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의 오늘을 움직이고 내일을 준비하는 T1 정회윤 단장. 그가 말하는 산업의 변화, 그리고 그 중심에서 마주한 고민들.

e스포츠 팀의 단장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팀마다 단장의 역할은 조금씩 다를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단장의 출발점은 훌륭한 선수단을 구성하는 일입니다. 좋은 성적을 거둘 확률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목표고요. 결과는 경기 전까지 알 수 없지만, 준비 과정이 이상적이면 잘할 가능성도 높아지니까요. 시즌이 시작되면 주어진 현실 안에서 선수들이 최고의 환경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T1은 일정이 많기 때문에 대외 활동과 훈련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어느 시점부터는 경기 외 활동이 어렵다고 울타리를 쳐주는 일도 중요하죠. 그 반대로 꼭 필요한 일정이라면 선수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요. 해외 대회에서는 숙소와 음식, 현지 적응 같은 세부적인 부분도 살핍니다. 거시적으로는 팀의 방향을 관리하지만 미시적으로는 매니저 역할도 하는 셈이죠.

e스포츠가 스포츠 종목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기까지 가장 오래 설득해야 했던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무엇을 설득해야 했다기보다 e스포츠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느냐가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스타크래프 트>라는 게임을 알아야 e스포츠를 좋아할 수 있고, 게임을 알아야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지금은 본인이 게임을 하지 않아도 e스포츠를 관전하는 분이 많습니다. 프로야구에서 20대 여성 팬의 존재감이 커졌듯이 꼭 직접 플레이 해야만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컴퓨터게임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과 ‘그걸로 어떻게 승부를 하느냐’는 의문도 시대가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줄었고요. 특정한 설득 지점을 우리가 무너뜨렸다기보다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산업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했다고 봅니다.

전통 스포츠와 e스포츠의 가장 닮은 지점과 다른 지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닮은 점은 승부가 주는 불확실성입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는 있어도 미리 알 수는 없잖아요. 사람들이 그 불확실성에 열광한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주인공이 결국 이길 것이라는 기대가 어느 정도 있지만 스포츠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응원하는 팀이 이기거나 우승했을 때 성취감이 극대화되는 거고요. 다른 점은 규칙이 계속 바뀐다는 것입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패치를 통해 변화하고, 이에 따라 메타도 달라져요. 변화를 계속 탐구해야 한다는 점이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지만, 잘 따라가면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보이스컴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한다는 점인데요. 약속된 움직임으로 호흡을 맞추는 기존 스포츠와 달리 경기 내내 마이크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차이죠.

보이스컴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한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제약이 적을수록 서로에게 기대하는 수준도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싸우자고 합의했는데 누군가 합류하지 않으면 경기 후에 왜 약속대로 움직이지 않았는지 묻게 되죠. 그 반대로 필요한 상황에서 왜 말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고요. 다른 스포츠에서는 경기 중 말할 틈이 없을 수 있지만, e스포츠에서는 소통하지 않는 플레이가 노력이나 승리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스컴이 있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웃음)

2019년에 e스포츠 업계에 들어온 뒤 지금까지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낀 풍경은 무엇인가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2023년에 한국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었습니다. T1이 국민적인 지지를 받으며 우승했고, 광화문광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결승전을 함께 관람했죠. T1이 매년 여는 홈그라운드 역시 인상적입니다. 인스파이어 아레나나 KSPO DOME처럼 아이코닉한 아티스트들이 서는 무대가 T1의 붉은색으로 채워지고 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싶어요. 해외에 나갔을 때 많은 분이 응원해주시는 것도 신기하고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경기 날이 아닌데도 일상에서 T1 유니폼을 패션처럼 입은 분들을 마주치면 팀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녹아들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죠.

그 변화가 특히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점이 있을까요?
코로나19 이후로 보는데요. 2023년이나 2024년부터 e스포츠를 보기 시작한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T1이 월드 챔피언십에서 연이어 우승하면서 그 흐름에 더 큰 힘을 실었다고 생각하고요. 시청 콘텐츠에 대한 소비 욕구가 커지고 팀의 이야기에 애착을 가진 팬도 늘었습니다.

