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마음속 ‘불안이’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밈이 있다. ‘안정형 남친의 정석’, ‘불안형 연애 유형’, ‘불안형 vs. 안정형 체크리스트’. 이를 주제로 한 쇼츠와 숏 드라마처럼 꽤 공들인 콘텐츠도 적지 않다. 나 역시 나 자신을, 혹은 누군가를 가리키며 우스갯소리처럼 이 표현을 쓰곤 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의 복잡한 마음을 ‘불안형’과 ‘안정형’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까? 누군가를 너무 간단히 규정하는 말은 아닐까? 나 또한 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인다. 유난히 인간의 마음에 관심이 많은 지금 시대, 또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이런 반응은 처음부터 손에 쥐고 태어나는 것일까? 안간힘을 쓰면 불안형인 사람도 안정형으로 바뀔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불안에 반응하는 뇌의 방식도 바꿀 수 있을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 캐릭터 ‘불안이’는 주인공 ‘라일리’를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등장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끊임없이 예측하고, 있을 수 있는 실패의 장면을 수없이 만들어내며 마침내 감정 컨트롤 본부의 운전대까지 장악한다. 불안이 커질수록 라일리를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영남대학교 심리학과 김소정 교수는 <인사이드 아웃>을 두고 “모든 감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심리학적으로 좋은 교재”라고 말했다. 영화 속 불안이 역시 라일리를 망가뜨리기 위해 온 악당이 아니다. 그를 지키려는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자신의 역할보다 훨씬 많은 것을 통제하려 했을 뿐이다.
불안형 뇌와 안정형 뇌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혹시 호랑이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해 도망쳤다고 가정해보죠. 실제로 호랑이가 아니었다면 잠시 놀라는 데 그치지만, 정말 호랑이였다면 도망간 개체가 살아남았을 겁니다.” 김소정 교수의 흥미로운 설명이다. 우리는 불안에 민감했던 조상들의 특성을 이어받았다. 불안은 일부 예민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감정이 아니라 누구나 지닌 기본적인 경보 장치인 셈이다. 그렇다면 요즘 흔히 말하는 불안형 뇌와 안정형 뇌는 실제로 존재할까? 카이스트 뇌인지과학과 김대수 교수는 둘 다 엄밀히 말해 뇌과학 용어는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서 보이는 감정 반응의 차이를 편의상 구분한 표현에 가깝다는 것이다. 김소정 교수 역시 안정성을 시간과 상황에 걸친 일관성으로 설명한다. 감정과 반응이 큰 폭으로 요동치거나, 상대를 전적으로 믿었다가 사소한 데 실망해 완전히 평가절하한다면 불안정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것은 불안형 애착이나 불안 장애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그렇다고 예민한 기질을 반드시 결점으로 볼 필요는 없다. 김소정 교수는 예민함이 트렌드와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읽는 능력으로 발휘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질을 가졌는지보다, 그 기질이 신뢰와 확장의 방향으로 작동하는가 혹은 불신과 위축의 방향으로 굳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도망치면 정말 괜찮아질까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생각하게 한다. ‘이번 일을 망치면 어떡하지?’라는 작은 걱정은 어느새 ‘나는 항상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모든 것을 망칠 것이다’라는 지레 파국을 맞는 결론으로 번진다. 걱정이 불안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키는 것이다. 몸의 반응도 이 과정에 가세한다. 긴장되는 상황에서 숨이 조금 차거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를 ‘내가 당황했구나’ 하며 받아들이면 대개 시간이 지나며 가라앉는다. 이에 반해 ‘사람들이 모두 알아챘다’, ‘나는 곧 통제력을 잃을 것이다’, ‘혹시 공황이 아닐까’라고 해석하면 작은 신체 변화가 더 큰 불안을 부르고, 불안은 다시 심박수와 호흡을 변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가장 손쉬운 선택은 회피다. 발표가 두려우면 발표하지 않고, 관계에서 상처받을까 두려우면 상대를 먼저 밀어낸다. 불안한 상황을 피하는 순간에는 긴장이 낮아지고 ‘살았다’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김소정 교수는 이 안도감이 회피를 반복하게 만드는 ‘부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김대수 교수 역시 불안 장애가 지속되는 핵심 기제로 ‘학습된 회피’를 꼽는다. 회피한 직후 얻는 보상이 뇌에 남아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자동으로 선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낮에 했던 말 한 마디를 밤새 되짚는 반추도 불안을 굳히는 방식이다.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에서 시작한 생각이 과거의 다른 실수들을 끌어오며 나선형으로 확장된다.
