 반지처럼 느껴집니다.

이 반지 역시 남편인 칼럼 터너가 디자이너와 함께 맞춤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반지를 세상에 알린 방식은 테일러 스위프트와 달랐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결혼 반지를 결혼 이야기의 중요한 상징으로 선명하게 공개했다면, 두아 리파의 반지는 202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올린 평범한 휴가 사진 속에서 팬들에게 먼저 발견됐습니다. 약혼설이 이어졌지만 그녀는 약 6개월 동안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고, 이후 한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자 그제야 담담하게 약혼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반지를 중심에 세워 이야기를 시작하기보다 자신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놓아둔 셈입니다.

웨딩 사진에서도 같은 애티튜드가 이어졌습니다. 런던에서 혼인 신고를 한 날, 두아 리파는 커다란 화이트 와이드 브림 햇과 단정한 화이트 수트를 입고 남편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사진은 복잡한 장면이나 장황한 설명 없이 두 사람과 그날의 스타일만을 간결하게 남겼습니다. 불가리의 글로벌 앰배서더인 그녀는 세르펜티 하이주얼리 네크리스를 착용했습니다. 세르펜티는 고대부터 지혜와 재생, 영원을 상징해 온 뱀을 모티프로 한 불가리의 대표적인 아이콘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이라는 순간에도 더없이 의미 있는 선택이었고, 자신만의 개성과 존재감을 잃지 않는 디바 두아 리파에게도 더없이 잘 어울리는 컬렉션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얼리가 사진의 주인공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드라마틱한 모자와 화이트 수트, 네크리스가 하나의 스타일로 연결됐고, 화려한 하이주얼리마저 두아 리파라는 사람을 완성하는 한 조각으로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특정 브랜드나 주얼리보다 그날의 그녀가 먼저 기억에 남는 이유입니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사진 속에 해석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겼다면, 두아 리파는 자신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남겼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주얼리가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서사의 일부라면, 두아 리파의 주얼리는 그녀의 몸과 스타일 안에서 완성되는 현재의 일부였습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두 사람의 반지는 모두 자신의 개성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두 디바는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웨딩 주얼리는 결혼을 장식하는 보석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방식이라는 것. 누군가는 반지에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이야기를 담고,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의 취향과 태도를 담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언제나 ‘나’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은 저는 요즘 반지를 볼 때 디자인보다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나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함께 떠올립니다.

저는 공감 능력이 좋은 편이지만, 그만큼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유난히 쉴드 컷 (Shield Cut) 다이아몬드가 눈에 들어옵니다. 단순히 모양 때문만은 아닙니다. ‘Shield(방패)’라는 이름이 가진 상징이 지금 제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쉽게 상처 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지금처럼 평온하고 결속력 있는 결혼 생활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면 쉴드 컷이야말로 지금의 저와 앞으로 닮고 싶은 저를 함께 설명하는 10주년 반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천연 물질로 만든 방패라면, 이보다 더 든든한 상징도 없을 테니까요.

공교롭게도 제가 10주년 반지 레퍼런스를 모으기 시작한 시기에 두 디바가 나란히 눈부신 약혼 반지를 받고 결혼했습니다. 덕분에 제 레퍼런스 폴더는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졌고, 저희 집 가장의 마음은 그만큼 조금씩 무거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분의 결혼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제 이 글의 링크를 남편에게 슬그머니 보내볼 생각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저… 레퍼런스 공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