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에서 낯선 가능성을 발견하고, 하나의 답에 머무르지 않은 채
자신의 표현 언어를 끊임없이 확장해가는 네 명의 젊은 작가.
영상, 퍼포먼스, 회화, 사진의 영역에서 저마다의 질문을 품고 열린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지금.

강지웅 KANG JIOONG
작가 강지웅은 ‘무엇이 사진을 사진으로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붙든 채, 전통적인 사진의 문법을 비틀며 다채로운 물성을 실험해 나가는 중이다. 강화도 인근 무인도의 풍경을 기록한 첫 연작 <섬돌모루>의 인화 프린트는 암실을 벗어나 광활한 갯벌 위에 놓였고, 밀물과 썰물, 빛과 습도에 반응하며 본래의 형상을 잃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갔다. 매체의 경계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시작된 작가의 전복적인 실험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첫 연작 <섬돌모루>는 강화도 인근에 자리한 무인도의 풍경을 대형 필름 카메라로 오랜 시간 기록한 작업이죠. 어떤 계기로 시작한 작업인가요?
군 생활을 하면서 여러 섬이 분포한 서해안 지역을 레이더로 관찰하는 임무를 맡았어요. 자연스럽게 그쪽 지형에 익숙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블로그에서 섬돌모루에 혼자 다녀온 사람의 수상한 기록을 발견했어요. 흥미가 생겨 찾아보니 사연이 많은 섬이더라고요.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물 목적으로 레저타운을 조성했는데, 퇴임 직전 철거 명령이 내려졌고 비용 문제로 그대로 폐기된 섬이었어요. 마침 대학 졸업 전시를 앞두고 있던 때라 그 서사에 이끌려서 호기심으로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그런데 들어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어요.(웃음)
시작부터 난관을 만났군요.(웃음)
선착장에서 만난 분들 가운데 아무도 선뜻 배를 태워주려 하지 않았거든요. 뭍에서는 너무나 가까워 보이는 데도 무인도니까 위험하다며 고사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무작정 통통배 같은 걸 사서 혼자 들어갔어요. 사람이 살기 위해 조성된 곳이라 호텔이나 폭포, 저수지처럼 포토제닉한 장면들이 많더라고요. 4년간 열 번 가까이 왕복하면서 기록을 이어가면서 갈수록 섬에 정이 들었어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환경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촬영 스킬을 단련할 수밖에 없었고요. 건물 사이사이로 조각난 채 들어오는 햇빛에 의지해 사진을 찍느라 빛을 막 찾아다닌 기억이 있어요.
한데 첫 연작과 이후 작업 사이에 어떤 심적인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어렵게 포착한 풍경을 인화해 돌연 갯벌 위에 방치하면서, 사진을 물리적으로 변형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섬에 한 번 들어가면 육지로 나가고 싶어도 물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거든요. 가져온 필름도 전부 써버리고, 배도 고픈 데 먹을 게 없으니 몇 시간을 내리누워 따분하게 보내는 일이 잦았어요. 그때 눈앞에 날아다니는 먼지를 바라보면서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한참 생각한 것 같아요. 인간의 탐욕이 지어 올린 견고한 건물도 이렇게 바닷바람에 스러져가는데, 섬에서 열심히 찍어서 서울로 가져가는 필름이나 자취방에 쌓여 있는 프린트들이 전부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고요. 제 작품도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망가져갈 텐데, 언젠가 사라질 거라면 예술은 도대체 왜 하는 걸까 고민을 했어요. 사진들이 맞이할 미래를 떠올리다 보니, 마치 급속 노화를 시키듯 시간을 앞당겨 사진을 직접 망가뜨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뮤지엄헤드 단체전 <가난한 자들>에서는 갤러리에 있던 수반에 사진을 잠기게 해 전시 기간 내내 형상이 변화하도록 했죠. 이전 작업에서 한발 더 나아간 시도처럼 보입니다.
