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마리봇의 요점 정리
  • 시계의 인덱스는 클래식한 로만부터 스포티한 도트까지 다양한 형태를 지녀 첫인상을 결정합니다.
  • 눈매 역할을 하는 핸즈는 형태와 마감 처리에 따라 시계의 개성 있는 표정을 완성해 줍니다.
  • 러그와 크라운은 시계와 스트랩을 연결하고 조작을 돕는 동시에 전체 실루엣을 결정합니다.
Patek Philippe.

IWC에서 일하던 당시 저는 여러 컬렉션들 중에서도 파일럿 워치를 좋아했습니다. 파워 F인 저는 파일럿 워치야말로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손목 위에 구현한 오브제’라고 생각했거든요. 큼직한 아라비아 숫자와 야광 핸즈처럼 기능에서 출발한 스포티한 요소들을 가득 갖추고도, 클래식 워치만큼은 아니지만 날씬하게 뻗은 러그 덕분인지 수트에도 묘하게 어울리는 그 한 끗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근무하던 당시 출시된 파일럿 워치 마크 17을 제 위시리스트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렸던 적이 있었죠.

그런데 정작 구입은 하게 되지 않더라고요. 망설여졌던 결정적 이유는 크라운이었습니다. 저는 비행 장갑을 낀 채로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큼직하게 만든 ‘양파 모양’ 크라운까지 있어야 비로소 파일럿 워치가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테마충’이거든요. 하지만 제 손목에 어느 정도 맞는 40mm 초반 그 이하의 모델에는 원하는 크라운이 장착되는 모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러그 하나는 이 시계를 좋아하게 만들었고, 크라운 하나는 사지 않게 만든 셈입니다. 시계를 고를 때는 보통 케이스의 형태나 소재, 가죽 스트랩인지 메탈 브레이슬릿인지처럼 눈에 잘 보이는 조건부터 따지게 되는데 정작 어떤 시계에 마음이 가고 가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때로 그보다 훨씬 작은 곳에 있었던 거죠.

생각해보면 시계의 요소들은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눈, 코, 입을 하나씩 떼어놓으면 각각의 생김새가 주는 인상이 있는데, 그 조합에 따라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혀 달라지는 거죠. 골격이 살아있고 선이 굵은 얼굴도 눈매가 부드러우면 한결 인상이 좋아보이고, 고전적인 이목구비를 가졌어도 눈에 서린 장난기 하나가 배우상과 아이돌상을 가르기도 합니다.

시계에도 이런 ‘이목구비’가 있습니다. 오늘은 평소 ‘하나의 얼굴’ 안에 묻혀 있던 인덱스와 핸즈, 러그와 크라운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이번 만큼은 케이스의 모양과 소재도, 다이얼의 컬러와 소재도, 스트랩도 이야기하지 않으려고요. 시계를 고를 때 너무나 익숙하게 따져온 큰 조건들은 잠시 내려놓는 거죠.

막상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이 작은 요소들에도 제법 분명한 성격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같은 원형 시계에 같은 컬러의 다이얼을 사용해도 어떤 숫자를 올리고 어떤 모양의 바늘을 얹느냐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고, 케이스 위로 뻗은 러그의 선이나 조그마한 크라운 하나가 예상 밖의 분위기를 더하기도 하는 것처럼요. 평소에는 완성된 시계 안에서 한꺼번에 보느라 미처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거든요.

이제 그 얼굴에 숨겨진 디자인의 공식들을 읽어보려 합니다. 언뜻 전형적인 클래식 워치처럼 보였던 모델에도 몇 가지 스포티한 요소가 현대적인 매력을 더하고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완벽한 스포츠 워치의 얼굴에 숨어 있는 클래식한 디테일 하나가 그 시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한 끗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 작은 차이를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내가 어떤 시계를 좋아하는지를 넘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시계를 좋아하는지도 조금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겁니다. 이 흥미로운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INDEX — 시계의 첫인상

제일 먼저 시계의 표정을 형성하는 요소는 다이얼 위에 자리한 인덱스와 핸즈입니다. 시간을 표시하는 숫자나 기호인 인덱스는 시간을 읽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장치이지만, 어떤 형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시계의 첫인상은 꽤 크게 달라지죠. 클래식한지, 현대적인지, 스포티한지를 가늠할 때 가장 먼저 살펴보기 좋은 요소이기도 합니다.

