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너머의, 상상 이상의 세계로. 구정아 작가가 만들어낸 다차원의 감각들.

Lives & Works Everywhere. 홈페이지 소개 첫 줄에 적힌 문장처럼, 1994년 프랑스에서의 첫 전시 이후 구정아 작가는 세계 곳곳에서 자신만의 실험과 탐구를 이어나가며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었다. 경계를 두지 않는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예술을 맡을 수도(<구정아: 오도라마 시티>), 예술 안에서 미끄러지며 누빌 수도(‘스케이트 파크’ 시리즈), 예술 그 자체를 감각할 수도(‘OUSSS’) 있게 됐다. 그의 전시는 언제나 관객에게 새로운 세계를, 또 다른 차원을 열어주는 길이었다. 지난 30여 년간 구축해온 드넓은 작업 세계를 펼쳐낼 전시 <구정아: 우스모스>를 앞두고, 취리히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예술 실험에 몰두 중인 작가를 만났다. 오는 9월, 리움미술관에서 펼쳐질 낯설고도 매혹적인 구정아 작가의 차원을 감지할 수 있는 작은 단서들을 대화 안에 남겨두었다.


작품은 자주, 제가 모르는 사이에 완성되는 듯이 보입니다.
관람객 또한 일화적, 의도적 미래 사고를 하며 통섭적 접근이 가능한 것처럼요.
스튜디오의 예상치 못한 공사로 오늘의 촬영은 취리히 구시가지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공원, 린덴호프(Lindenhof)에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내려다보이는 전경도 멋지지만, 실제로 와보니 세월을 품은 공원 자체의 아름다움이 더 눈에 들어오네요.
만약 취리히에서 살 곳을 정하라 하면, 여기로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이 언덕이 린트 빙하의 빙퇴석의 일부라고 해요. 개발된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제게는 꽤 인상적이었어요. 주변에 있는 건축물도 한 번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세월을 거치며 조금씩 만들어진 거라, 축적된 시간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아요. 실은 특별히 들르는 곳은 아니고, 어딘가를 갈 때마다 지나는 길목이에요. 오늘 촬영을 하는 덕분에 저도 이곳을 더 세심히 보게 됐네요. 한편에 계단이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스튜디오는 이곳에서 30분 정도 거리의 작은 마을에 있다 들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그곳은 어떤 작업의 장을 열어주는 피난처일지 상상하게 됐습니다.
취리히 근처 그레이펜제 호수에 있는 작은 마을은 제가 일하는 장소 중 하나이며, 예술 제작의 정밀 제조 기술을 접목하기 쉬운 실험실과 집중력을 가질 수 있는 곳입니다. 체류 기간이 길진 않지만, 그 기간 동안에라도 이러한 장점을 활용해 전시 준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는 9월,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한국에서 선보이는 가장 큰 규모의 개인전으로, 지난 30여 년간 구축해온 작업 세계를 집약적으로 선보이는 자리가 될 거란 기대가 큽니다.
적게는 30년, 길게는 정해지지 않은 숙련 기간으로 만들어진 작품들로 전시를 선보이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더불어 수년간 제작하고 싶던 ‘모비우스(MOBIOUSSS)’나 ‘강세’ 시리즈, ‘세븐 스타즈’, ‘기인 | 상봉’ 등의 작품을 재착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리움 이사장님과 부관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 <구정아: 우스모스>는 2025년 루마 아를의 ‘우스의 나라 [강세]’와 2026년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의 ‘우스의 나라 [그라비타]’에 이어지는 전시의 세 번째 장으로 신작 ‘모비우스’가 공개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작에서는 어떤 감각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까요?
‘모비우스’는 2019년 디자인 제작한 작품 중 하나예요. 독일의 수학자 뫼비우스(Möbius)와 ‘OUSSS’의 합성어인 모비우스를 누운 8의 공간에서 두 터널과 가파른 비탈 등의 공간을 재배치해 멀티플한 차원으로 상상한 작업입니다. 터널과 길을 반복해서 돌 수도, 차원을 손쉽게 빠져나올 수 있게도 설계했죠.