그전까지는 갯벌에서 이미 망가진 사진을 가져와 보여줬다면, 이 전시에서는 사진이 서서히 망가져가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획자님이 갤러리에 있던 수반을 활용해보자고 제안해주셨고, ‘가난’이라는 전시 주제를 제 작업 방식과 연결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당시 살던 자취방을 파노라마로 촬영하게 됐고요. 대대로 양지바른 땅에 자리한 갤러리의 가장 밑바닥에서 제 자취방 풍경들이 물에 잠긴 채 서서히 망가져가면 이상한 풍경이 만들어지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시 기간 동안 점차 날이 따뜻해지면서 얼었던 물이 녹고 마지막에는 이끼까지 피면서, 전시 초반과 막바지의 작품이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됐어요. 사진에 담긴 장면과 표현 방식, 설치 방식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의 쾌감을 느낀 전시예요.

피사체를 선명하게 포착하고 고정하는 것이 사진의 전통적인 문법이라면, 이를 정면으로 뒤집는 작업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했는지도 궁금해요.
무엇이 사진을 사진으로 만드는가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지만, 어쩌면 해답을 얻지 못했기에 여전히 매체 자체를 붙들고 늘어지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섬돌모루> 이후의 작업은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모두 전통적인 사진의 방식을 반대로 뒤집어 적용한 결과거든요. 이를테면 사진을 최상의 상태로 보존하려면 습기나 먼지에 노출되지 않도록 이중으로 완충하거나 항온, 항습이 되는 환경을 유지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저는 작업을 통해 그런 조건들을 반대로 적용해보려는 거고요.
관습에 도전하는 행위는 어떤 의문이나 불편함에서 출발하곤 하잖아요. 사진 매체에서 통용돼온 방식에 의문을 품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섬과 육지를 오가며 작업하는 내내 느낀 불편함이 단초가 되어준 것 같아요.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이고 지고 다니다 보면 온몸이 토사와 먼지바람으로 엉망이 되는데, 그렇게 건진 사진에는 아주 깨끗하고 보송한 풍경 하나만 남는 거예요. 작업의 99%를 차지하던 더럽고 열악한 환경은 결과에서 깨끗하게 소거돼 버리고, 보는 사람들도 사진에 담긴 내용에만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의문이 들더라고요.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사진에 찍힌 내용보다 사진의 몸 자체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느 정도 치기 어린 마음에서 시작했다면, 시간이 갈수록 그런 감정은 사그라들고 지금은 매체 자체를 실험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고 있고요.
이후 사진이 가진 물성 자체를 실험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작업을 확장해오고 있죠. 가죽과 리넨, 목재처럼 다양한 물성을 가진 재료에 이미지를 전사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요?
첫 갯벌 작업을 조그마한 사진들로 시작했거든요. 광활한 갯벌 한가운데 놓인 사진을 보면서 더 큰 사진을 망가뜨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종이에 프린트하기에는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갯벌에서 젖은 종이를 다루는 일도 쉽지 않다 보니 다른 재료를 고민하게 됐고요. 사진은 지지체만 있으면 어디로든 이미지를 옮길 수 있으니, 큰 천 위에 이미지를 출력해보자는 생각으로 갯벌로 가져가 처음 전사를 시도했어요. 며칠간 부식된 천을 보니 가죽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종로 가죽 시장에서 버려진 자투리 가죽을 가져와 그 위에 잉크젯 출력을 하고 도장 찍듯이 찍어내는 방식으로 옮겨갔고, 그렇게 지지체의 물성이 지금처럼 다양해졌어요.
사진이 단순히 평면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입체적인 물성을 획득한다는 구상을 떠올리게 된 배경도 궁금해요.
