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7 S/S 런던패션위크의 9월 19일과 20일, 21일을 짚어봅니다.
- 리차드 퀸부터 시몬 로샤, 에르뎀, 멀버리, 맥퀸, 버버리까지 각 하우스는 저마다의 서사와 영감으로 2027 S/S 컬렉션을 펼쳐냈습니다.
- 과거의 예술가와 역사적인 건축물, 브랜드의 헤리티지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런던의 공간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재해석됐습니다.
거울로 뒤덮인 방에서 지하 회랑을 지나 미술 대학까지. 화려하게 펼쳐진 런던패션위크의 셋째 날과 넷째 날, 그리고 마지막 날을 톺아봅니다.
런던패션위크 DAY3! 거울 속에서 완성된 화려함, 리차드 퀸
9월 19일(현지 시간), 런던 패션위크 셋째 날 중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바로 리차드 퀸이었습니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이고 거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위로 늘어선 공간에서, 리차드 퀸만의 화려하고 웅장한 봄의 향연이 펼쳐졌죠. 이번 룩은 페플럼과 코르셋, 웅장한 볼가운을 중심으로 전개됐는데요. 시퀸과 페더가 겹겹이 쌓인 화이트 드레스가 쇼의 문을 열었고, 이후로 블랙과 화이트를 활용한 드레스들이 연이어 나오며 쇼장을 순식간에 화려한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컬러웨이는 파스텔 옐로우와 핑크, 스카이 블루, 레드 등 컬러를 차츰 더해가며 거울의 정원을 생기 있게 피워냈죠. 반짝이는 크리스탈부터 벨벳, 시폰, 시퀸 레이스 등 드레스의 화려함을 더해주는 소재들이 등장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드레스의 가운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카멜리아 장식이었습니다. 브로치로 만들어진 크리스탈 카멜리아부터 보우 장식 위에 더해진 화이트 카멜리아, 생기로운 레드 카멜리아 등 여러 형태의 카멜리아 장식들이 드레스에 입체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여기에 화사함을 더해주는 플라워 프린팅과 풍성한 러플 디테일까지. 리차드 퀸만의 이브닝웨어를, 겹겹이 반사되는 거울의 정원 위에서 관객들은 한 번이 아닌 수십 번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됐습니다.
런던패션위크 DAY4! 시몬 로샤부터 에르뎀, 멀버리, 그리고 맥퀸까지





9월 20일(현지 시간) 런던 패션위크의 넷째 날, 시몬 로샤는 런던 중앙형사법원 올드 베일리에서 2027 S/S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1990년 더블린의 한 식당 벽에서 뒤늦게 발견된 카라바조의 명작 ‘그리스도의 체포’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컬렉션은, 익숙한 것 속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매일 밥을 먹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 세기를 흔들 명작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수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그 순간을 말이죠. 컬렉션 역시 이 놀라움에서 출발한 이질적인 충돌들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짙은 네이비와 블랙, 화이트 같은 차분한 컬러들로 시작하지만, 이후 그 안에서의 대비, 레드 컬러와 시퀸처럼 강렬한 디테일들이 뜻밖의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에 오버사이즈 재킷 안에 꽃 장식을 넣어 꽃다발처럼 연출한 룩, 스포티한 윈드브레이커를 살랑이는 새틴 드레스와 매치한 룩까지. 강인하면서도 연약한 룩들이 이어지며 중앙형사법원의 서늘한 분위기와 극적으로 어우러졌습니다.
같은 날 캠든의 라운드하우스에서는 에르뎀이 2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를 열었습니다. 이번 시즌 그는 1920년대 파리 아방가르드 문화의 상징이자 전설적인 공중 곡예사였던 ‘바베트(Barbette)’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여성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남성의 모습으로 내려왔던 그의 대담한 퍼포먼스처럼, 에르뎀은 남성성과 여성성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아름다움을 그려냈죠. 날카롭게 맞춤 제작된 재킷이 풍성한 스커트와 만나고, 거대한 페더 가운과 크리스탈로 장식된 구조적인 미니 드레스가 나란히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공중 곡예사하면 빠질 수 없는 파니에 실루엣과 드라마틱한 스탠드 카라도 쇼장의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존재감을 빛냈고요. 이렇게 펼쳐진 룩들 앞에서 관객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두고 굳이 하나의 해답을 내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경계를 허무는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사람들을 매혹시키기 마련이니까요.





