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마리봇의 요점 정리
  • K팝 산업에서는 아티스트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차별화된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소설가 및 시인 등 문학계 창작자들과의 협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 엑소와 엔하이픈 그리고 라이즈 등 주요 그룹들은 앨범 내 숏노벨 삽입이나 나레이션과 사이드스토리 작성을 통해 텍스트 중심의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 문학과 K팝의 접점 확대는 아티스트에게 차별화된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팬들에게 한층 더 깊은 몰입감과 서사적 완성도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잔뜩 비를 맞았던 날도 추울 줄 알았는데 안 추웠어 너랑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

나는 내가 용감한 줄 몰랐는데 우리가 친구가 되기 전에는 전혀

우리가 싸우고 울어버릴 땐 진짜 밉지만 그럴 때도 널 아프게 하고 싶진 않아

무릎엔 흉터가 있어도 마음엔 없기로 해 너랑 달리면 다리에 부드러운 꽃잎이 스쳐

날카로운 풀들도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아 너랑 있으면 여름이 완전히 달라 “

2022년 싱글 ‘After Like’ 발표를 앞두고 공개됐던 아이브의 프로모션 영상 ‘서머 필름’을 처음 봤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영상속 멤버들의 모습과 서정적으로 담담하게 흐르는 나레이션 문장들이 잊고 지냈던, 치밀하고 때때로 애달팠던 10대 시절의 우정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했거든요. 마음을 울리던 표현들이 정세랑 소설가의 문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반가웠습니다. 지구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세상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연결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작가니까요. 독서를 좋아해 올해부터 개인 유튜브 채널 가을의 온도 를 운영하고 있는 멤버 가을은 수년 전의 추억을 되살려, 얼마전 정세랑 작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를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브의 여름을 완성시켜주셨던 정세랑 작가님♥︎ㅣ가을이의 독서클럽

K팝 신은 언제나 다채로운 창작자들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협업해 왔습니다. 다만 멜로디와 비주얼에 비해 덜 직관적인 텍스트는, 종종 가사의 영역을 제외하면 그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죠. 하지만 다름 팀과 구분되는 기획력과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가지는 개별성이 나날이 중요해지며 실제 작가와 시인을 포함한 문학계와의 협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K팝 아티스트들이 지금 어떤 방식으로 문학과 접점을 만들고 있는지, 그 방식들을 돌아봅니다.

원래의 세계관을 증폭하기

EXO EX-Vision ver.

K팝에서 팀의 ‘세계관’이 중요하게 여겨졌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생명의 나무가 말라가며 뒤틀어진 시공간, 악에 맞서 미지의 행성 ‘엑소 플래닛’에서 온 초능력자들이라는 SF 세계관으로 데뷔한 엑소(EXO)의 이야기는 2012년 SM 엔터테인먼트 식 스토리텔링(SM Culture Universe)의 서막과도 같았죠.

지난 1월 오랜만에 8집 <REVERXE>로 컴백한 엑소는 ‘Ex-Vision’ 버전의 구성물로 짧은 소설을 선보입니다. 엑소를 구성하는 ‘생명의 나무’와 ‘붉은 기운’ 그리고 ‘사랑하자’는 구호까지 활용한 숏노벨은 이희주 소설가의 상상력 속에서 탄생했죠. 팬덤 활동의 경험을 담은 데뷔작 <환상통>(2016)부터 ‘최애’를 향한 광기 어린 여성들의 소유욕을 그린 <성소년>을 비롯 아름다운 대상의 파편에 탐닉하는 <나의 천사><사랑의 세계> 등을 펴낸 이희주 작가는 잘 알려진 NCT WISH의 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팬덤 문화와 아티스트에 대해 높은 이해도와 애정을 가진 이희주 소설가가 써내려간 이야기는 멤버들의 제대 이후 다시 출발점에 선 엑소의 새 컴백 서사와 훌륭하게 맞물리며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엔하이픈(ENHYPEN)’은 복잡한 세계관보다는 청춘과 성장 같은 키워드와, 멤버들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듯 해 보였던 4세대에서 조금 다른 결을 가진 팀입니다. ‘다크문’ 세계관을 토대로 아주 콘셉추얼한 뱀파이어 서사를 힘있게 밀어붙이고 있죠. 이런 기획은 하이브와 빌리프랩의 내부 크리에이티브 팀이 총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 1월 <THE SIN> 시리즈를 선보이며 인간 연인과 함께 도주하는 뱀파이어라는 새로운 서사를 발굴한 엔하이픈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활용합니다. 전대미문의 도피 사건을 보도하는 ‘미스터리 쇼’ 형식으로 구성한 <THE SIN : VANISH>와 <THE SIN : BLISS> 두 장의 앨범에는 곡들 사이사이 나레이션 트랙들이 삽입되어 있죠.