앞선 답변과 이어지는 맥락인데,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해 느끼던 회의감과 관련이 있어요. 저는 사진이 더는 새로운 매체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나 찍고 복제하고 유통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됐고, 사진이 미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오래전부터 이어져왔으니까요. 그렇다면 구태여 이 매체로 미술을 하는 당위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미술의 영역에서 사진의 두께가 점점 더 얇아지고 있다고 느꼈는데요. 스크린 사이를 텍스트처럼 오가는 정보이기도 하고, 사진 전시에서 종종 벽에 직접 UV 프린트를 하기도 하잖아요. 사진의 물리적인 두께가 갈수록 얇아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반대로 두께를 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흥미로운 시도라고 봤어요. 전통적인 사진에서 반복해온 것과는 조금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려 한 거죠.
스스로 사진가라 정체화하고 있나요?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도 궁금해요.
제 작업을 사진으로 봐주시는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는데, 어떤 반응이든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처음 사진의 표면을 손상시키는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스스로도 제 작업을 조각이나 설치, 회화가 아니라 사진이라 부를 수 있을지 계속 질문했거든요. 그런데 관람객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결과물을 보고도 항상 “그래서 뭘 찍은 사진이에요?”라고 묻는 거예요. 그 순간 제 작업이 어디까지나 사진이기에 이해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결국 제가 취해온 방법론도 모두 사진이기에 가능한 질문들에서 촉발된 것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사진가들이 해온 방식이 존재해야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생기는 입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계속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에요.

개인전 <포토택시스-해 너머 그림자>는 아시아 미술 시장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갤러리 마이어리거울프가 서울에서 선보인 첫 한국 작가 개인전이기도 했습니다. 갤러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마이어리거울프의 가이아 무시 디렉터님과 조셀린 울프 대표님이 한국의 젊은 작가를 찾던 중에 뮤지엄헤드 전시에서 제 작업을 인상 깊게 보고 연락을 주셨어요. 전시장에는 없는 다른 작품을 보고 싶다 하셨는데, 당시 작업실이 없던 터라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빌라로 초대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미팅했던 기억이나요.(웃음) 처음에는 갤러리 측에서 깨끗한 작업을 좋아할 거라 생각해 포트폴리오 앞쪽에는 정돈된 사진을, 뒤로 갈수록 더럽고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작업들을 넣었는데 오히려 후반부 작업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무엇보다 제 작업이 왜 새롭고 재미있는지, 제 사진이 가진 장점을 스스럼없이 짚어주는 모습에서 지지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빛에 반응하는 생물의 성질을 뜻하는 개념인 ‘주광성(phototaxis)’을 전시의 중심에 놓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주광성은 마치 벌레들이 빛을 보면 달아나거나 쫓아오는 것처럼 생물이 빛에 반응하는 성질을 뜻해요. 제 사진 역시 인화되고 나서가 끝이 아니고 전시되는 동안 빛에 의해 서서히 말라가기도 하고, 탈피하듯이 새로운 모습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서로 맞닿아 있는 것 같다며 가이아 디렉터님이 제안해준 개념이에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전시가 지난 4년여간 이어온 작업을 한데 모아 지금까지의 작업을 한 차례 갈무리하는 자리였어요.
앞으로의 실험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까요?
곧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해요. 주위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작업을 해왔다 보니 많은 것이 바뀔 것 같아요. 지난 3년 동안 작업을 선보일 기회가 굉장히 촘촘하게 이어졌는데, 한동안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단절이 생길 테니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매체를 사용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좋은 의미로 제 작업에 대한 기대를 배반하고 싶은 마음, 그간의 작업을 갱신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사진이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지 기대됩니다.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가며 잃고 싶지 않은 마음가짐이 있다면요?
계속 무언가를 궁금해 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싶어요. 더는 궁금한 것이 없어지는 순간부터 작업이 반복되거나, 스스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 채 무언가를 만들게 되는 것 같거든요. 한편 계속 궁금해 하다 보면 사람이 좀 냉소적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너무 진지해지지 말자, 시니컬해지지 말자. 지금은 그런 마음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