Courtesy of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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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KOO JEONG A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을 맡은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작가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정아 작가는 (작품에서) 건축적 요소를 항상 흥미롭게 사용하는데, 공간의 구조를 하나하나 분석해 그 특징을 잘 활용합니다. 이를 통해 공간의 특성을 인지하도록 만듭니다.” 이번 전시가 펼쳐지는 리움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이제까지 보지 못한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제가 늘 추진하고 노력하는 방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움의 세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장누벨(Jean Nouvel),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지닌 생각의 뼈대를 잘 이해하는 일은 작품의 어떤 내용을, 어떻게 공간에서 읽어낼 것인가에 관한 질문 못지않게 재미있게 활용했습니다. 이는 전시를 와서 보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이번 전시의 중심축이 되는 ‘OUSSS’의 시작점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1990년대부터 작업에 등장하며, 무한히 확장하고 있는 이 세계의 출발점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감지했나요?
시작 당시로선 무제한한 무경험, 무불천지 등의 환경을 쓸모 있게 변환하는 일들이 우선된 상황이었습니다.
‘OUSSS’에 관한 무수한 정의가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경계가 유동적으로 이동하는 매우 개인적인 공간이자 상태, 불가사의한 우주인 동시에 단어이자 형태소, 어떤 가설, 긴장감 있는 지형. 어쩌면 ‘OUSSS’는 정의 내리지 않는 것이 가장 명확한 정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의 ‘OUSSS’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제가 상상하지 못하는 역량을 가진 개인적 공동 구역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고 싶습니다.
‘OUSSS’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세계는 무언가를 단박에 이해하기보다 어둠에 적응하고, 냄새를 들이마시면서, 바닥과 벽, 빛과 시간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기존에 익숙하게 여겨졌던 지각 방식이 조금씩 어긋나거나 조율되는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익숙한 관념을 깨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관점과 방식은 본능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혹은 작업을 해나가며 쌓아 올린 부분인지요?
제 자신도 관람객처럼 작품과 자신 사이에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자질은 훈련을 통해 이뤄지며 관람객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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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L’esc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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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KOO JEONG A

H 305×W 80×L 160cm, 210kg,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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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KOO JEONG A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끝에는 저 없이도 ‘OUSSS’가 작동하도록 만들고 싶은 야망이 있어요”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이는 여전히 유효한 야망인가요? 그리고 지금은 이 야망에 얼만큼 다가갔다 생각하나요?
언어학적으로 재설정된 의미를 발명하거나, 프로젝트의 다양한 형성을 제공하고 연구 중입니다.
그런가 하면 ‘스케이트 파크’ 시리즈는 관람객이 유저가 되어,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작품으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2012년 프랑스 바시비에르섬의 지역 재생을 목적으로 아트센터 정원에 첫선을 보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아트센터 앞 너른 정원이 있을 때, 대개는 조각이나 설치 작품을 상상하기 마련인데, 스케이트 파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죠. 전례 없는 일을 기획하고 완성하는 데에 어떤 동력이 작용한 건가요?
다양한 실험과 상상력이 필요한 공간은 그 자체로도 동력이 됩니다. 프로젝트가 마음속에서 기운을 돋우게 되면 기획하고 실현하는 일은 서로의 전도체가 되는데, 이내 전기장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미술로 접근하는 이들에게는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 느껴지고, 그 안에 뛰어들어 스케이트를 타는 입장에서는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관람객과 작품의 관계 형성 과정에서 의도한 바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만드는 과정에서도 예상치 못한 관람객의 경험 방식이 있었나요.
사실 그런 모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우리를 때로 흥분하게 만들어요. ‘스케이트 파크’는 사용될 때는 말 그대로 파크로서 기능하는 동시에, 사용되지 않을 때조차도 그 도시나 마을 공간의 한 부분으로 남아 때로는 그 도시의 인프라 구조 혹은 조각으로서의 문화적 근간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은 A를 보며 B를 읽는 도시 디자인을 상상해보고 싶었습니다.
‘스케이트 파크’ 시리즈를 비롯해 회화 작품 ‘Seven Stars’에서도 인광 안료를 활용해 구현했습니다. 인광 안료의 어떤 점에 매료된 건가요?
인광 안료의 습명(밝음을 간직하다)이라는 의미를 통해 죽음과 삶을 재해석한 혜안을 발견했을 때부터였어요.