오늘날 e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하나 고른다면요?
‘유연함’입니다. 팬과 시청자의 콘텐츠 소비 속도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빨라졌고, 그 흐름을 계속 따라가야 합니다. <리그 오브 레전 드>도 오래된 게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의 속도와 관심에 맞추려면 어떤 변화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실제로 실행할 수도 있어야 하죠. 새로운 트렌드와 현상이 눈 깜짝할 사이에 등장했다가 지나가는 시대이니만큼 늘 열린 사고와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e스포츠가 지닌 강점은 무엇인가요?
한국 e스포츠 시장과 팬들은 몰입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수와 팀의 이야기에도 깊이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성과나 결과가 나왔을 때 크게 반응해주거든요. 앞서 말한 유연함과 더불어 이런 몰입도 한국 e스포츠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T1은 이제 팀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여겨집니다. T1의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선수들이 게임을 잘한다는 점입니다. 스포츠는 결국 우수한 성적을 내야 사랑받을 수 있는데, T1은 감사하게도 꾸준히 좋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또 선수들이 열심히 하며 바람직한 기준점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e스포츠에는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기량이 떨어진다거나 게임만 해온 선수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편견이 있었어요. T1 선수들은 오랜 경력을 이어가면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이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평소에도 모범적이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요. 그런 모습이 T1을 넘어 업계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 고맙고 뿌듯합니다.

앞으로 T1이 어떤 팀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나요?
사람들에게 즐거운 기억을 많이 만들어준 팀으로 남으면 좋겠어요. 계속 좋아해주시는 분도 있겠지만, 일상에 지쳐 잠시 경기를 보지 못하거나 팀에서 멀어지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와 반대로 새롭게 재미를 느끼는 분도 있을 테고요. T1에 열광하고 지켜본 시기가 언제든, 팀을 떠올렸을 때 좋은 기억을 준 존재로 남았으면 합니다.

개성이 강한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게 할 때 가장 어려운 점과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요?
선수들은 경기와 대외 활동을 병행하며 굉장히 바쁜 일정을 소화합니다. 그런데도 묵묵히 잘 해내는 모습을 보면 프로답다고 느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는 일이거든요. 다행히 T1 선수들은 스스로 계속 동기를 찾고, 힘든 상황에서도 회복하는 탄력성이 뛰어나요.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쌓아온 것이 당연히 영향을 주지만, 다른 선수들 역시 끊임없이 성장하려 하고 스스로 동기를 찾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자체뿐 아니라 라이벌과 성장, 도전, 우승과 패배를 아우르는 서사도 중요해졌습니다. 매력적인 서사는 언제 만들어질까요?
진정성이 보일 때죠. ‘케리아’ 류민석 선수가 2022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에서 패한 뒤 크게 아쉬워하던 모습은 진정성을 형상화한 것 같았어요. 우승을 진정으로 원했지만 이루지 못해 슬펐던 건데, 선수들이 게임에 품은 열정과 잘하고 싶은 진심은 이러한 순간에 드러납니다. 서사에는 기승전결과 위기가 있고,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고 극복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끝에 좋은 결과까지 있었기 때문에 T1의 이야기가 많은 분에게 가닿았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커’ 선수는 T1뿐 아니라 e스포츠 전체를 설명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 상징성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페이커’ 선수와 함께 일하는 데 큰 자부심과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가 e스포츠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라는 사실은 이 업계에 행운이자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가까이에서 보면 전무후무한 선수에게도 인간으로서 견뎌야 할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쉽지 않겠다’ 싶을 때도 그것을 견디고 이겨냅니다. 게임 실력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계속 성장하고요. 처음 만났을 때도 훌륭한 선수였는데 해마다 그 기준점이 더 높아지는 느낌입니다. 사람들을 더 배려하는 모습도 보이고요. e스포츠에 페이커라는 아이콘이 존재하는 것은 이 산업이 잘되라고 받은 축복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 신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으로서 e스포츠라는 세계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무엇인가요?
친근함과 접근성입니다. 축구나 야구 경기를 보고 나서 곧바로 같은 환경에서 직접 해보는 데는 어느 정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아이돌 무대를 보고 바로 그 무대를 재현하기도 쉽지 않고요. 하지만 e스포츠는 경기를 재미있게 본 뒤 집에 컴퓨터만 있으면 친구들과 곧바로 같은 게임을 즐길 수 있어요.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 사이에 거리감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죠. ‘페이커’ 선수도 유명인이지만 사람들이 거리에서 마주치면 굉장히 살갑고 친근하게 대해주세요. 프로 게이머가 오랫동안 대중과 가까운 자리에서 소통해왔기 때문에 모두의 마음속에 친숙한 존재로 자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