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갈 핑계는 언제나 환영이다. 그것이 패션위크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일본 패션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장인 정신’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익숙한 표현이지만 며칠간 쇼장을 오가다 보니 왜 자꾸 이 말을 쓰는지 알 것도 같았다. 가까이에서 봐야 눈에 들어오는 소재와 마감이 있었고, 피날레에 직접 나서 자신의 옷을 한참 설명하는 디자이너도 있었다.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 익숙한 거장들의 이름 너머에서도 이런 태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도쿄에서는 누가 어떤 옷을 만들고 있을까. 2027 S/S 도쿄 패션위크에서 직접 보고 기억에 남은 이름들을 골랐다.

support surface

서포트 서피스(support surface)의 옷에는 요란한 구석이 없다. 이번 시즌에도 스트라이프 셔츠와 리넨처럼 익숙한 소재와 아이템에서 출발했다. ‘오디너리 시프트(Ordinary Shift)’라는 주제처럼 평범한 옷에 작은 변화를 주고, 정교한 재단으로 형태를 만들었다. 피날레에는 디자이너 켄카베 노리오가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인사하고 들어가는 대신 관객 앞에 그대로 남아 소재와 제작 방식, 왜 일본에서 옷을 만드는지까지 한참을 설명했다. 디자이너가 직접 관객에게 자신의 옷을 설명하는 피날레는 꽤 신선했다. 2000년 브랜드를 시작한 이래 25년째 ‘메이드 인 재팬’을 고집해온 그의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ENFÖLD

우에다 미즈키가 2011년 시작한 엔폴드(ENFÖLD). 파리에서 꾸준히 컬렉션을 발표해온 브랜드지만, 도쿄 패션위크 경력은 이제 두 시즌째다. 이번에는 각진 어깨와 박스처럼 부푼 스커트 등 과감한 실루엣에 핑크, 옐로, 블루를 거침없이 섞었다.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의 건축에서 가져온 선명한 색과 구조적인 형태는 사진보다 런웨이 위에서 훨씬 힘이 있었다. 여기에 탄탄한 만듦새까지 더해져 이번 도쿄에서 유독 눈이 즐거웠던 쇼다.

Yoshiokubo

2004년 론칭한 요시오쿠보(yoshiokubo)는 도쿄 패션 신에서 이미 잔뼈가 굵다.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이디어는 여전히 짓궂다. 이번 시즌 ‘내추럴 본 노마즈(Natural Born Nomads)’쇼에서는 런웨이 한가운데 몽골의 게르를 세우고, 유목민의 옷에 스포츠웨어와 아웃도어 요소를 뒤섞었다. ‘본(BORN)’과 ‘본(BONE)’의 비슷한 발음에서 영감 받아 뼈 모티프도 곳곳에 활용했다. 피날레에 블랙라이트가 켜지자 모델들이 지나온 자리에는 형광빛 발자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지막에는 얼굴에 형광빛 뼈를 그린 디자이너 쿠보 요시오까지 등장했다. ‘노마드’의 여정을 끝까지 이어간 유쾌한 마무리.

yushokobayashi

도쿄 패션 어워드 수상에 이어 꼼데가르송과 협업하고, 아일릿을 비롯한 K-팝 아이돌이 즐겨 입는 브랜드 유쇼코바야시(yushokobayashi). 한때 하라주쿠 거리를 화려하게 채웠던 일본 스트리트 패션의 계보를 지금의 방식으로 이어가며 탄탄한 팬층을 만들었다. 빠르게 커진 관심은 다음 단계에 대한 부담으로도 이어진 듯했다. 이번 시즌 ‘머메이드스 티어스(Mermaid’s Tears)’에서 자신을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 빗댄 이유다. 바닷속에서 수면 위를 동경하는 인어의 모습에 언더그라운드에서 더 큰 무대로 향하는 지금을 투영했다. 물결치는 드레스와 비늘을 닮은 반짝이는 소재, 그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불안감까지. 예쁘기만 한 인어공주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