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국에서 K-뷰티가 인기 있을까?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가 불분명한 K-뷰티의 인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결론을 말하자면 ‘예’와 ‘아니오’, 둘 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인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K-뷰티를 대표하는 몇 가지 카테고리가 굉장히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굴에 붙이는 시트 마스크팩, 바르고 자는 슬리핑 팩, 피부 결점을 커버하는 BB크림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의 인기 덕에 K-뷰티라는 카테고리가 꽤 유명해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한국 뷰티 브랜드의 이름을 하나만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이것은 K-뷰티를 대표하는 몇 가지 카테고리의 제품은 확실히 인기가 있으나, 그 인기가 한국 브랜드의 인지도나 신뢰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미국 시장에서 K-뷰티라는 흐름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K-팝과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 같은 K-콘텐츠가 그랬던 것처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 뷰티 시장에 진입하려는 수많은 도전과 노력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결실을 얻은 것이다. 그 결과 멀티 브랜드 뷰티 스토어인 세포라(Sephora)와 미국 최대 뷰티 유통업체인 얼타(Ulta)에는 K-뷰티 섹션이 따로 생겼을 정도. 현지 언론에서는 K-뷰티가 단출했던 미국 스킨케어 단계를 체계적으로 세분화해 뷰티 제품의 카테고리를 넓혔으며, 미국 내 뷰티 시장의 규모를 키웠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없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최근 미국 시장에서 K-뷰티 카테고리를 넘어 브랜드 자체의 지명도와 인지도를 키워가고 있는 몇몇 브랜드의 행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른바 ‘3세대 K-뷰티 브랜드’가 선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K-뷰티 브랜드의 세대를 정리하자면 2010년 전후로 뉴욕, LA 등 미국 대도시에 단독 매장을 열고 진출을 도모한 더페이스샵·미샤·토니모리 등의 로드 브랜드를 1세대, 아마존과 세포라, CVS 같은 거대 유통 체인망을 통해 진출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산하의 브랜드들을 2세대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3세대 브랜드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K-뷰티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지만, 한국에서는 적극적인 제품 판매 활동을 하지 않는 브랜드를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조선미녀(Beauty of Joseon)가 있는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 우리 선조들의 미(美)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브랜드다. 조선시대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가 집필한 <규합총서>에 기록되어 있는 눈썹 다듬는 법, 살결을 매끈하게 만드는 세안법, 머릿결을 윤기 있게 가꾸는 법 등 당대의 미용법을 토대로 브랜드를 기획하고 제품을 개발하는데, 현재 미국 SNS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스킨케어 브랜드 중 하나다. 특히 ‘맑은 쌀 선크림(Relief Sun:Rice+Probiotics)’은 가격 대비 효능이 우수하고 피부 트러블이 거의 생기지 않는 선크림으로 소문이 나며 미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자외선 차단제로 손꼽히는 중.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브랜드조차 생소하다. 판매처는 자사 쇼핑몰 정도고, 백화점이나 드러그스토어 어느 곳에서도 판매하지 않는다. 미국의 거대한 유통 체인 기업인 타깃(Target)과 아마존(Amazon)의 화장품 카테고리와 의약품 카테고리의 중간 영역을 개척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3세대 K-뷰티 브랜드, 히어로 코스메틱스(HeroCosmetics)도 비슷한 경우다. 피부 때문에 고민이 많은 10대들의 구매 목록 1순위이자, 국소적인 피부 트러블 해결이 필요한 사람들의 필수품이 된 히어로 코스메틱스의 ‘마이티 패치(Mighty Patch)’는 아마존 뷰티 앤 퍼스널 케어 부문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 또한 최근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선정한 미국 MZ세대가 사랑하는 브랜드 랭킹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를 만큼 브랜드 충성도 역시 대단하다. 그리고 발견했을 때 바로 사지 않으면 순식간에 동나는 초절정 인기 제품 마이티 패치 뒤에는 한국의 중소기업 티앤엘(T&L)이 있다.