가장 클래식한 쪽에는 로만 인덱스(Roman Index)가 있습니다. 로마 숫자가 다이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시간을 표시하는 동시에 하나의 장식적인 그래픽으로 작용합니다. 숫자를 크고 촘촘하게 배치할수록 화려하고 고전적인 인상이 더욱 강해집니다.

숫자를 덜어낸 바통 인덱스(Baton Index)는 한층 현대적입니다. 길쭉한 막대만으로 시간을 표시해 다이얼이 깔끔하고 정돈되어 보이죠. 재미있는 건 비율에 따라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가늘고 길면 우아하고 정제되어 보이지만, 폭을 키우고 야광을 채우면 금세 스포티해집니다.

아라비아 인덱스(Arabic Index) 역시 현대적인 시계에서 폭넓게 사용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를 그대로 표시하니 직관적으로 시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특히 숫자를 크고 볼드하게 표현하면 가독성이 더욱 높아져 파일럿이나 스포츠 워치의 기능적인 인상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보다 한층 스포티한 쪽으로 가면 도트 인덱스(Dot Index)가 있습니다. 특히 다이버 워치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단순한 원형은 빠르게 위치를 파악하기 쉽고 넓은 면적에 야광 물질을 채울 수 있어 어두운 환경에서도 뛰어난 가독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네 가지가 전부는 아닙니다. 다이아몬드나 컬러 스톤을 세팅하면 인덱스 자체가 주얼리적인 장식이 되기도 하고, 아라비아와 바통, 바통과 도트처럼 서로 다른 형태를 한 다이얼 안에서 섞기도 합니다. 결국 로만은 클래식, 바통은 모던, 도트는 스포티하다는 구분은 어디까지나 출발점입니다. 같은 인덱스도 크기와 굵기, 소재와 야광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HANDS — 시계의 눈매

인덱스가 시계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한다면 그 위에 얹어진 핸즈(Hands)는 눈매에 가깝습니다. 같은 얼굴도 눈매에 따라 온화해 보이기도, 날카롭고 강인해 보이기도 하듯 핸즈는 시계의 표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덱스와 핸즈의 조합까지 보고 나면 사실상 시계 얼굴의 성격은 상당 부분 완성되었다고 봐도 좋습니다.

클래식 워치에서 자주 만나는 리프(Leaf)와 도핀(Dauphine) 핸즈부터 비교해볼까요. 나뭇잎처럼 중앙이 부드럽게 부풀었다 양 끝으로 가늘어지는 리프 핸즈는 유려하고 온화한 인상을 줍니다. 반면 도핀 핸즈는 끝을 향해 날카롭게 좁아지는 직선 형태로, 같은 클래식 안에서도 훨씬 날렵하고 분명한 표정을 만듭니다. 곡선과 직선이라는 작은 차이만으로도 눈매가 달라지는 셈이죠.

브레게 핸즈(Breguet Hands)는 가느다란 바늘 끝에 속이 빈 원형 장식을 더한 형태입니다. 오래된  포켓 워치에서 본 듯한 바늘이죠? 작은 장식 하나뿐인데도 고전적이고 귀족적인 분위기가 강해, 네 가지 중 가장 캐릭터 있는 눈매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바통 핸즈(Baton Hands)는 장식을 최대한 덜어낸 직선형입니다. 폭이 거의 일정한 선이 곧게 뻗어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현대적인 표정을 만듭니다. 특히 바통 인덱스와 만나면 선과 선이 반복되면서 더욱 미니멀하고 정돈된 얼굴이 완성됩니다.

