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다. 어떤 모습으로든, 어떤 공간에서든 영화는 계속 존재할 테니까.”
마음이 동하는 친구를 찾고, 우연한 만남을 즐기며 영화 곁을 걸어온 배우 구교환의 날들.



캐러멜 맛 팝콘으로 존재하고 싶다.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있으면 감상에 도움이 되는,
그런 존재이고 싶다. 부담 주고 싶지 않다.(웃음)
영화 <만약에 우리>부터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영화 <군체>까지 작년부터 올해까지 관객과 만난 작품만 돌아봐도 숨 가쁜 행보다. 아직 관객과 만나지 않은 작품까지 더하면 그 목록은 더욱 길어진다. 이렇게나 많은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다작이라기엔 이 시기에 개봉이 몰린 것뿐이지 전부 차근차근 놀면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꾸준히 참여해온 작업들이다. 배우가 내 직업이고, 기왕 일하는 거 성실하게 근무해서 이달의 모범 사원이 되고 싶다.(웃음) 그렇다고 꼭 연기를 일로만 대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현장에 가는 게 제일 재밌고 즐겁다.
인터뷰가 공개될 시점이면 <부활남: 더 레드>가 관객을 만난다. 시나리오를 읽고 작품에 다가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무엇이었나?
크게는 러닝 타임 내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가간 작품이다. 굉장히 유쾌하고 직진성을 띠는 이야기라,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날 사람들의 하루가 즐거웠으면 했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맛있는 중국요리를 먹고, 예쁜 옷을 사고, 이 영화를 보는 시간도 그날을 이루는 여러 즐거운 추억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또 ‘석환’(구교환)이 타 이틀 롤처럼 있지만 이 영화는 신승호, 강기영, 김시아를 비롯한 많은 동료 배우가 앙상블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작품을 계기로 새로운 사람들과 작업한다는 설렘도 있었다. 좋은 이직을 한 기분이다.(웃음)
흔히 구교환 배우가 연기한 인물들을 두고 ‘변칙적’이라고 말한다. 쉽게 규정 할 수 없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간 통과해온 인물을 돌아볼 때, 마음이 가는 인물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같나?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나? 그냥 술 한잔하고 싶다.(웃음) 이것저것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궁금하고, 이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그 캐릭터와 만나는 것 같다. 또 인물 자체가 특별하다기보다는 자기만의 방향성과 태도가 확실한 캐릭터에 마음이 간다. <꿈의 제인>에서 ‘제인’을 연기할 때는 그에게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태도를 배웠고, <D.P.>의 ‘한 호열’에게는 ‘얘는 사람들을 이렇게 웃기는 애구나,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알아가면서 가까워졌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황동만’은 그 사람이 만든 영화를 꼭 보고 싶고, 한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지만 교집합을 찾는다면 그들과 친밀해지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실제로 그 사람을 알아가는 방식은 어떨지 궁금하다. 한 인물에게 다가갈 때 무엇부터 시작하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사람을 떠올리면서 음악을 고르는 일이다. 인물을 음악으로 말하는 게 내게는 가장 편안하고 경직되지 않은 방식으로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인 듯하다. 장면마다 떠오르는 음악도 달라서 촬영장에 갈 때마다 그날 찍을 장면들을 생각하며 음악을 고른다. 대본에 드러나 있지 않은, 비어 있는 시간들을 상상해보는 것 역시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친구가 크리스마스 때는 뭘 했을까, 좋아하는 배우는 누구일까, 이상형은 어떤 사람일까, 첫 데이트는 어땠을까.(웃음) 이런 궁금증들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인물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동만을 떠올리면서는 어떤 음악을 골랐나?
진짜 많다. 플레이리스트에 모든 장르가 다 있었다. 동만이야말로 어디로 튈지 파악이 안 되는,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인물이지 않나. 동만은 잡으려고 옆에 앉혀놓으면 도망가는 사람이어서 음악으로라도 잡아두고 싶었던 것 같다. 사카모토 류이치부터 샹송도 많이 들었고… 또 가장 박력 있는 음악이 뭐가 있을까?
테크노나 메탈이 아닐까.(웃음) 동만이라면 힘이 필요한 순간에 그런 음악을 들었을 것 같다.
아니, 동만이라면 보사노바나 재즈를 들었을 거다. 동만에게 파워는 ‘우와아아악’ 하고 드는 힘이 아니니까. 마음의 힘, 심장의 힘으로 전진하는 사람이지 결코 물리적인 힘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다. 사채업자와 붙었을 때도 물리적으로 그를 제압하기보다 기세와 자신의 진실로 싸운 것처럼.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라.” 이 한마디로 상대를 압도하지 않았나.(웃음) 동만은 보사노바처럼 다정한 방식으로 상대를 움직이게 하는 쪽이다.