 

티앤엘은 한국에서 트러블 패치로 많이 사용하는 의료용 하이드로 플로이스 패치를 생산하는 기업인데, 히어로 코스메틱스의 창업자 주류(Ju Rhyu)가 원소재를 대량 선점해 제품을 만든 것이 그야말로 ‘대박’이 난 것이다. 히어로 코스메틱스는 패치 제품의 큰 인기에 힘입어 피부 트러블 케어를 위한 스킨케어 라인까지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다. 승승장구를 이어가던 히어로 코스메틱스는 미국 내 다양한 퍼스널 케어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인 처치 앤 드와이트(Church & Dwight)에 인수돼  미국 주식시장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큼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마이티 패치처럼 한국에서는 흔한 제품이, 오히려 K-뷰티의 숨겨진 비밀처럼 여겨지며 큰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사례로 하나큐어(Hana Cure)를 꼽을 수 있다. 다른 제품은 필요없이 딱 ‘하나’에만 집중한 스킨케어를 컨셉트로 내세워 최근 수많은 셀럽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다. 또 한국의 일반 에스테틱 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식을 제품에 도입했는데, 1회 사용분의 앰풀을 용기에 담아 붓으로 얼굴에 바르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사람들이 SNS에 하나큐어 제품을 솔을 이용해 바르는 모습을 너도나도 올리면서, 마치 집에서 에스테틱 케어를 받는 것처럼 마케팅한 것이 금액대가 상당히 높은 제품임에도 큰 인기를 끈 요인으로 분석된다. 또 아마존에서 비건 뷰티 브랜드로 큰 인기를 누린 멜릭서(Melixir)를 비롯해, 한국의 공중 목욕탕을 모티프로 만든 비누와 입욕제로 관심을 끌고 있는 비누 비누(Binu Binu)도 이전과 확연히 다른 K-뷰티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3세대 K-뷰티 브랜드는 본고장인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소위 코덕(코스메틱 덕후)이라 불리는 화장품 마니아들은 이 제품을 구하기 위해 역직구라는 번거로운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MZ세대 사이에서는 역직구야말로 진정한 코덕의 훈장으로 생각하다 보니, 한국에서는 구매하기 어렵지만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K-뷰티 제품에 관심이 모이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야말로 3세대 K-뷰티 브랜드들이 앞으로 단순히 K-뷰티라는 카테고리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그렇다고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한 2세대 K-뷰티 브랜드가 넋 놓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전과 다른 발상과 접근 방식으로 다시금 미국 시장에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최근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들의 선전이 눈에 띄는데, 그 중심에는 ‘라네즈’가 있다. 한국과 아시아 내 인기가 무색하게 미국 진출에서는 괄목할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최근 ‘립 슬리핑 마스크’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판도를 뒤엎었다.

 

특히 지난해 7월에 이틀간 열린 아마존 최대 규모의 쇼핑 이벤트 ‘프라임 데이’ 기간 동안 뷰티 앤 퍼스널 케어 부문 판매량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이후 브랜드 인지도는 물론 판매량까지 급상승하면서 명실상부 K-뷰티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제 라네즈는 미국에서 뷰티에 정통한 사람에게는 K-뷰티 브랜드 중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로, 또 뷰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미국 브랜드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로 미국 시장에 깊이 스며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네즈가 아모레퍼시픽이 선보이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브랜드 중 하나라면, 명품 브랜드로는 ‘설화수’를 지목할 수 있다. 설화수 역시 미국에 진출한 지는 꽤 오래됐지만, 진출 이후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설화수는 2023년을 미국 진출의 새로운 원년으로 삼고, 국민 세럼인 ‘윤조에센스’ 6세대 출시와 함께 브랜드를 전반적으로 리뉴얼했다. 또한 K-뷰티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아직 한국의 뷰티 브랜드가 현지에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대대적인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준비 중이다. 특별히 미국 시장에서 설화수의 새로운 행보를 기대하는 이유는 K-뷰티라는 카테고리에서 빠져 있던 한 조각인 ‘럭셔리’ 카테고리의 포석이 될 수 있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샤넬, 에스티 로더, 시세이도처럼 세계 어느 도시의 백화점에 가도 곧바로 설화수 매장을 발견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

K-뷰티가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조금은 먼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은 바로 브랜드가 가진 힘인 ‘브랜드력’이다. 이미 K-뷰티 브랜드의 제품력은 입증됐지만, 다른 뷰티 브랜드와 경쟁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몇 배 더 브랜드력을 길러야 한다. 이전까지는 브랜드력이 다소 약하다 보니, K-뷰티 제품 브랜드는 다 엇비슷해 보인다는 평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소비자들은 매달 수많은 제품이 출시되고 새로운 뷰티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이전과 다르게 절대 잊을 수 없는 확실한 브랜드 컨셉트와 스토리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K-뷰티의 미래는, 아니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미래는 더욱 선명해질 것이 분명하다.