마지막 스워드 핸즈(Sword Hands)는 검처럼 넓은 몸체가 뾰족한 끝으로 이어져 힘 있고 또렷한 인상을 줍니다. 넓은 면적에 야광 도료를 채우기도 좋아 높은 가독성이 필요한 스포츠 워치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끝을 화살촉처럼 만든 애로우, 카드게임의 스페이드 문양을 닮은 스페이드, 메르세데스나 스노우플레이크처럼 특정 브랜드를 떠올리게 할 만큼 개성 강한 핸즈까지 그 종류는 훨씬 다양합니다.

그런데 핸즈의 모양만 보고 시계의 성격을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같은 스워드 핸즈도 야광 도료를 넉넉히 채우면 기능적인 스포츠 워치의 인상이 강해지는 반면, 가늘게 다듬고 아름다운 컬러와 마감을 더하면 전혀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스워드 핸즈를 사용하고도 까르띠에의 시계가 스포츠 워치가 아닌 ‘클래식의 끝판왕’처럼 보이는 이유도 어쩌면 ‘블루 핸즈’라고 불리는 이 파란 바늘에 있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특히 전통적인 블루 스틸 핸즈는 스틸을 열처리해 푸른 산화막을 만드는 오랜 워치메이킹 기법으로, 포켓 워치와 클래식 워치에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니 특유의 푸른빛에서 자연스럽게 고전적이고 우아한 인상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죠. 이처럼 같은 핸즈도 두께와 길이, 컬러, 야광이나 장식의 유무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짓게 되는 것이죠.

결국 인덱스가 만들어놓은 기본적인 얼굴 위에 어떤 핸즈를 얹느냐에 따라 시계의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인덱스와 핸즈까지 살펴봤다면 이제 이 시계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제법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 LUGS — 시계의 실루엣

시선을 다이얼 바깥으로 조금 옮기면 러그와 크라운이 있습니다. 러그는 케이스와 스트랩 사이 작은 연결 부위이지만 손목시계의 역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존재입니다. 포켓워치가 손목 위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시계에 스트랩을 연결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 물리적인 연결고리가 바로 러그였으니까요. 1904년 루이 까르띠에가 비행사 산토스 뒤몽을 위해 만든 까르띠에의 산토스 워치가 오늘날 ‘최초의 현대적인 손목시계’로 불리는 것을 생각하면, 케이스에서 스트랩으로 이어지는 이 작은 발명의 전과 후로 손목시계의 역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길고 가느다란 러그는 케이스에서 스트랩까지 이어지는 선을 늘씬하게 만들어 클래식하고 우아한 인상을 줍니다. 반대로 짧고 볼드한 러그는 케이스와 스트랩 사이의 거리를 좁혀 시계 전체를 한층 단단하고 스포티하게 보이게 합니다. 러그는 모양뿐 아니라 비율도 중요해서, 같은 형태라도 길이와 두께, 러그 사이의 간격이 달라지면 인상이 달라지고 그 사이를 채우는 스트랩의 폭에 따라서도 시계의 무게감이 달라집니다.

러그를 독립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이 하나의 형태처럼 이어지도록 통합한 디자인도 있습니다. 케이스에서 브레이슬릿까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면서 시계 전체가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여 훨씬 현대적이고 건축적인 인상을 주죠. 특히 1970년대 등장한 럭셔리 스포츠 워치에서 이러한 디자인은 하나의 강력한 미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대로 러그를 케이스 아래로 감추거나 시각적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게 만든 러그리스(Lug-less) 디자인도 있습니다. 스트랩이 케이스에서 곧바로 시작되는 것처럼 보여 외곽선이 매끈하고 간결해지고, 자연스럽게 시선은 케이스 자체의 형태에 집중됩니다.

결국 러그는 시계와 스트랩을 연결하는 부품인 동시에, 둘 사이의 비율과 흐름을 결정하는 디자인 요소입니다. 얼굴만 들여다봤을 때는 몰랐던 시계의 체형이 러그에서 드러나는 셈이죠.