공간 설치 작업 ‘닥터 포크트(Dr. Vogt)’에서는 형광색으로 공간 전체를 채워,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지각적 체험을 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이 작업에서 형광빛을 선택한 이유, 특히 분홍색을 활용하게 된 연유가 궁금합니다.
2009년 디아재단의 [CONSTELLATION CONGRESS] 프로젝트를 제작하기 위해 가능한 공간을 뉴욕의 맨해튼 롱아일랜드, 비컨 등을 후보로 두고 알아보던 중에, 댄 플래빈 아트 인스티튜트가 공간을 할애해준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창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햇볕과 색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닥터 포크트(Dr. Vogt)’를 보며 바닥에서 빛이 난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됐습니다. 보통 빛은 위에서 아래로 쬔다고 생각되는데, 빛이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이 될 때, 공간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킨다고 생각하시나요? 반대의 감각에 대한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역광, 인광, 후광 등 빛에 관한 다른 이야깃거리를 보색의 패턴과 거리의 착시를 통해 실현하고 싶었어요. 런던에 도착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나 마커스 드 사토이(Marcus du Sautoy),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마틴 리즈(Martin Rees) 같은 과학자들을 접하며 다양한 패턴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집합적 사고나 역원근적 시상을 반복 등으로 단순화하기도 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빛이 있는지요. 어떤 순간에, 어떻게 발하는 빛을 애정하나요?
빛은 수세기 동안 인류가 연구해온 영역이죠. 제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건 정오의 직사광선이에요.
빛 못지않게, 향 또한 오랜 시간 작업 안에 적용해온 요소입니다. 1996년 옷장 속 나프탈렌을 활용한 ‘Pullover’s Wardrobe’에서 시작된 향과 관련된 작업은 2007년 ‘Spy Tree’와 ‘Your Tree My Answer’에서 조향사들과의 협업으로 이어졌고,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펼쳐진 <구정아: 오도라마 시티>로 보다 확장됐습니다. 향을 작업 안으로 가져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냄새에는 제한된 언어적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고부터였습니다. 대칭 사고를 시작하면 뇌가 쉴 공간이 많이 생기는 것, 방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되는 일 등이 같은 원리죠.
모든 작업이 그만의 난도가 있겠지만, 향을 활용한 작업은 구현 과정에서 정말 많은 고민이 산재할 거란 추측이 됩니다. 기억 속의 향을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부터 이를 어디에 담아, 어느 정도로 분사할 것인지 등 작업 과정에서의 고민을 어떤 식으로 풀어내셨을지 궁금합니다.
프로젝트의 난이도를 잘 이해하면 기술적 문제들이 그 의례를 마무리합니다. 향의 다양한 물질적, 화학적, 뇌과학적 성격은 생각보다 기술적인 관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향은 어떤 향인가요?
주의를 분산시키는 모든 향이라 말할 수 있겠네요.


드로잉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실 가장 오래, 많이 작업하는 매체는 드로잉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작품을 가지고 계시죠. 지금도 이동할 때마다, 드로잉 작업을 하시나요?
산책하고 이동할 때는 주로 필기나 그림 등으로 금방 떠오른 사건들을 작업해둡니다. 나중에 이를 다시 꺼내보면서 그 당시의 회로 등을 다시 연결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드로잉은 생각의 기록이라 봐야 할까요? 혹은 개별적인 작업의 영역일까요? 우스 세계의 시발점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생각을 기록하다 보면 다양한 연결 고리가 생겨 결국 전체를 미리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드로잉 작품만을 모은 에디션을 선보인 적도 있습니다. 이후에도 드로잉 작업과 관련한 새로운 형태의 에디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책이 아닌 다른 형태의 드로잉 조합(코퍼레이션) 같은 통합체(unity)를 한번 상상해보죠. 에디션이나 페인팅, 게임, 건축, 애니메이션 같은 프로덕션이 가능한 워크숍 스튜디오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
이 모든 작품이 완성되는 시점을 언제로 인식하시나요? 전시를 시작해 관람객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일까요? 아니면 나의 세계에 안착하는 순간일까요?
작품은 자주, 제가 모르는 사이에 완성되는 듯이 보입니다. 관람객 또한 일화적, 의도적 미래 사고를 하며 통섭적 접근이 가능한 것처럼요. 1992년에 제작한 ‘플로팅 하우스’ 작품은 아직도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시작하곤 합니다.
작품을 만드실 때 관람객의 경험을 어디까지 설계하시나요?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고, 과잉 해석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이 간극을 어떤 방식으로 고려하면서 작업과 전시를 꾸리시는지요.
관람객의 미적 인지도, 방문 빈도수,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을 가능성, 관람객이 작품과 홀로 있을 만한 공간 등 다양한 부분을 염두에 둡니다. 제가 작품을 감상할 때와는 달리 관람객은 예술 작품과 생각해보지 못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도 포함해서요.
관람객들이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 생각과 감각을 확장한다면, 작가님께서는 무엇으로부터 감각의 확장을 경험하나요?
잘 자란 나무를 보러 간다든지 하는 의도된 연습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제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의는 당신이 무언가로 변모하는 교차점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지금도 같은 정의를 품고 있나요?
지금의 제게 예술은 곧 생존 회로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Lives & Works Everywhere’라는 문구에 언젠가 우주도 포함이 될 수 있을까요? 언제나 가시적 영역 너머의 세계를 가늠하게 만드는 작업을 관람객에게 선사해주셨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해봤습니다.
네. 저는 지금 바큠(진공) 공간에서 생각하고 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