<THE SIN : VANISH> 앨범 발매에 앞서서는 ‘뱀파이어 나우’라는 미디어가 실재하는 것처럼 보도하는 프로모션이 진행되기도 했고요. 이와 관련해 빌리프랩 마케팅팀은 “사전 프로모션은 보통 라이트 층보다 코어 층의 팬분들이 즐기는 편인데, ‘뱀파이어 나우’를 중심으로 팬분들이 뱀파이어 도피극의 흐름을 함께 추적하면서 역으로 원천 콘텐츠에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 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운명은 때론 우리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이 위험한 길을 걷게 합니다.”

“마치 지도에 없는 섬에 숨기라도 한 듯이 사라져 버린 두 사람. 둘만 남은 곳에서 그들이 마주한 건 환희였을까요, 아니면 절망이었을까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버전으로도 녹음됐던 나레이션의 한국어 버전은 배우이자 출판사 무제 대표인 박정민이 직접 녹음에 참여해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엔하이픈과 만난 박정민은 아일랜드 작가 브람 스토커가 쓴 19세기 고딕 소설의 고전 <드라큘라>를 언급하며, 뱀파이어 이야기에 나레이터로서 어떻게 빠져들었는지 역으로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엔하이픈은 11월 20일 스핀오프 싱글 <THE SIN : PARALLEL WORLD>를 발표하며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입니다.

미스터리 쇼 박정민 배우의 도피 뱀파이어 밀착 인터뷰🎙️ – ENHYPEN (엔하이픈)

K팝 그룹이 SF 작가의 세계와 조우할 때

평행세계와 초능력, 기술과 인간성이 공존하는 한국 작가들이 직조해내는 SF 소설 속 세계는 멤버 각자의 고유성과 새로운 콘셉트의 접점을 찾는 K팝과 좋은 시너지를 내기 마련이죠. 최근 컴백한 라이즈(RIIZE)의 ‘Insomnia’는 훌륭한 예시였습니다.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의 줄거리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된 멤버 별 사이드 스토리를 천선란 작가가 써내려갔거든요. 뮤지컬로도 제작된 SF 소설 <천 개의 파랑>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이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천선란 작가는 섬세하고 여린 묘사로 높게 평가받습니다. 경주마 ‘투데이’와 휴머노이드 기수의 이야기를 담은 <천 개의 파랑>은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제작으로 할리우드 영화화가 추진될 것이라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는데요. 라이즈의 ‘이모셔널 팝’적인 면모를 강조한 서정적인 신곡 ‘Insomnia’ 속 묘사된 멤버들의 모습과 메타포로서 고래가 은유하는 바는 천선란 작가의 글을 만나 더 큰 힘을 얻었습니다.

‘기억, 소망,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둘러싼 깊은 내면을 입체적으로 풀어낸 멤버 별 사이드스토리는 일러스트레이터 노마(NOMA) 작가의 그림과 함께 라이즈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재되며 컴백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데 일조했습니다.

RIIZE ‘Insomnia’ 뮤직비디오 캡처

대표적인 SF 소설가 중 한 명인 김초엽 작가 또한 일찌감치 르세라핌(LE SSERAFIM)과 협업한 적 있죠. 통제된 도시 ‘레퓨지아’를 떠나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는 미니 2집 <ANTIFRAGILE>의 초판 구성품 중 하나로 공개되었습니다.

