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이 바뀌고 역할이 달라져도, ‘구마유시’는 또 다른 승리의 문법을 구사한다.

한화생명e스포츠가 MSI(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 진출을 확정했죠. 한화생명이 MSI 무대에 오른 것은 창단 이후 처음이에요. 특히 ‘구마유시’ 이민형 선수가 한화생명으로 이적한 뒤 이뤄낸 성과여서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으셨죠?
공식적인 인터뷰는 많이 하지 않았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한화생명으로 이적한 첫해에, 팀이 그동안 한 번도 오르지 못한 MSI 무대에 최초로 진출하게 됐습니다. 한화생명 팬들께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쁘고요. 또 이번 MSI가 대전에서 열리는데, 한화와 대전의 인연이 깊은 만큼 더욱 뜻깊게 느껴집니다.
*인터뷰는 MSI 개막 전 진행했습니다
‘구마유시’ 선수가 한화생명에 합류한 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나요? ‘내 역할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요?
안도감이라기보다는, 이 팀에 올 때부터 목표를 분명하게 세웠기 때문에 그중 하나를 이뤄냈다는 느낌이었어요.
찾아보니 ‘구마유시’ 선수가 아직 MSI 우승 경험이 없더라고요. 당연히 우승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이번 대회가 좋은 기회라고 보나요?
지난 MSI에서도 한 세트 차이로 우승을 놓쳤어요. 그렇게 아쉽게 우승하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어요. 매번 우승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자료를 찾아보니 중국의 BLG가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더라고요. 가장 경계해야 할 팀이라고 보나요?
BLG가 중국에서 가장 강한 팀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저희도 1번 시드로 진출한 팀입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이전 인터뷰를 보니 한화생명으로 이적하면서 “커리어의 새로운 출발이다”라고 이야기했더라고요. 그 표현이 흥미로웠어요. 새로운 도전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나요?
T1은 전통이 있고 우승 경험도 많은 팀이에요. 멤버들도 강력하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우승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어요. 이적하면서 새로운 팀,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내가 또다시 해낼 수 있을지를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이곳에서 쌓는 커리어에는 새로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하게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팀에 합류한 뒤 가장 늦게 적응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편이라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다만 좋은 팀이 되려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제 역할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역할이 달라졌나요?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적하기 전부터 그런 변화가 있을 거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어요.
조금 더 주도적인 멤버가 되었나요?
네. 지금 팀에서는 제가 비교적 우승 경험도 많고 연차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더 찾으려고 했습니다.
선배로서인가요?
동료로서요. 제가 먼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나누려고 해요.



우승 경험이라는 건 큰 자산이잖아요. 요즘 경기를 보면 바텀의 초반 주도권이 전체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원딜이 주도권을 가지고 올 때와 흐름을 보면서 기다려야 할 때를 판단하는 감각이 중요해졌는데요. 이런 타이밍을 읽는 본인만의 감각이 있나요?
네. 질문을 제 나름대로 해석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라인전에서 주도권을 잡고 플레이하는 능력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요.(웃음) 그
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할 때와 힘을 빼고 기다려야 할 때를 스스로 잘 판단하기 때문이죠.
그건 감각의 영역인가요?
어떻게 플레이를 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지를 많이 경험해봤잖아요. 데이터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고, 감각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
죠. 실제로 MSI 진출 결정전에서 T1을 상대했을 때도, 유리한 조합에서는 적극적으로 격차를 벌리고 불리한 조합에서는 무리하지 않으면
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했어요.
현명한 대응이네요. 불리할 때는 잘 버티고, 기회가 오면 한꺼번에 몰아치는 거죠.
네.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유리한 조합만 가져갈 수는 없거든요.그래서 각 조합과 상황에 따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많이 신경
쓰는 편이에요.
결국 상황에 따라 팀 전체가 같은 판단을 내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겠네요.
연습 과정에서 최대한 많이 호흡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눠요. 롤은 패치에 따라 메타가 바뀌고, 포지션마다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져요. 어
떤 선수에게는 바뀐 메타가 원래 플레이 스타일과 잘 맞아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하고요.
9월에 열리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됐죠. 이전 팀 동료였던 페이커 선수와 케리아 선수도 함께 뽑혔고요. 한 팀에서 뛰다가 서로 다른 팀이 됐는데, 다시 대표팀에서 한 팀으로 만나게 됐네요. 어떤 느낌인가요?
이 신이 좁다 보니 계속 마주치게 되더라고요. 저도 이적이 처음이라 다시 같은 팀에서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워낙
오래 함께해와서 그런지 그냥 계속 같은 팀에 있던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승패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경기도 있잖아요. 비록 졌더라도 준비한 플레이나 본인이 생각한 방향을 충분히 구현한 경기라면 나름의 의미가 있을 거고요. 하지만 팬들은 아무래도 과정이나 내용보다는 승패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죠.
물론 프로 선수는 승패로 평가받는 직업이죠. 하지만 저는 결과만큼이나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또 마음가짐 면에서 어떤 성장을 이뤘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사하게도 저를 오래 응원해주신 분들은 한 경기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구마유시’라는
선수가 성장해가는 과정의 일부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본인의 경기나 플레이를 다룬 영상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분석하거나 평가하는 영상이 많잖아요.
대중의 평가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조건 무시하는 편은 아니에요. 받아들일 만한 의견은 수용하려고 하죠. 물론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이
야기는 그냥 보고 잊어버려요.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제 플레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에게 하기에는 엉뚱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경기 중 돌발 상황이 생기면 당황하나요?
돌발 상황은 거의 없어요.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상황들을 예측하면서 플레이하니까요. 정말 돌발 상황이 생긴다면 당황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금방 다시 집중해요.
직관적으로 “몇 수 앞을 내다보세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어요?
롤이라는 게임은 생각할 게 많으니까, 일곱 수 정도요?
동시에 말풍선이 7개 떠 있는 느낌인가요?
네, 맞아요.
좋은 프로 게이머에게 중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요.
승패로 평가받는 직업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성장에 집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좋은 팀이란 어떤 팀일까요?
누구 한 사람만 잘한다고 좋은 팀이 되는 건 아니에요. 잘하는 선수 5명을 모아놓는다고 반드시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요. 결국 중요한 건 팀워크예요.
‘구마유시’라는 이름의 무게를 느끼나요?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이제는 큰 이름이 됐잖아요.
제 말과 행동에 따르는 책임이 커졌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제 말과 행동의 기준을 타인이나 대중에게 맡기고 싶지는
않아요. 스스로의 기준을 분명히 세우고,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간다면 떳떳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은 본명인 ‘민형’이라고 부르나요?
네. 경기 보실 때는 “구마유시가 최고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경기를 앞두고 불안한 생각이 들면 실제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상대가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이상하게 질 것 같은 예감이 들 때도 있잖아요. 그런 건 없어요. 기분에 따라 경기력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결국 얼마나 잘 준비했느냐가 중요하고, 준비를 충분히 하면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생겨요.
우문현답이네요. 올해는 MSI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요?
MSI뿐 아니라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전 팀에서 이룬 신화를 넘어, 새로운 팀에서 또 하나의 신화를 쓰는 셈이겠네요.
이루어진다면 그렇겠죠.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사람들이 ‘구마유시’라는 선수를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라나요?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가진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자신의 기준과 신념을 지킨 선수였다는 평가도 받고 싶습니다.
※한화생명e스포츠는 2026년 7월 12일, MSI 결승에서 중국의 BLG를 3대 2로 꺾고 우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