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의 오늘을 움직이고 내일을 준비하는 LCK 이정훈 사무총장. 그가 말하는 산업의 변화, 그리고 그 중심에서 마주한 고민들.

게임과 e스포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LCK와 사무총장의 역할을 먼저 설명해주세요.
LCK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의 약자로, T1, 한화생명e스포츠를 포함한 10개 팀이 참여하는 한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리그입니다. 전 세계 6개 지역 리그 가운데 하나고, 성적과 규모, 흥행, 관심도 면에서 가장 주목받는 리그죠. 사무총장은 이 리그의 전체 운영을 총괄합니다. 외부적으로는 여러 글로벌 리그와 협의점을 찾고, 국내에서는 10개 팀의 의견을 조율하며 LCK의 연간 운영 전반을 살피는 역할을 하죠.

한국에서 유독 뛰어난 선수가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소통’과 ‘경쟁’을 즐기는 한국적 특성, 그리고 PC방이라는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게임을 여가 생활이나 취미로 즐기는 경우가 많아요. 일본은 혼자 하는 콘솔 게임 문화가 특히 발달했고요. 그런데 한국인은 소통과 경쟁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경쟁이 없으면 재미가 덜하다고 느끼고, 동료와 협력해 승리했을 때 큰 성취감을 느낍니다. e스포츠는 기록 경쟁보다 상대와 겨루는 종목이 많기 때문에 이런 성향과 잘 맞죠. 어디서든 친구나 동료와 모여 게임할 수 있는 PC방 문화도 분명한 차별점이고요.

e스포츠가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무엇이었을까요?
‘페이커’ 이상혁 선수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포츠가 성공하려면 레거시, 즉 유산과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해요. 과거의 우승과 결승전의 결정적인 장면들이 사람들의 기억에 쌓이면서 종목의 역사가 되고,그 종목을 대표하는 스타가 대중을 끌어당깁니다. 이렇듯 모든 스포츠에는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전 세계 e스포츠를 대표하는 인물을 한 명 꼽는다면 당연히 ‘페이커’ 선수고, 그의 존재가 e스포츠를 메인스트림으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본 ‘페이커’는 어떤 선수인가요?
사무총장으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페이커’ 선수에 대해서만큼은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웃음) 10년 넘게 지켜보며 경기력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도 존경스러운 선수라고 느꼈어요.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데에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숙한 인격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프로 게이머들은 하루 대부분을 연습에 쓰는데, 그는 짧은 휴식 시간에도 꾸준히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거든요. 또 자신의 영향력과 말의 무게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게 하죠.

LCK가 단순한 게임 대회나 스포츠 리그를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됐다고 실감한 순간이 있나요?
2023년에 한국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고척스카이돔에서 결승전을, 광화문광장에서는 대규모 팬 페스타를 준비했어요. 서울시가 e스포츠를 이해하고 협조해준 덕분에 사기업 최초로 광화문광장 사용 승인을 받은 거죠. 당시 4강에 중국 팀 세 팀과 한국 팀 한 팀이 남아 있었는데, 한국 팀이 결승에 오르지 못하면 열기가 꺾일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유일하게 남은 한국 팀이던 T1이 준결승과 결승을 거치며 우승했고, 이로써 광화문광장도 수많은 팬이 함께하는 문화적 소통의 공간이 됐습니다. 이 순간이 e스포츠가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진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e스포츠는 스포츠인가’라는 논제로 벌이는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오래된 논쟁이지만 어떻게 보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를 신체 활동으로만 정의하면 어느 정도의 움직임부터 스포츠로 볼 것인가를 시작으로 끝없이 질문이 생깁니다. 바둑도 눈과 머리, 손가락을 사용하고, 양궁도 정밀한 판단 끝에 팔과 손가락으로 결과를 만들죠. 프로 게이머 역시 손과 팔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실제로 부상을 겪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몸을 얼마나 크게 움직이느냐보다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과 영감을 주느냐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일반 스포츠 종목 선수 못지않은 노력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무대에 오르고, 사람들이 그 과정에 열광하고 희열을 느낀다면 스포츠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논쟁 역시 ‘페이커’ 선수의 말로 종지부를 찍었어요.(웃음)

너무 궁금한데요. 어떤 말이었나요?
제가 정확하게 외우고 있는 말이기도 해요. “몸을 움직여서 활동하는 것이 기존의 스포츠에 대한 관념인데, 그것보다 경기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영감을 준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2023년에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페이커’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 말이에요.

