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도, 런웨이를 걷는 모델도 아닙니다. 온몸을 검은 가죽으로 감싼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세계 패션계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독보적인 스타일, 피터 마리노

패션 아이콘이 반드시 패션 디자이너이거나 모델일 필요는 없습니다.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2026년 패션 아이콘으로 선정한 인물은 건축가 피터 마리노(Peter Marino)입니다. 이름은 낯설어도 그가 만든 공간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익숙합니다. 샤넬, 디올, 루이뷔통, 티파니앤코 등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을 설계하며 패션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어온 인물이거든요. 검은 가죽 재킷과 바이커 부츠, 선글라스 등 캐릭터도 확실하죠. CFDA는 지난 10월 27일 피터 마리노를 2026년 패션 아이콘 수상자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2일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피터 마리노는 누구?

피터 마리노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국 건축가입니다. 197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건축사무소를 설립한 이후, 패션 브랜드의 정체성을 건축과 인테리어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고객사는 샤넬, 디올, 루이뷔통, 아르마니, 불가리, 제냐, 티파니앤코 등입니다. 한국에서도 그의 작업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매장을 화려하게 만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브랜드의 역사와 미학을 건축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거든요. 그는 공간의 규모와 동선은 물론 소재, 조명, 가구, 예술 작품까지 세심하게 조율해 브랜드 세계관을 구축합니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패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겁니다.

아르마니 슈트에서 검은 가죽까지, 그의 스타일 변천사

아르마니 슈트와 에르메스 보타이

피터 마리노도 한때는 전형적인 고급 슈트 차림을 즐겼습니다. 미국 건축·디자인 전문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Architectural Digest)>의 2011년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과거 아르마니 슈트와 에르메스 보타이를 착용하고 출근하던 건축가였다고 합니다.

검은 가죽, 바이커 룩

2000년대 초반부터 그의 스타일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정장을 벗고 검은 가죽 재킷, 타이트한 가죽 팬츠, 묵직한 바이커 부츠를 일상복처럼 입기 시작했어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한 뒤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 가죽 차림 그대로 패션 매체 인터뷰에 참석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당시 기자의 반응이 인상적이어서 이후 자신의 스타일로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해골 반지, 가죽 모자, 선글라스

그의 패션은 자세히 살펴보면 더 강렬합니다. 손가락마다 착용한 커다란 실버 반지, 해골 모티브 장신구, 가죽 모자, 짙은 선글라스를 주로 착용하죠. 마리노는 옷뿐 아니라 헤어스타일과 타투로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곤 합니다.

리한나부터 에이셉 라키까지, 역대 CFDA 패션 아이콘

CFDA 패션 아이콘상은 단순히 옷을 잘 입는 유명인에게 주는 상이 아닙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하고, 패션 문화에 영향을 미친 인물에게 트로피를 주죠. 그동안 가수와 배우 등 대중문화 스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으며, 스포츠 선수도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14년 수상자인 리한나는 과감한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당시 그는 약 21만 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장식된 시스루 드레스를 착용하고 시상식에 등장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습니다.

2015년에는 퍼렐 윌리엄스가 패션 아이콘으로 선정됐습니다. 특유의 커다란 모자와 스트리트웨어, 럭셔리 패션을 결합한 스타일로 주목받은 인물입니다. 2016년에는 비욘세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2021년에는 젠데이아가 선정됐습니다. 2023년에는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가 최초의 운동선수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2024년에는 독창적인 헤드랩과 실험적인 레이어링으로 유명한 뮤지션 에리카 바두가, 2025년에는 힙합과 럭셔리 패션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에이셉 라키가 선정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