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 화보

카디건 디그낙(D.GNAK), 셔츠와 타이 (MUNN)

요즘 우리의 일상은 <미생>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거의 매회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드라마 <미생>은 직장 초년생부터 5년 차 대리, 10년 차 부장까지 직장 생활 좀 해본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마치 실제 회사를 들여다보는 듯한 현실적인 인물들과 상황은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는 부작용이 있다. 극 중 인물들이 겪는 직장 생활의 수난과 고난에 일일이 나의 상황을 대입해 울분을 터뜨리고, 노력과 결과, 현실과 이상이 꼭 일치하진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에피소드에 눈물이 나다가도, 이 남자만 등장하면 어쩔 수 없이 웃게 된다.

‘한석율’은 <미생>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일등 공신이자 한 번도 보지 못한 독특한 캐릭터다. 5대5 가르마의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을 하고 뺀질거리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가’ 싶다가도, 현장의 소중함을 주장하며 현장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는 건강한 정신을 드러내는 그는 더없이 근사한 훈남이다. 그런 한석율을 훌륭하게 연기하는 이는 배우 변요한이다. 드라마에서 방금 빠져나온 듯 입이 찢어지게 웃고 있는 변요한을 만났다.

<미생> 팀의 회식 사진이 공개됐었는데, 드라마 촬영 회식이 아니라 정말 직장인 회식 사진 같았다. (웃음) 촬영 현장에서도 본명으로 부르지 않고, 직급으로 대리님, 차장님이라고 부른다. 밖에서 만나도 그런다.(웃음)

배우는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직장 생활 경험은 없다. 이번 작품으로 회사 생활을 간접 경험한 셈인가? 예전에는 회사 생활에 대해서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미생>을 촬영하면서는 커피숍에 가도 회사원들의 이야기가 먼저 귀에 들어오더라. 주변에 회사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도 이제는 존경스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변요한

그레이 오버사이즈 골든구스 디럭스 바이 쿤(Golden Goose Deluxe by KOON), 재킷 엠비오(Mvio), 그레이 티셔츠 레이닝챔프 바이 플랫폼 플레이스페르드르 알렌느(Perdre Haleine), 신발 골든구스 바이 쿤(Golden Goose by KOON), 비니와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변요한은 배우가 아니라 회사원이었다면 잘했을 것 같나? 잘했을 것이다.(웃음) 근데 한석율처럼은 못 하고. 평범하게 다녔을 거다. 실제로는 낯을 많이 가리고, 조금은 내성적인 편이다. 그래서 나한테도 한석율은 이질감이 무척 큰 캐릭터다. 내가 연기할 캐릭터인데도 부담스러웠다. 대본을 보다 보면 막 친한 척하며 나를 계속 파고 들어오는데, 대본을 던져놓고 ‘아, 어떡하지’ 했다.(웃음) 너무 창피한데, 너무 부끄러운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한편으로는 정이 가더라. 그래서 다시 대본을 보면서 이 친구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까 마냥 철없는 친구만은 아니구나 싶고 어느 순간 연민도 느껴졌다. 그 친구를 참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한석율은 볼수록 정이 드는 캐릭터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 드라마가 끝나가는 것을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촬영이 얼마 남지 않아서, 현장에 가면 가슴이 미어진다. 오늘도 한참 울다 왔다. 벌써 한석율이라는 캐릭터랑 이별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미생>을 촬영한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라. 초반에 단발머리를 하고 날아다니던 때가 벌써부터 그립고 함께한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어질 것 같아 걱정이다. 현재 막바지 감정 신을 찍고 있어서 모두들 눈물을 많이 흘리는데, 그게 보는 분들에게도 진정성있게 다가갈 거라는 확신이 있다. 진심이기 때문이다. 촬영 후반부에는 장그래만 봐도 짠했다. 초반에 대립 관계일 때는 그러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 친구 지키고 싶다, 이 친구한테 힘이 되고 싶다, 귀여워서 장난치며 괴롭히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친구(임시완)도 감정적으로 굉장히 힘든 신을 찍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많이 장난치지 않고 어깨만 한 번씩 주무르고 지나간다. 그리고 집에 가서 통화한다.