키키의 세계가 텍스트와 만날 때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문학계와 활발하게 교차점을 만들어내는 그룹도 있습니다. 바로 키키(KiiiKiii)! 멤버들의 연습생 시절 이야기를 모티프로 써내려간 데뷔 앨범 <UNCUT GEM> 수록곡 ‘한 개 뿐인(Oneoff)’ 부터 ‘딸기게임(Strawberry Cheesegame)’, ‘Delulu’, ‘SWEET SOUR’ 등의 곡 가사를 썼습니다. 올해 키키가 두 번째 EP <Delulu Pack>로 컴백했을 때 ‘드레스 입고 달리기’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공개되기도 했어요.

키키는 고선경 시인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마치 말장난 같은, 그리고 소녀스러운 키키의 이야기를 문학적인 시선으로 차용해 쓴 ‘KiiiKiii’s Diary’는 산문집 <내 꿈에 가끔만 놀러와>에 실리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이모티콘을 수천 개 그려 넣어도 아무도 내 진짜 표정을 모르지 하나도 모르지.”

“왜냐하면 나는 만화 주인공이 아니고 여기서 데모 버전의 사랑을 받아 적고 있다”

시인이 선사한 감각적인 문장은 누적되어 가는 키키의 세계에 또다른 색채를 더합니다.

왜 이야기는 이토록 효과적일까?

아주 오래된 구전, <아라비안 나이트> 세헤라제데가 알려주듯 이야기는 모든 것을 잊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 대사 하나가 ‘과몰입’을 깨뜨리는 것처럼, 다듬어진 표현 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콘서트 중간 VCR 속 표현 하나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떨어져 나오기도 하니까요. 수많은 다른 팀들과 차별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거듭되는 컴백 속에서 스스로의 새로운 서사도 발굴해야 하는 K팝 아티스트들이 새롭고 정제된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협업의 범주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8년차에 접어든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XTogether)는 미니 9집 <Perfect Storm> 컴백에 맞춰 롤플레잉 미스터리 콘텐츠를 선보인다고 밝혔죠. 폭풍우가 몰아치는 고립된 대저택을 배경으로,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섯 멤버가 두뇌 싸움을 벌이는 내용의 콘텐츠는 추리 예능 <크라임씬>의 작가가 직접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1월 21일 CGV 특별 상영회에 이어 유튜브에도 추후 공개될 전망이며, 영상 속에 등장하는 대사와 오브제는 ‘Storm Is…’, ‘Sweetest Escape’ 등 수록곡의 세계를 차용합니다.

급속도로 늘어난 크고작은 도서전과 진(Zine) 페어의 흥행에서 엿볼 수 있듯 지금의 K팝 아티스트들이 텍스트힙 트렌드를 소비하는 당사자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레드벨벳과 솔로곡의 가사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감성을 보여줬던 조이는 지난해 발표한 첫 번째 미니 앨범 <From JOY, with Love>의 앨범 티저에서 차정은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을 선보였죠. 자가출판으로 펴낸 <토마토 컵라면>의 대히트 이후 <여름 피치 스파클링> 등으로 사랑받은 차정은 시인과의 협업을 두고 조이는 “내가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문학작품과 협업하는게 좋겠다는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라며 먼저 러브콜을 보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과일처럼 풋풋하면서도 상큼한, 공감각적인 글들이 조이의 음악과도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입니다.

JOY <From Joy, with Love> 티저 이미지.

한편 기자 출신으로 K팝을 향한 애정어린 비평을 꾸준히 선보이는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문학계와 K팝의 협업을 두고 ‘차별화된 캐릭터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기획사의 지휘 아래 활동해야 하고, 개별 활동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등 개별 서사를 쌓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지금의 아티스트들에게 서사를 부여하기 위해 소설가나 시인을 찾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죠. 물론 어떤 것이 먼저인지 어떤 협업에 환호할 것인지는 오직 팬들이 판단할 것입니다. K팝은 매우 상업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진정성과 멤버들 고유의 인간성이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는, 보기드문 분야이기도 하거든요.

Q&A
AI 마리봇의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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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의 프로모션 영상 '서머 필름'에 사용된 서정적인 나레이션 문장들은 정세랑 소설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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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이픈 앨범 나레이션의 한국어 버전 녹음에는 배우이자 출판사 무제를 운영하는 박정민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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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줄거리와 멤버별 사이드스토리는 천선란 작가가 썼으며, 사이드스토리 일러스트는 노마(NOMA) 작가가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