불안한 뇌도 다시 학습할 수 있다면
불안에 반응하는 방식이 반복을 통해 학습된다면, 반대 방향의 학습도 가능할까? 김대수 교수의 답은 분명하다. 뇌는 평생 경험에 따라 시냅스 연결을 바꾸는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미 형성된 불안 반응도 새로운 경험과 훈련을 통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포의 기억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 아니다. 두려워하던 상황을 안전하게 반복해서 경험하면 뇌는 ‘이 자극이 언제나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는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이를 소거 학습이라고 한다. 기존의 공포스러운 기억 위에 전전두엽이 편도체의 반응을 조절하는 새로운 회로가 덧씌워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사고 후 운전이 두려워졌다면 곧바로 도로에 나설 필요는 없다. 먼저 정차된 자동차의 운전석에 잠깐씩 앉아 있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불안을 무조건 피하지 않되,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안전한 경험을 조금씩 반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뇌는 운전석이 언제나 사고로 이어지는 장소는 아니라는 사실을 새롭게 학습한다. 최근 경험한 에가(EGA) 브레인 사우나 역시 뇌의 인지를 바꾼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공간이었다. 빛과 소리, 온도, 향처럼 여러 감각을 활용해 끊임없이 외부 자극을 처리하던 주의를 현재의 몸으로 되돌리고, 과하게 활성화된 상태에서 잠시 벗어나도록 돕는다.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애쓰기보다 설계된 감각과 리추얼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보다 호흡이나 온도, 몸의 감각을 먼저 인식하게 된다. 김소정 교수는 명상과 호흡, 향, 자연 같은 감각적 환경이 생리적 각성 수준을 낮추고 안정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스마트폰과 SNS, 광고의 메시지에 노출되는 현대사회에서 잠시 자극을 차단하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경험 자체는 분명 의미가 있다.
다시 운전대를 잡는 연습
안정적인 사람은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을 확실히 감지하면서도, 위협이 사라진 뒤 다시 평정 상태로 빠르게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다. 김대수 교수는 뇌과학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불안을 느끼되 위협이 사라지면 전전두엽이 편도체를 빠르게 진정시켜 평정으로 돌아오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복 탄력성이다. 김소정 교수 역시 안정형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불안을 얼마나 빠르게 느끼는지, 그 반응 강도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본래의 기저선으로 얼마나 빠르게 돌아오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한 상황에 적합한 강도로 반응하고, 상황이 끝난 뒤 비교적 안정적으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사람. 그러니 안정형은 불안이 없는 사람이라기보다 불안을 잘 다루는 사람에 가깝다.
그렇다면 불안을 잘 다룬다는 것은 무엇일까? 김소정 교수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반복적인 연습에 가깝다. 먼저 자신의 불안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데서 시작한다. 어떤 날 유독 불안했는지, 어떤 말을 들었는지, 그 순간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를 기록해보는 것이다. 맥박이 빨라지거나 얼굴이 달아오르고 호흡이 가빠지는 등의 신체 변화가 있었는지도 함께 살핀다. 막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라고 적는 대신, 초조감인지 두려움인지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본다. 그다음에는 그 생각과 약간 거리를 둔다. ‘친구가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나도 이렇게 가혹하게 말했을까?’라고 자문하거나, 자신이 내린 결론이 사실인지 불안이 만든 예측인지 구분해보는 것이다. 현재의 수행이 기대만큼 훌륭하지 않다는 판단은 객관적일 수 있지만 ‘나는 언제나 실패한다’는 결론은 사실이 아니며 다음 행동에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불안을 긍정으로 억지로 덮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해석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김대수 교수는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또 다른 기반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꼽는다. 우리의 불안 중 상당 부분이 관계에서 비롯되는 만큼, 관계에서 생긴 불안은 안전한 관계를 통해 다시 학습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오래된 불안이 짧은 시간에 사라지지는 않으므로,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에게 충분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김소정 교수는 불안으로 인한 주관적 고통이 크거나, 일과 학업 · 대인 관계 등 일상 기능이 이전처럼 유지되지 않을 때 전문가의 도움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불안 때문에 피하는 사람과 상황이 계속 늘어나고, 삶의 폭이 점점 좁아지거나 건조해진다면 혼자 견디며 위축되기보다 정신 건강 전문가와 현재 상태를 확인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안과 안정 사이에서
영화의 마지막에도 불안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감정들과 함께 라일리의 마음속에 남아 자신이 필요한 순간을 기다린다. 결국 안정형이 된다는 것은 불안이를 내쫓는 일이 아닐 것이다. 불안이 경보를 울릴 때 그 이유를 알아차리고, 지금 필요한 반응의 크기를 선택하고, 너무 오래 혼자 쥐고 있던 운전대에서 손을 떼게 하는 것. 어쩌면 안정적인 뇌란 그 과정을 반복해서 배워가는 뇌인지도 모른다. 불안을 희화화하기보다 그 감정이 찾아온 진짜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마음. 그런 마음이 켜켜이 쌓일 때, 우리는 불안한 순간에도 다시 평온으로 돌아가는 길을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