멋진 말이네요. 이제 LCK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세계의 다른 리그와 구분되는 한국 LCK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이 한국에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입니다. 국내 출시 후 15년가량 지난 지금도 PC방에서 점유율 약 40%를 유지할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하나의 콘텐츠가 이 정도 점유율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전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거든요. 게임에서 파생된 표현이 일상 언어와 신조어로 쓰이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티어(플레이어의 실력을 나타내는 등급)가 공통 관심사일 정도니까요. 이런 문화적 기반 위에서 e스포츠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게 이뤄졌고, 다른 지역보다 수준 높은 인프라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롤파크 역시 한국 e스포츠를 상징하는 공간이 됐는데요.
규모가 작아 아쉽다는 의견이 있지만, 롤파크는 전 세계 e스포츠 팬이 찾는 성지이자 서울의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는 외국인이 많고 전체 방문객의 약 20%가 외국인으로 집계됩니다. 북미와 유럽의 한국 여행 안내서에도 꼭 방문해야 할 장소로 소개될 정도예요.

LCK 팬덤의 구성과 응원 방식은 과거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나요?
초창기에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10대와 20대 남성 팬이 잘하는 선수의 경기를 보러 오는 모습이 중심을 이뤘습니다. 지금은 자신이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LCK 자체를 스포츠로 즐기는 팬이 많아졌어요. 현장 이벤트에서는 여성 관객이 절반 이상으로 느껴질 때도 있고, 20~30대 이상의 팬도 많아요. 연인, 가족, 여성 친구들끼리 오는 경우도 많고요. 5전 3승제에서 2대 2 동률인 상황에서 팬들이 휴대전화 라이트를 켜고 ‘Silver Scrapes’에 맞춰 흔드는 장면처럼 반복된 행위가 LCK만의 레거시와 응원 문화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본인이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도 LCK를 즐길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모든 온라인 게임이 e스포츠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 요소가 충분해야 하고, 대중이 볼 때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잔인하지 않아야하며, 무엇보다 직관적으로 관전할 수 있어야 하죠. <리그 오브 레전드>는 세부 아이템 효과를 몰라도 5명이 맞붙어 누가 살아남았는지, 체력이 얼마나 줄었는지, 어느 팀이 앞서고 있는 지를 보면 기본적인 흐름을 알 수 있어요.

2025년 LCK의 평균 분당 시청자 수가 63만4천 명을 기록했고, 해외 시청자 비중도 60%를 넘었습니다.
해외에서 시청자가 60% 이상 나온다는 것은 경이로운 기록입니다. 순간 최고 시청자 수는 4백만 명을 넘기도 했어요. 한국의 전통 스포츠 리그를 외국인이 자국에서 이처럼 많이 시청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LCK는 시간대가 맞지 않는 지역에서도 밤을 새워 볼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축구에 비유하면 EPL(1992년에 시작한 잉글랜드의 최상위 축구 리그)과 같은 위치라고 생각해요. 뛰어난 경기력이 가장 큰 이유고요. 2021년에 프랜차이즈를 도입한 이후에는 평균 분당 시청자 수가 30만 명대에서 60만 명대로 약 2배 증가하기도 했죠. 리그 포맷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고, 그사이 국제 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며 팬덤이 커진 결과라고 봅니다.

어마어마한 숫자네요. 그렇다면 ‘여러 세대가 즐기는 글로벌 프리미엄 콘텐츠’라는 LCK의 비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나요?
각각에 의미가 있어요. ‘여러 세대가 즐긴다’는 것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축구와 야구처럼 10년, 20년 이상 이어지는 스포츠를 지향한다는 뜻입니다. ‘글로벌’은 한국 리그에 머무르지 않고 EPL처럼 전 세계인이 즐기는 리그가 되겠다는 다짐이고요. ‘프리미엄 콘텐츠’에는 어떤 부분에서도 품질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롤파크 역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고민을 거듭해 설계했고, 그런 노력이 세계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는 바탕이 되었죠. 리그의 모든 요소를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LCK의 방향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가 있나요?
선수와 팀은 주목받지만 리그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하는지 가까이에서 보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e스포츠 업계의 독특한 점은 구성원 대부분이 이 종목을 무척 좋아한다는 건데요. 채용 과정에서도 단순히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각오를 밝히기보다 언제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지 강조하는 분이 많습니다. 말 그대로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일하고, 그 결과가 실제 무대에서 구현될 때 큰 보람을 느끼는거죠.

오늘날 e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하나 꼽는다면요?
‘지속 가능성’입니다. 게임에는 수명이 있기 때문에 e스포츠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같은 질문을 10년 전에도 받았고, 그사이 LCK는 훨씬 더 성장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리그로 만들겠다는 의지와 팬의 사랑이 있다면 수명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스포츠가 성장하더라도 변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인가요?
아무리 좋은 경기를 펼쳐도 보는 사람이 없고 현장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어요. 선수들에게 매년 규정과 계약, 인터뷰 스킬, 기본 소양 등을 교육하면서도 이 점을 강조합니다. 높은 연봉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그 기반에 팬의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죠. 심신이 피곤한 상태에서는 사인이나 인터뷰 요청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팬의 존재를 한 번 더 떠올려야 해요. 이는 선수뿐 아니라 리그 운영진도 잊지 말아야 할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