크리스토퍼 케인(Christopher Kane)은 멀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첫 데뷔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자신의 브랜드를 정리한 지 약 3년 만의 복귀였기에, 컬렉션 공개 전부터 많은 이들의 시선이 모였는데요. 그는 이번 컬렉션을 멀버리의 상징인 뽕나무를 가지치기하는 과정에 비유하며,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는 절제된 감각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컷아웃 디테일이 각진 숄더백과 모던한 미니 드레스, 가죽 오버코트 곳곳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멀버리만의 방식으로 이 감각을 구현했고요. 그렇게 뉴트럴 톤의 컬러와 미니멀한 실루엣이 이어졌고, 그 안에서 브랜드의 시그니처 백인 ‘베이즈워터’와 ‘피카딜리’의 플랩 부분이 확장된 디테일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하우스의 새로운 얼굴을 완성했습니다. 크리스토퍼 케인은 이 디테일을 세로로도, 가로로도, 길게도, 짧게도 활용하며 다채로운 가능성을 알렸죠. 깔끔하면서도 과감한, 멀버리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무대였습니다.
멀버리에 이어서 맥퀸 또한 브랜드가 태어난 도시,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맥퀸의 2027 S/S 컬렉션은 17세기 건물인 링컨스 인 채플의 지하 회랑에서 웅장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와 함께 펼쳐졌는데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션 맥기르(Seán McGirr)는 이번 컬렉션을 종교적이고 성스러운 분위기와, 자유분방하고 다소 파격적인 분위기 사이의 충돌로 설명했습니다. 아름다운 아치형 천장으로 이루어진 고딕 양식의 공간, 어두운 조명 속에서 등장하는 모델들이 이 극적인 대비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었죠. 접힌 천사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오므려진 어깨 라인의 테일러링이 성스러운 장면을 대표했다면, 하네스와 뒤틀린 실루엣의 사틴 가운, 오픈 백 코르셋은 반대편의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에너지를 담았습니다. 메탈 잎사귀 장식이 옷 위에 불규칙하게 흩뿌려지고, 반짝이는 크리스탈로 자수된 해골이 사슬처럼 이어진 드레스도 눈에 띄었고요. 성스러움과 파격, 반항과 자유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런던이라는 고향 위에서 맥퀸의 오랜 정체성이 다시 한번 선명하게 되살아났습니다.
런던패션위크 DAY5! 본질로 돌아가는 버버리의 여름


9월 21일(현지 시간) 런던 패션위크 다섯째 날, 버버리는 첼시 칼리지 오브 아츠에서 2027 S/S 컬렉션을 공개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Daniel Lee)는 이번 컬렉션을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영국 텍스타일 아티스트 셀리아 버트웰(Celia Birtwell)의 작품이 컬렉션 전반에 스며들며, 버버리의 그래픽적인 하우스 체크가 깅엄 체크나 단순한 스트라이프로 경쾌하게 변주됐죠.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실루엣들을 중심으로 플라워 아플리케들이 다양한 형태로 피어났고, 셀리아 버트웰의 아트에서 영감을 받은 해피 페이스 패턴은 온통 흰색인 쇼장을 발랄하게 바꿔놓았고요. 여기에 짧아진 실루엣의 남성복과 워시드 실크처럼 한층 가벼워진 소재들이 더해져 한층 더 편안하고 젊어진 분위기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날 쇼장에는 배우 손석구와 김민하, 아이리스 로(Iris Law)와 아이들의 슈화가 자리했습니다. 버버리의 글로벌 앰버서더인 손석구는 네이비 컬러의 트렌치코트에 레더 벨트를 매치해 런던 특유의 도시적인 감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는데요. 그의 세련된 스타일링과 버버리의 클래식한 헤리티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글로벌 앰버서더다운 존재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러플이 화려하게 잡힌 네크라인의 레더 재킷으로 포인트를 준 김민하와, 데님 재킷과 팬츠로 클래식하면서도 캐주얼한 분위기를 보여준 아이리스 로, 그리고 블랙 퍼 코트에 새들 백으로 버버리의 세련된 가을을 보여준 아이들의 슈화까지. 각자만의 스타일로 현장을 물들이며 더욱 다채로운 무드를 그려냈습니다.

화려한 거울의 방에서 시작해, 법정과 지하 회랑을 거쳐 미술 대학의 깨끗한 공간까지. 런던 패션위크가 지나온 닷새 동안 각 하우스는 저마다 다른 장소와 서사로 자신들의 언어를 완성했습니다.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무대 삼아 과거와 현재를 오간 이 컬렉션들이, 런던이라는 도시가 패션에 건네는 영감이 여전히 마르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