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은 물론 확고한 정체성, 동시대성과 미술사적 의의까지.
올해 키아프 서울의 하이라이트 섹션이 주목하는 작가 10인의 면면.

임현정 LIM HYUN JEONG

ATELIER AKI

임현정(1987, 한국)은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했다. 회화의 역사와 개인의 경험이 중첩된 다층적 공간을 구축하는 임현정의 화면은 작가의 내면을 시각화한 정서의 지도이자, 감정과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임현정, ‘Islands of the Mind_Cat Nap’,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112×776cm, 2018

작업은 주로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

내 작업은 상상 속 내면의 풍경을 담은 ‘마음의 아카이브’를 시각화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마주한 인상적인 장면과 기억을 기록해두었다가 캔버스 앞에 섰을 때의 감정과 감각에 따라 즉흥적으로 나열 또는 조합해 초현실적 풍경으로 재구성한다. 이를 구성하는 핵심 매체는 드로잉이다. 드로잉은 단순히 이미지를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을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카이브 역시 질서 정연하게 정보를 정리하고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감정과 연상, 기억의 논리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유동적이고 비선형적 공간이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를 꼽는다면?

바다와 섬이다. 바다와 섬은 드로잉을 기반으로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풍경적 요소로, 부산에서 자라며 늘 보던 바다 풍경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지금까지 서울과 부산, 런던을 비롯해 일본과 미국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작업해왔다. 그 과정에서 각 장소와 시간에 속한 경험들이 때로는 분절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기 다른 곳에서 쌓아온 것들이 수면 아래에서 서로 연결돼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다가왔고, 이를 섬과 바다의 형태를 빌려 그림으로 표현하게 됐다. 카를 융(Carl Jung)이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영역을 작은 섬에, 그 아래 존재하는 거대한 무의식을 바다에 비유한 설명에 깊이 공감한다. 내 그림에서 바다는 무의식이 펼쳐진 공간이고, 섬은 내가 의식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영역, 즉 자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각각의 섬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은 서로 이어져 있다고 상상하며 풍경을 만든다. 언뜻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장소와 이미지들 역시 결국 하나의 마음속 세계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임현정, ‘Bryce Point’,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101.6×228.6cm, 2024

올해 키아프에서는 어떤 작품을 선보일 예정인가?

메인 작품인 ‘Islands of the Mind_Cat Nap’은 ‘마음의 섬들’이라는 시리즈로 진행한 작업 중 하나다.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형상들이 여러 섬 위에 펼쳐지는 내면의 풍경을 담고 있다. 부제 ‘Cat Nap’은 낮에 잠깐 드는 선잠을 뜻하는데, 선잠에서 깨어난 뒤 방금 꾼 꿈의 이미지와 감정은 어렴풋이 남아 있지만 그 내용을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처럼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이미지와 모호한 감각을 표현하고자 이러한 제목을 붙였다. 이 작품은 2018년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부산과 미국을 여러 차례 오가며 경험한 두 장소의 풍경과 인상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익숙했던 부산의 모습과 당시 처음 마주한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감각이 한 화면에 펼쳐진다.

앞으로 오래 지켜나가고 싶은 초심이 있다면?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즐거움과 주변 세계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는 태도. 작업의 주제인 ‘마음의 아카이브’를 만들어가는 데에는 작업에 깊이 몰입하는 상태가 매우 중요하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이러한 몰입의 지속은 단순히 흥미나 재미를 느끼며 그리는 상태를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즐거움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작업이 힘들거나 지칠 때도 보람과 애정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며, 그 안에서 다시 작업할 이유를 발견하면서 오래 그림을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