CROWN — 시계의 옆모습

마지막은 크라운(Crown)입니다. 주로 시계의 3시 방향에 자리해 무브먼트와 연결되어 시간을 맞추거나 태엽을 감아 동력을 전달하는 등 시계를 조작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크라운을 볼 때마다 사람의 ‘귀’를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아도 모양에 따라 은근히 옆모습을 좌우하니까요. 우아한 드레스 워치에 갑자기 거대한 크라운 가드가 붙어 있다고 상상하면 꽤 우스꽝스럽겠죠.

가장 기본적인 플루티드 크라운(Fluted Crown)부터 살펴볼까요. 원통형 몸체의 가장자리에 세로 홈을 반복해 새긴 플루티드 디테일은 손가락과의 마찰을 높여 크라운을 쉽게 잡고 돌릴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특히 직접 태엽을 감는 기계식 시계에서는 디자인에 앞서 꽤 실용적인 역할을 해왔죠. 사실 이런 플루티드 디테일은 어니언 크라운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크라운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크라운은 이렇게 세로 홈을 두른 원통형 몸체에 평평한 윗면을 더하고, 그 위에 브랜드의 로고나 시그니처를 새겨 메종의 DNA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여기서 크라운의 형태를 조금씩 바꾸면 시계의 성격도 훨씬 분명해집니다. 둥글고 볼륨감 있게 부풀린 어니언 크라운(Onion Crown)은 파일럿이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만큼 한층 기능적이고 남성적인 인상을 줍니다.

스포츠 워치에서는 크라운을 충격이나 오조작으로부터 보호하는 크라운 가드(Crown Guard)를 더하기도 합니다. 입수 전 귀마개를 한 번 더 체크하는 전문 다이버의 모습처럼 단단하고 에너제틱해 보입니다. 반대로 크라운 끝에 사파이어나 스피넬 카보숑을 올린 카보숑 크라운(Cabochon Crown)은 마치 귀걸이를 한 것처럼 장식적인 인상을 더하죠. 방수 성능이 중요한 시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크라운을 케이스 안으로 돌려 잠그는 스크루다운 방식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 저 역시 한때는 파일럿 워치에 커다란 어니언 크라운이 없다고 실망할 만큼 크라운에 진심이었습니다. 수동 시계를 찰 때도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작고 날렵한 크라운 때문에 아쉬웠던 적도 있고요. 그런데 요즘은 관리가 편한 쿼츠 시계에 손이 가다 보니 오히려 작고 보기에 예쁜 카보숑 크라운이 더 고상해 보입니다. 시계 취향도 나이를 먹으면서 함께 변하나 봅니다.


시계를 하나씩 뜯어보고 나니 우리가 막연히 ‘클래식하다’, ‘스포티하다’, ‘내 취향이다’라고 말했던 얼굴 안에도 생각보다 많은 선택이 숨어 있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각각의 이목구비보다 그것들이 어떤 얼굴 안에서 만나 어떤 표정을 보여주느냐였죠.

그러니 다음에 시계를 보게 된다면 브랜드와 컬렉션 이름을 확인하기 전에 얼굴부터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당신의 시계는 어떤 인덱스와 핸즈, 러그와 크라운을 가지고 있나요? 그리고 지금까지 좋아했던 시계들에는 혹시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목구비가 없었나요?

어쩌면 그 조합 속에서 ‘나는 클래식 워치를 좋아해’보다 훨씬 구체적인 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클래식 워치가 아니라, 날렵한 핸즈와 긴 러그였을 수도 있으니까요.

Q&A
AI 마리봇의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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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처럼 중앙이 부드럽게 부풀었다가 양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형태를 가진 리프(Leaf) 핸즈가 유려하고 온화한 인상을 줍니다.
A
원통형 몸체 가장자리에 세로 홈을 새겨 손가락과의 마찰을 높임으로써, 사용자가 크라운을 쉽게 잡고 돌릴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돕기 위함입니다.
A
인덱스, 핸즈, 러그, 크라운의 작은 차이와 조합을 이해하면 자신이 정확히 어떤 디테일 때문에 특정 시계를 좋아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