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작업을 처음 마주하면 잠시 눈을 의심하게 된다. 얇은 종이를 켜켜이 포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조형이 사실은 단단한 도자라는 사실 때문에. 한때 백자의 완결된 형태를 좇던 그는 영국 유학을 계기로 익숙한 도자의 문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종이에 백자 슬립을 입히고 수백, 수천 장을 반복해 쌓아 올린 뒤 불에 굽는 지금의 작업도 그때 시작됐다. 가마 안에서 종이는 사라지고 도자만 남는다. 반듯하게 쌓은 형태는 열과 중력에 의해 휘고 무너지며 새로운 모습으로 완성된다. 종이와 도자, 계획과 우연, 견고함과 연약함이 한 몸 안에서 묘하게 뒤섞인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업을 이어가는 박종진은 그렇게 10여 년간 자신만의 층을 쌓아왔다. 그리고 올해 ‘Strata of Illusion’으로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수상하며 오랜 시간 쌓아온 자신만의 층을 굳혔다.



위 | 박종진, ‘Strata of Illusion_WOBGBRY’, 백자 슬립, 종이, 고화도 안료, 70×46×52cm, 2026
아래 | 박종진, ‘Artistic Stratum_Jar_P4/ 1R4G1/4’, 백자 슬립, 종이,고화도 안료, 29×29×34cm, 2023
이번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 수상을 축하합니다. 이번 공예상에 도전하게 된 과정과 파이널리스트 선정 이후의 시간은 어떠셨나요?
저는 생각하지 않는 일들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어요. 로에베 공예상은 이번에 세 번째 도전해본 일이었어요. 두 번째 도전한 이후로 3~4년 동안 작업했어요. 그러다가 지난해 ‘디자인 마이애미 2025’에 출품한 작품들을 보고 동료 작가들과 함께 일한 큐레이터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해줬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출품해보면 어떨까 하는 응원도 받았죠. 많은 이들이 제 작품에 특별함이 있다고 해서 도전하게 됐어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죠. 한참의 시간이 흘렀는데, 이전에 본 것과 차이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다가 30인에 들게 되니 솔직히 기대가 되긴 했습니다. 사실 모든 작가가 그럴 거예요. 내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잖아요. 막상 수상자로 선정되고 나니 정말 감사함과 동시에 작가로서 좀 이른 시기가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정말 열심히 작업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작품의 특별함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수상 작품 ‘Strata of Illusion’은 소성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형이 일어난 작품이라고요.
이 작품에만 한 달 반가량을 매달렸어요. 정말 기대하면서 가마를 열었는데, 보여야 하는 부분이 안 보이는 거예요. ‘아, 무슨 일이 났구나’ 하고 가슴이 철렁했어요. 쓰러져 버린 거죠. 저는 사실 불에서 나온 도자를 다시 다듬는 과정을 거쳐서 작업을 완성해오고 있어요. 이때도 정신이 없었지만 ‘좋아, 이제 어떻게 마무리하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그리고 빠르게 표면을 갈아내고 정리를 시작했는데, 작업을 이어가면 갈수록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 있는지 놀라웠어요. 그동안 제가 의도해서 만든 작품과는 정말 달랐기 때문에 작업의 재미도 더 크게 느껴졌고요.
이처럼 소성 이후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마주하는 일은 작가님의 작업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이전에 백자를 작업할 때는 갈라짐에 굉장히 예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물레로 작업하고 깎는 과정을 거치는데 금이 가면 그냥 버려야 했거든요. 저는 그게 도예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불에서 나온 다음에 다시 만질 수 있고, 어떻게 나오든 그 결과에 따라서 가공의 포인트를 결정할 수 있어요. 그래서 가마 끝에 나온 어떤 결과도 실패라고 보지 않으려 하고, 그게 저에게 큰 해방감을 줬어요. 물론 그렇다고 전통적인 도예 방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주 고전적인 방식에 대한 이해는 기본에 깔린 거죠. 그게 없었다면 종이에 흙을 바른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스스로 이 작품이 이전 작업에서 한 단계 나아갔다고 느낀 지점도 있나요?
이전에 해오던 작업보다 훨씬 큰 크기로 시도했다는 점이 제게는 중요한 지점이었어요.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작가님들 작업 중에는 원래 큰 작업을 주로 하시던 분이 작은 작품을 낸 경우도 있는데, 제 경우에는 반대로 평소보다 큰 작품을 선보인 거였어요. 그러면서 스케일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사람의 눈높이에서 보는 작업과 작은 사물을 가까이 들여다볼 때의 임팩트가 상당히 다르다는 걸 느꼈거든요.