 

변요한 화보

무통 코트 디아프바인(Diafvine), 데님 팬츠 페르드르 알렌느(Perdre Haleine), 신발 더클랙슨(The Klaxon), 티셔츠와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라마 속 네 명의 동기들끼리 실제로도 친하게 지내나? 무척 친하다. 선배님들도 이토록 분위기가 좋은 드라마 촬영장은 없었다고 말씀하신다. 만약 다른 드라마에서 동기가 아닌, 역할 대 역할로만 만났더라면 이렇게 끈끈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한 명이라도 아프면 뭐라도 챙겨주게 되고, 그게 형식적인 게 아니라 마음이 시켜서 저절로 그렇게 된다. 이 친구들, 참 따뜻하다. 같이 연기하다 보면 서로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연기하는지, 그런 게 다 느껴진다. <미생>을 통해 진국인 사람들을 만났다.

배우로서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을 얻었나?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만이 아니고, 그래야 연기를 더 오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나 자신한테 지나치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배우로서의 욕심 때문에 1년에 서너 편의 영화를 찍을 정도로 무리하기도 하고, 결과를 보고 상처받을 때도 있었다. 목표나 욕망만 생각하며 살려고 해본 적도 있는데, 많이 힘들더라. 연기 이외에 중요한 어떤 것이 성장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앞으로 풀어가야 할 것이 더 많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내가 또 다치고, 상처받고, 외로워질 수도 있고, 그래서 사람으로서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생>을 하면서 내가 잘 걷고 잘 살아야지 어떤 역할을 만났을 때 그 역할도 행복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변요한 화보

카디건 올세인츠(All Saints), 데님 팬츠 페르드르 알렌느(Perdre Haleine). 데님 셔츠와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미생> 이전에는 무수히 많은 독립영화를 찍으며 ‘독립영화계의 송중기’ 라고 불렸다. 이번에 <소셜포비아>로 독립영화스타상을 받으며 ‘독립영화를 통해 최선을 다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도 독립영화는 계속 할 생각인가? 물론이다. 나는 독립영화의 위력을 안다. 그것은 만드는 사람들이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런 걸 보아오면서 매번 나는 배우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결론은 흔하고 쉬운 말일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자는 거였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최선을 다해 따라갔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일들이 있었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한석율 캐릭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실 세계에 들어온 이상주의자’다. 당신은 이상주의자인가, 현실주의자인가? 회사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사에는 후배의 이상을 꺾는 성‘ 대리’ 같은 사람도 많지만, ‘한석율’ 같은 사람도 많다고 하더라. 이상이 좌절되었을 때 한석율은 입을 닫고, 귀를 닫는다. 많은 사람이 그러는 것 같다. 점점 각자의 개성을 잃고 무감각해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것 같다. 아직도 꿈을 많이 꾼다. ‘어떤 위치에 가고 싶다, 어떻게 되고 싶다’가 아니라 연기에 대한 갈증, 풀어가야 할 숙제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편인 것 같다.

 

변요한 화보

블랙 니트 풀오버 송지오 옴므(Songzio Homme), 안에 입은 터틀넥 풀오버 페르드르 알렌느(Perdre Haleine)

사원이나 대리 같은 회사원의 직급에 비유한다면, 배우로서 지금 어느 정도 위치에 온 것 같나? 나는 이제 겨우 입사 서류를 쓴 거라고 생각한다. 면접 보러 갈 준비 중인 거다. 승진은 내가 아니라, 대중이 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연기를 보고 다음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면접 보러 오라고 말해주겠지.(웃음) 언젠가 내가 연기를 정말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준다면 최종 합격시켜줄 것이고, 그러면 나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쭉 가지고 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배우가 되길 원하나? 인터뷰할 때마다 하는 말인데, 대한민국에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다. 어떤 영화에 변요한이란 배우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로맨틱 코미디도 하고 싶고, 스릴러도 하고 싶고, 가족 영화, 스포츠, 액션 등 하고 싶은 게 무척 많다. 연기를 아주 좋아하고, 또 싫어한다.(웃음) 과정은 너무 힘들지만, 어느 순간에 앞으로 훅 치고 나아가는 게 참 재미있는 것 같다.

2014년을 어떻게 기억할 것 같은가? 힘을 얻은 해. 열심히 살다가 많이 지쳤을 때, 연기를 지금보다 좋아하지 못할 때, 이 드라마를 보면 다시 힘이 날 것 같다. 아플 때를 대비해 약을 미리 지어놓은 것처럼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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