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은 물론 확고한 정체성, 동시대성과 미술사적 의의까지.
올해 키아프 서울의 하이라이트 섹션이 주목하는 작가 10인의 면면.

JI KEUN WOOK
Hakgojae Gallery
지근욱(1985, 한국)은 홍익대학교 판화과 졸업 후 런던 예술대학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아트 & 사이언스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홍익대학교에서 회화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선의 변주를 넘어, 매체와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가변적 에너지와 잠재된 새로운 차원의 감각들에 주목하며 작업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평면을 무대로 펼쳐지는 회화적 경험에서 무엇을 가장 중시하나?
현대 과학이 생산하는 시각 데이터나 새로운 발견이 레퍼런스가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시각의 공백에 관한 생각이 영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이 다소 이성적인 추상 평면으로 이어지고, 그 안에는 지난하게 선을 긋는 노동이 자리한다. 동시대 예술의 화두가 인공지능을 좇으며 그와 관련된 언어와 이미지가 범람할수록, 내 작업은 일종의 반작용처럼 인간의 과정적 행위나 정신, 노동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미술과 인간은 노동에 가까운 행위를 통해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도달할 수 없는, 영혼의 진화 같은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미래적 경험을 선사한다고 본다.
선의 밀도나 굵기를 결정하는 기준이 있나?
색연필과 자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선의 밀도와 굵기는 일정하게 완성된다. 이미지의 최소 단위처럼 가늘어야 한다는 기준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기준 안에서 기계적으로 그어지길 바라는 바람과는 반대로, 수없는 반복에도 선이 일정할 수 없음을 인식한다. 색연필 선의 군집은 멀리서는 단단하고 올곧아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털실의 보푸라기처럼 연약하고 불완전해 강도의 차이를 만든다. 개인이 느끼는 공기와 중력의 크기가 다르듯이, 선의 강도 차는 작업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화면의 리듬을 만드는 선 사이의 간격이다. 이는 작업 중간에 감각의 영역에서 꽤 직관적으로 이뤄진다.
올해 키아프에서 선보일 작품들은?
대표작인 시리즈. ‘스페이스 엔진’이라는 제목은 우주를 유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시리즈는 오직 광물과 인간의 정신만이 남은 아주 머나먼 미래를 그려보는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작업은 하나의 화폭 안에서 완결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거대한 호를 그리며 다른 화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각도에 따라 반사도를 달리하는 메탈릭한 물질성과 함께 형태를 모으거나 분산하고, 시선과 몸의 움직임을 활성화한다.
일반적인 전시장보다 협소하고 제약이 있는 아트페어에서 작품 감상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화면 위의 선은 그리는 행위의 흔적과 과정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보는 이들에게 특정 서사가 아닌 선 자체의 시각 정보를 전달하고 싶다. 그로부터 비롯되는 공기나 감각적 자극에 집중하길 권한다. 색의 온도와 선이 일렁이는 착시, 화면의 규모나 모양이 주는 인상, 직관적 정서에 주목하며 작품을 폭넓게 해석하길 바란다. 바라보는 거리에 따라 선의 방향성에 주목할 수도, 선을 구성하는 가루들의 흔적을 추적할 수도 있다. 마치 시공간이 어긋나고 투과하는 세계에 잠시 진입했다가 나온 것처럼 다소 사건적인 여운과 함께 미래적인 감상을 주는 시각적 환기가 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