앞서 백자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초기에는 완결된 형태의 백자를 만드는 데 집중하셨잖아요. 그러다 영국 유학을 계기로 종이에 백자 슬립을 입히고 쌓는 지금의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익숙했던 백자의 문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영국에 처음 갔을 때 제가 그동안 해온 작업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완전히 새로운 것이 떠오르지 않기도 했고, 그때까지 이어온 좋은 활동의 밑바탕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한 거죠. 그런데 그걸 알아차리고 물레를 치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물레로 백자를 작업하던 사람인데 제 자리에서 물레를 못 쓰게 아예 치워버린 거죠.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다 해외에 간 목적을 다시 생각했어요. 새로운 것들을 취하고 받아 들이려는 목적이 크지, 단순하게 외국 학위 하나 받으려고 간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흙을 배제하고 나니 오히려 물질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나의 물질에서 흙을 배제했으니 한 번 다시 생각해보자’라는 생각이 촉발됐고, 그 과정에서 원초적인 물질성 같은 키워드를 실험하게 됐어요. 그러다 너무 익숙한 종이라는 물질을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했고요.

가마 끝에 나온 어떤 결과도 실패라고 보지 않으려고 하고, 그게 저에게 큰 해방감을 줬어요.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진 첫 번째 시도는 무엇이었나요?
여러 가지 실험을 하다가 서도호 작가님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제가 작업하던 공간 위에 지붕을 만든 적이 있어요. 할로겐 전등에 실로 구조를 연결하고, 종이를 하나하나 물에 적셔서 마치 기와지붕처럼 만든 작업이었죠. 그런데 안전 문제가 있어서 일주일 만에 금방 철거해야 했어요. 그때 젖은 종이를 하나하나 내려서 옆에 쌓았죠. 이만큼 높이 쌓았는데 툭 쓰러지는 거예요. ‘쓰러지는 모습이 예쁘네’ 하면서 쌓여있는 종이의 겹을 보게 됐어요. 그때 그 겹겹에 종이를 만드는 시간과 그 안의 사투가 다 응축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흙으로 기록해보면 충분한 얘깃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종이에 흙을 발라서 쌓던 작업을 시작으로 지금에 이르렀어요.
흥미로운 것은 작업의 외형은 크게 달라졌지만 여전히 ‘백자’가 중심에 있다는 점입니다. 백자 슬립을 하나하나 적셔 완성하잖아요. 이처럼 초기 백자 작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고 이어져온 태도나 미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저는 미술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엄청 뛰어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지금의 감각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해요. 계속 도자기를 빚으면서 좋은 형태가 무엇인지 끝없이 눈에 담고, 조금씩 그려보고 만들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체화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재 작업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주 고전적인 방식에 대한 이해는 기본에 깔려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작업 역시 오랫동안 흙을 다루며 쌓아온 경험에서 우러난 거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도 작업에 기물의 형태를 계속 가져가고 있습니다. 저를 도예가로 부를 수 있는 정체성이 그 기물에 담겨 있다고 보는 거죠. 작업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더라도 흙을 쓰고 있고, 흙을 누구보다 잘 다룰 수 있고, 모든 게 사실 기물의 형태를 띠는 건 ‘여전히 나는 도예가다’라고 나름 계속해서 주장한 거죠.
하나의 작업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까지 미리 계획하고 시작하나요?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아요. 그렇다고 모든 작업을 계획 없이 시작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바닥부터 색을 올리는 작업은 계획을 갖고 시작하죠. 색깔도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워요. 새 팔레트를 만들어 놓고 ‘이건 그린 계열의 작업을 할 거야’라고 정하면, 그린 계열을 좀 만들어 놓고 화이트와 섞으면서 농도를 조절하며 색깔을 만들죠. 다만 패치 작업은 달라요. 하나하나의 패턴들을 다 일일이 제가 드로잉을 먼저 그리고 그걸 보면서 만들기는 너무 힘들거든요. 그래서 개별적인 패턴까지 미리 정해 놓고 작업하지는 않습니다. 계획이 안 되는 게 이 작업의 특징이에요.
소성 과정에서 실제 종이는 사라지지만, 작품의 표면에는 여전히 종이의 물성이 남아 일종의 착시를 만들어냅니다. 실제 재료와 눈에 보이는 것 사이의 간극도 의도한 부분인가요?