배우로서 연기해온 동시에 감독으로서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온 만큼, 동만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기도 했을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동만에게서 얻은 용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동만을 연기한 뒤부터 어떤 작업에 다가갈 때, 그 이야기 안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여기서 진실을 어떻게든 걷어 올리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걷어 올리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빛나는 진실에는 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동만은 그 시간을 계속 버티고 통과해서 결국 자기만의 진실을 걷어 올린 사람이지 않나.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영화를 완성해가고, 꿈을 향해 가는 동만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돌아보면 작업하면서 진실을 제대로 마주한 순간도 있지만, 쉽게 요령으로 지나간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연기든 연출이든 나를 꺼내 이야기하는 게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순간 또 거짓말을 할 것 같아서. 물론 언젠가 또 꾸며낼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라도 먹고 있는 게 어딘가.(웃음) 그러면 지금보다 는 덜 거짓말하면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극 중 동만은 첫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는 순간을 우리 밖으로 나온 사자와 대면하는 일에 비유한다. 영화 만드는 일을 무엇에 비유하고 싶나?
두렵고, 어렵고, 자신 없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내 이야기에 마음이 동하는 친구를 찾는 것. 나에게는 그게 영화 만들기인 것 같다.


영화로 시작해 오랜 시간 이어진 인연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연상호 감독과는 <반도>를 시작으로 <괴이> <기생수: 더 그레이> <군체>까지 여러 작품을 함께 만들어왔다. 두 사람이 계속 함께 작업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감독님과 나는 영화 작업을 함께 하는 동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영화가 맺어준 친구 같다. 사람이 일하면서 친구가 되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감독님과 나는 어느 순간 서로가 더는 쑥스럽고 어색하지 않은 순간을 한 번 겪었다. 그때 우리가 꼭 일로 함께하는 동료만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서로에 대한 신뢰도 있다. 내가 어떤 연기를 할 때 감독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도 ‘쟤가 다 생각이 있겠지’ 하시고, 나 역시 감독님의 연출이나 디렉션을 100% 이해하지 못하거나 어떤 장면이 어려울 때 ‘감독님의 생각이 있겠지’ 하는 식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우리가 취향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유머 코드도 다르다는 거다. 감독님이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과 내가 연기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말하다 보니 궁금해진다. 왜 나를 캐스팅하시는 걸까? 나는 왜 감독님과 작업하는 거지?(웃음)
그런 관계가 있지 않나.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왜인지 모르게 계속 함께하게 되는.
그래서 재미있는 것 같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데 공식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1학기 때 반 배정을 받고 나서 ‘쟤랑 베프가 될 것 같아, 쟤랑 친해져야지’ 했는데 1년이 지나고 보면 전혀 친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친구랑 같이 매점에 가고 있는 것처럼. 친구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영적인 존재가 정해주는 것 같다. 내 힘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친구가 되어보려 한다.
연상호 감독과 함께한 네 번째 작품 <군체>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처음 관객을 만났다. 영화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객이 꽉 들어찬 뤼미에르 극장의 풍경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좋은 건 좋다고 소리 내서 이야기해야 하는 거구나, 더 표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극장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고 학습을 받으며 자랐는데, 뤼미에르 극장에서는 사람들이 영화 상영 도중에 크게 웃거나 중간중간 박수도 치더라. 그 순간 웃음과 박수, 환호가 영화를 방해하는 소음이 아니라 사운드 디자인을 완성해주는 요소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영화제는 축제이지 않나. 뤼미에르 극장 주변의 어느 지점까지만 영화제인 게 아니라 칸이라는 도시 자체가 영화가 되고 극장이 되는 기분이었다. 작은 가게에 들어가도 영화제 포스터가 붙어 있고, 길거리에 턱시도를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내내 축제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꿈의 제인>으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부산국제영화제와도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특히 기억에 남은 부산국제영화제만의 풍경은 어떤 모습인가?
숙소에서 나와 해운대를 걷다 보면 영화제 상영작 포스터가 계속 보이지 않나. 남포동에 영화 보러 갔다가 맛집에 가거나 주변 술집에 가기도 하고. 영화제가 끝나면 사라질 것들,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는 풍경들을 좋아한다. 또 그 주변을 배회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람과 마주치기도 한다.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를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나는 실제로 부국제에서 헤어진 여자친구와 마주친 적도 있다.(웃음) 그들과 반갑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랜만에 안부를 물을 수도 있는 게 영화제 현장 아닌가? 결국 영화는 극장에서 끝나는 게 아닌 것 같다. 영화라는 것 하나로 묶여서 그런 우연들이 계속 만들어진다는 게 즐거운 거지.
앞선 영상 인터뷰에서 우리 삶에 영화가 필요한 이유를 묻자 “영화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영화와 함께 살아왔음에도 삶을 먼저 이야기한 건 어떤 마음에서였나?
모르겠다. 그 질문을 받는데 문득 영화가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게 꼭 전부는 아닐 거라는. 삶 속에 영화가 포함되어야 하는 거지 영화가 꼭 삶의 필수 요소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 자체로 영화고, 극장이고, 배우고, 감독이라 생각한다. 내가 잠깐 멈추더라도 영화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다. 어떤 모습으로든, 어떤 공간에서든 영화는 계속 존재할 테니까. 그러니 영화라는 것에 지나치게 매몰되기보다는 삶이라는 영화를 더 잘 꾸려가고 싶다.
그렇게 계속될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구교환은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고 싶나?
그냥 삼각형으로 존재하고 싶다. 나초 모양으로. 아니다, 나초 말고도 극장에는 너무 많은 메뉴가 있잖아! (잠시 정적) 캐러멜 맛 팝콘으로 존재하고 싶다.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있으면 감상에 도움이 되는, 그런 존재이고 싶다. 부담 주고 싶지 않다.(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