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아닌 발로 조선의 산천을 담아낸 화가. 겸재 정선의 350년을 대구간송미술관이 되짚습니다.

216점으로 완성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겸재 정선 회고전
대구간송미술관이 겸재 정선 탄신 350주년을 맞아 특별전 ‘겸재 정선 – 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를 9월 16일부터 개최합니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는, 두 재단의 소장품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들의 작품까지 총 216점을 선보여 겸재 정선의 국내 전시 역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그동안 부분 공개에 그쳤던 보물 ‘경교명승첩’과 ‘해악전신첩’을 비롯해 ‘소상팔경도첩’, ‘관동팔경도’의 회화 전면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데요. 특히 ‘경교명승첩’은 정선이 벗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주고받으며 한양과 한강 일대 풍경을 담은 화첩으로 남다른 의미를 갖기에 더욱 눈길을 끕니다. 조선 후기의 예술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린 겸재 정선의 세계가, 다시 한번 가장 큰 규모로 관객들을 찾아올 예정입니다.






한양에서 금강산까지, 겸재 정선이 직접 밟은 조선의 풍경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돼 정선의 화풍 변화와 인간적인 면모를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장 먼저, 정선이 나고 자란 한양과 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펼치며 1부를 시작합니다. 그가 머물던 작은 방 앞 툇마루에서 모란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자화상 격 작품 ‘독서여가’를 비롯해, 스승 김창흡을 비롯한 당대 문인들과의 교유 관계를 보여주는 보물 ‘청풍계’가 전시되죠. 2부에서는 정선이 하양(경산)과 청하(포항)의 지방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남긴 영남 지역의 명승 그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시기 대구를 바라보며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달성원조도’도 역시 포함되고요. 이어서 3부는 고사인물화와 화조영모화를 통해 그의 또 다른 면모를 조명합니다. 중국의 고사를 소재로 하면서도 그 안에 조선의 풍취를 담아낸 작품들, 그리고 국화와 고양이 같은 일상의 대상을 섬세하게 포착한 ‘화훼영모화첩’ 같은 작품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전시의 절정은 바로 4부의 금강산 그림들인데요. 국보 ‘금강전도’와 보물 ‘풍악내산총람’이 나란히 걸려, 먹으로 압도하는 화면과 색으로 물든 가을 금강산을 한 공간에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36세에 그린 초기작부터 72세의 원숙기 작품까지, 같은 명승을 바라본 정선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신묘년풍악도첩’과 ‘해악전신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요. 이렇게 4부에 걸쳐 그의 생애 전반을 따라가다 보면, 한 화가가 평생에 걸쳐 다듬어온 예술 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중국의 화법을 답습하는 대신, 조선을 직접 보고 그린 화가
겸재 정선이 활동했던 17~18세기 조선의 화단에서는 중국 명·청대의 화보나 화법을 모방한 관념적 산수화가 정석으로 여겨졌습니다. 직접 눈으로 본 우리 산천이 아니라, 책 속에서 배운 중국의 가상 산수를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정선은 이런 흐름을 거슬러 금강산과 한양, 한강처럼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마주한 조선의 실제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단순히 눈앞의 풍경을 베끼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 산천 특유의 골짜기와 바위의 질감들을 독창적인 붓질로 재해석해 ‘진경산수화’라는 독보적인 화풍을 완성했는데요. 우리 강산이 중국만 못하다는 당시의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하듯, 그는 조선의 자연이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화폭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렇게 정선이 다져놓은 주체적인 시선은 훗날 김홍도와 신윤복 등 풍속화가들에게로 이어지며 18세기 조선 회화가 꽃피우는 데 든든한 토대가 되기도 했고요. 조선을 조선의 눈으로 그린 화가, 겸재 정선이 우리 미술사에 남긴 이름은 그래서 지금까지도 유효합니다.


한양의 툇마루에서 시작해 영남의 명승지를 지나, 평생에 걸쳐 다시 그려온 금강산에 이르기까지. 216점의 작품은 한 화가가 조선의 산천을 어떻게 자신의 눈으로 받아들이고 화폭에 옮겼는지를 촘촘하게 보여줍니다. 350년 전 겸재 정선이 발로 딛고 붓으로 옮긴 그 풍경들은 9월 16일부터 12월 27일까지 대구간송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