도자의 발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다른 물질을 모방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청자를 만들게 된 근본적인 동기는 비싼 옥의 재질을 흙과 유약 기술로 모방하는 것이었어요. 도자기 주전자 혹은 기물의 형태들도 금속기를 모방한 경우가 많아요. 이처럼 과거에는 엄청나게 귀한 물건들을 값싼 재료인 흙으로 모방했다면, 저는 동시대의 아주 흔한 물질을 흙을 통해 모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물질 같은 착시를 만들지만, 물질성은 훨씬 더 새로운 동시대적인 감각을 깨우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주기도 하는 작업 말이에요. 아무리 종이가 없다고 설명해도 나중에 “여기 종이 있죠?”라고 물어보기도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뭔가 트릭 같고 수수께끼 같은 지점이 저는 되게 재미있어요. 좋은 작업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멈춰서 사유하고 대화를 좀 할 수 있는 것. 그렇게 된다면 좋은 작업인 것 같아요.


흙을 쓰고 있고, 흙을 누구보다 잘 다룰 수 있고, 모든 게 사실 기물의 형태를 띠는 건 ‘여전히 나는 도예가다’라고 나름 계속해서 주장한 거죠.
초기 작업에서 백색이 중요했다면 최근에는 상당히 대담한 색의 층이 등장합니다. 색을 전통적인 도자의 문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일종의 ‘자유’라고 설명한 적도 있고요.
백자 작업에는 딱 네 가지 색만 사용했어요. 흰색, 검은색, 청색, 그리고 철로 발색하는 붉은색이요. 조선백자 안에서 전통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게 제 정체성이었던 거죠. 그러다 한국에 귀국하고 박사과정에 들어간 뒤 지원 사업을 통해 재료를 살 수 있게 되면서 안료를 많이 활용해볼 기회가 생겼어요. 시중에서 판매하는 안료를 죄다 사놓고 ‘일단 만들어보자’ 한 거예요. 모든 색의 농도를 조절해서 컬러 칩을 만들어 쫙 깔아놨더니 생각보다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모든 색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은 색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조합하시나요? 더불어 지금의 작업 방식이 색을 표현하는 데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을 조합할 때 특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이전에 좋았던 색들, 눈에 들어오는 조합들을 기억하고 해보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제가 스포츠 경기 보는 걸 좋아하니까 운동복이나 축구 유니폼의 색 조합을 유심히 봐요. 어떤 색이 무엇과 같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의 작업 방식은 색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훨씬 자유로워요. 이 작업의 장점이 그러데이션을 굉장히 쉽게 할 수 있다는 거거든요. 생흙으로 하려면 각기 다른 태토(밑감이 되는 흙)로 만들어야 하는데, 저는 액상 상태에서 물감처럼 바로 섞을 수 있습니다. 진한 농도에서 흰색을 조금씩 첨가하면 점점 옅어지고요. 그래서 그러데이션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일반 도자기에서 스프레이로 효과를 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색이 나오거든요. 아예 레이어마다 색이 그렇게 착색돼 있기 때문이에요.
오늘날 ‘공예’와 ‘예술’을 구분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나요? 그 경계 안에서 나의 작업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요.
한국에 있을 때는 오히려 편견이 있었어요. 개념미술이나 현대미술, 조각과 공예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 생각했죠. 심지어 쓸모없는 것을 만들거나 비기능적인 공예를 하더라도 ‘이건 다른 거야’라는 경계심이 무척 컸어요. 그런데 영국에서 여러 작가의 작업을 접하면서 생각이 많이 확장됐죠. 토니 크랙(Tony Cragg)의 작업이나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석고 작업 같은 경우에는 사실 공예가들도 해봄 직한 면모나 행위들이 있거든요. 공예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의 작업에서 영감을 많이 얻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 작업이 확장된다고 해서 제가 도예가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앞서 얘기했듯 기물의 형태로 작업하는 것 역시 연결돼 있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미래에 박종진이라는 작가, 그리고 박종진의 작업이 어떤 형태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어릴 때부터 가까운 미래에 21세기 도예를 이야기할 때 제 이름이 언급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현대 도자사에서 ‘이 작가도 있었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인간이 삶에서 무언가를 남기고 가려는 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큰 동력이기도 하고요. 결국 제게 작업을 한다는 행위는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는 일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