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재스민 배니스터(Jasmine Bannister)는 쌍둥이 자매와 어머니, 할머니를 오랜 시간 카메라에 담아왔다. 개인적인 가족사에서 출발한 그의 사진은 점차 정체성과 소속감,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문화적 유산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사진가의 삶에서 길어 올린 이미지가 씨앗처럼 세상에 뿌리내려, 창작자의 손을 떠난 뒤에도 계속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Childhood Memories, 2020

10대 시절부터 이어온 자전적 사진 프로젝트는 당시 가장 가까이에 있던 가족들을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이 이미지들이 하나의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겠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가던 시기에 자연스레 깨달은 것 같다. 작업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삶에서 자신의 길을 주체적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쯤 이 사진들을 통해 더 깊은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본능을 따라 시작한 작업이 시간이 지나면서는 점차 내가 가족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내내 다른 방식으로 다루기 어려운 감정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프로젝트도 함께 성장했고, 점차 더욱 의식적인 차원으로 발전하게 됐다.

당신의 쌍둥이 자매와 어머니, 할머니가 모두 사진에 등장한다.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듯한 장면이 있는 한편, 인물의 몸짓이나 사물의 배치에서 어느 정도 연출이 느껴지는 사진도 있다. 한 장의 사진은 보통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나?

보태니컬 아트를 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나와 쌍둥이 자매는 부모님의 예술작품과 감각 안에서 자랐다. 외부 세계와 다소 떨어져 있었지만 주변의 자연과 동물에 둘러싸인 삶은 어떤 면에서는 동화 같았고, 그런 환경이 내게는 일종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어떤 사진은 그저 일상에서 발견한 장면이고, 어떤 사진은 의식적으로 연출한다. 주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이건 만들어야겠다’ 싶으면 필요한 요소를 준비하고, 때로는 가족의 도움을 받아가며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내 작업은 만들어내는 것과 발견하는 것 사이를 수시로 오간다.

이 작업은 다큐멘터리에 기반을 두지만, 동시에 기억이나 꿈, 때로는 불현듯 떠오른 환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업 과정에서 다큐멘터리와 파인 아트 사진, 관찰과 연출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조율하나?

나는 다큐멘터리와 파인 아트, 실제와 연출처럼 경계에 놓여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한데 뒤섞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의미에서 예술이란 결국 만들어진 현실 아닌가.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보다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현실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이 작업은 실제 인물과 관계, 내가 발 디딘 환경에서 출발하지만, 사진은 눈앞의 현실을 나만의 방식으로 변형할 수 있게 해준다. 때로는 어떤 장면이 자연스럽게 눈앞에 나타나고, 나는 그것을 포착한다. 반대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거나 무대를 준비하듯 여러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치해 장면을 만들 때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내게 관찰과 연출은 서로 모순되는 방식이 아니며 하나의 이미지 안에 두 요소가 함께 존재할 때도 있다.

My Mother and Her Garden of Flowers, 2019

내 삶에서 나온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씨앗처럼 세상에 심고 나면,
그것들이 어디로 향하고 무엇으로 자랄지는 알 수 없지만 나를 뛰어넘어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Portrait of Kez, 2022

모든 형태의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는 우리 자매에게 공감과 감수성을 길러주었고,
한 인간으로서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나 자신을 형성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진 속에서 동물과 자연은 가족만큼이나 큰 존재감을 지닌다. 이 동물들 역시 당신과 개인적인 역사를 공유해온 존재들인가?

사진에 등장하는 모든 동물은 나와 아주 가까운 존재이자 우리 가족의 일원이다. 어머니의 삶에는 언제나 동물이 함께했고, 우리가 자라는 동안 야생동물과 길들여진 동물을 모두 구조해 함께 돌봤다. 모든 형태의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는 우리 자매에게 공감과 감수성을 길러주었고, 한 인간으로서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나 자신을 형성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일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을 듯하다. 그런 존재들과 함께하며 친밀함과 취약함이 공존하던 순간들은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누군가를 촬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의 가장 내밀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취약함과 연약함은 삶의 일부이며, 사진은 그런 면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려운 스스로의 취약한 면을 작업을 통해 마주하면서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친밀감은 가까움과 거리감 모두에서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찍는 존재들을 깊이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한편, 사진을 통해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서부터 그들이 시작되는지를 이해해가는 데서도 비롯된다.

이 프로젝트는 세 세대의 여성을 통해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오랜 시간 이들을 촬영하면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기도 했나?

이 질문을 대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용서와 사랑이라는 단어다. 오랜 시간 어머니와 할머니, 쌍둥이 자매를 프레임에 담으며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세대마다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고 전해지는지 더 깊이 인식하게 됐다. 특히 쌍둥이 자매는 언제나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 자매를 촬영하는 일은 그와 아주 깊은 결속으로 이어져 있는 가운데 점차 서로에게서 분리되어 독립된 개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의 일부이기도 했다.

Resting with Miss Owl, 2018

세 세대의 여성을 한 프레임에 담으며 “시간과 공간을 통해 무엇이 전해지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작업을 이어오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었다고 볼 수 있나?

아마 그 질문이 이토록 오랜 시간 프로젝트를 이어온 이유일 것이다. 세대를 거쳐 무언가가 전해지는 일은 어떤 가족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고, 그 안에는 아름다운 것과 어려운 것이 모두 담겨 있다. 지난 몇 년간 깨달은 것은 세대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 단지 손에 잡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몸짓이나 감정,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상처와 강인함, 사랑처럼 훨씬 나중에야 그 존재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는 것들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그런 유산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나만의 방식이다.

이 작업은 당신의 개인적인 가족사에서 출발해 정체성과 소속감, 문화적 유산이라는 보다 보편적인 질문으로 점차 확장된다. 개인적인 경험에 뿌리를 둔 이미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무언가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자신의 경험에 솔직하면서도 처음부터 그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 태도. 이 작업은 나의 가족과 관계, 나의 몸, 나의 역사, 그리고 내가 성장한 환경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사랑과 취약함,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 유산, 우리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려는 욕구와 같이 보편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동시에 그것이 또 다른 삶을 살아갈 가능성 또한 내어준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경험에 구체적이고 진실하게 다가갈 때, 비로소 타인이 그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발견할 공간이 생긴다고 본다. 그것이 여러 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의다.

사진 작업을 이어오며 믿게 된, 예술이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인가?

사진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은 무언가를 보존하는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시간을 가로질러 계속 살아가게 한다. 나는 이를 씨앗을 심는 일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내 삶에서 나온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씨앗처럼 세상에 심고 나면, 그것들이 어디로 향하고 무엇으로 자랄지는 알 수 없지만 나를 뛰어넘어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한 사람의 경험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시간을 가로질러 이동하고, 다른 누군가의 삶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가 믿고 있는 예술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